사랑합니다.

그녀를 사랑합니다.

by dle

밤 9시.

달리는 자동차 안.


캄캄한 밤길에 건너편에서 쏟아지는

밝은 빛의 전조등과

도로 위 가로등의 아른한 빛.

그리고 부드러운 흔들림.

밤의 차는 참 낭만적이다.


그래서 나는 밤의 차를 사랑한다.

스무 살부터 시작된 사랑이었다.


밤의 차 안 라디오에서

익숙하고도 반가운 그렇지만 묘하게 아픈 노래가 흘러나온다.



나빠요. 참 그대란 사람

허락도 없이 왜 내 맘 가져요.

그대 때문에 난 힘겹게 살고만 있는데

그댄 모르잖아요.

...

언젠간 한 번쯤은 돌아봐주겠죠.

한없이 뒤에서 기다리면

오늘도 차마 못한

가슴속 한마디

그댈 사랑합니다.


-팀) 사랑합니다.-



밤의 자동차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나를 20년 전으로 데리고 갔다.


밤 9시와 달리는 자동차 안이라는 공통점.

그리고 또 한 가지.

흘러나오는 음악이

"사랑합니다." 였으므로.



타지에서 시작된 대학생활에서 우리(나+친구)는 그녀(이모)를 만났다.


그녀(이모)를 알게 된 건 막 친해진 사교성 좋은 동생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언니랑 이모랑 고향이 같대. 잘 사귀어봐."


그녀는 지금의 내 나이에 간호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듯

그녀는 혼자였다.

밥도 혼자 먹었고 4인 배정 기숙사도 혼자 썼었다.


고향이 같다는 공통점은 5분 만에 대화를 종결시켰는데 그만큼 우리는 말주변이 없다는 공통점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자동차가 있어서

우리(나+친구)를 일요일마다 고향에서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녀의 차는 항상 일요일 밤 9시에 출발했고

1시간 30분 남짓 달리는 시간 동안

항상 팀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언니, 이 노래 너무 좋아요. 제목이 뭐예요?"

"사랑합니다. 팀 알지?"

"아, 팀 노래였구나."

"사랑한 만큼도 정말 좋아. 이 노래 끝나면 나오니까 들어봐."


노래로 시작된 이야기는

우리가 그녀의 차에 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개인적인 것들로 확장되었다.

밤의 차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갔다.


"언니는 왜 늦게 학교에 온 거예요?"

....

"언니는 이혼했어. 아들 한 명 있고."

....


우리는 고향이 같다는 공통점 외에 팀의 노래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생겨났고

차에 타면 말하는 것보다는 조용히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도 알아차렸다.


우리를 통해

그녀에게 한 명, 두 명 사람들이 다가가기 시작하자

그녀의 얼굴과 옷차림은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날마다 날마다 그녀는 새내기에 가까워졌다.


한 명에서 시작된 인연이

얽히고설켜 복잡해질 즈음

그녀에게

새로운 인연이 닿았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그녀보다는 어리지만 뒤늦게 새내기가 된 그(삼촌)였다.


언젠가부터 밤의 차 안에서

그녀는 그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달리는 차에서는 말하기보다

음악 듣는 걸 좋아한다는 공통점을 잊기라도 한 듯.


그리고는

어느 날

그 둘이 사라졌다.

무수히 많은 억측들이 난무했지만 우리는 간절히 그녀를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돌아왔고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

조명만 밝힌 어두운 강당에 새하얀 간호복을 입고 따뜻하게 불을 밝히는 촛불을 들은

우리는 가슴이 벅차 있었다.

우리의 꿈이 시작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아릿하게 가슴이 저려왔다.


곧 나이팅게일 선서가 시작되는데...

곧 우리는 이곳을 떠나는데...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그녀는 왜 돌아오지 못했을까?


우리가 그녀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인연이 인연을 불러들이지 않았다면

그녀는 이곳에 밝은 촛불을 들고 감격에 젖은 채 우리처럼 선서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서로가 서로를 모른 채로...


차라리 고향 따위 달랐으면 좋았을걸....


뒤늦은 꿈이, 뒤늦은 사랑이

그녀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그녀의 기억속에 우리는 어떤 모양일까?


누군가를 걱정하는 마음과 행복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녀를 사랑합니다.


그 음악, 참 사랑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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