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dream

삐딱이처럼 나도 기특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by dle

오랜만에 들른 친정집은 시간이 멈춘 듯 변함이 없다.

우리 집으로 태어났던 그때 그대로.

.

부모님은 한 없이 작아지고 약해져 만가고

나는 어른으로, 사회인으로, 그리고 엄마로

정신없이 옷을 갈아 입었는데 말이다.


아부지를 따라 축사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코에 닿는 냄새도 여전했다.


소들이 낯선 이를 경계한다.

흐뭇하게 들여다본다.

커다란 눈망울과 기다란 속눈썹

그리고 황토색 털까지

역시나 모두 그대로다.

예전에도 있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있을

누군가의 눈에는 똑같은 그냥 소를 보고 있자니,

불현듯

'그냥'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왠지 미안해지는 소가 떠오른다.


아부지에게 묻는다.

"이제 못난이 같은 소는 없지?"

"없지."

"다행이다."

"그치. 다행이지."


소에게 마른풀을 나눠주는 아부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번 더 안심해본다.

'그래야 삐딱이 같은 소도 없을 테니까.'


"아부지 삐딱이 기억나?"

"그럼. 그놈을 어떻게 잊어."

아부지의 굽은 등이 펴지며 시큼한 미소가 흐릿하게 하늘위로 솟구쳤다.


삐딱이가 태어난 날은

아카시아 꽃 향기가 가득한 동화같은 날이었다.


삐딱이가 태어났다.

아주 건강하고 귀여운 송아지였다.

삐딱이는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한발, 두발 힘겹게 일어섰다.

그리고는 제 어미를 향해 다가갔다.


하지만 어미소는 악명 높은 못난이였다.

다가오는 제 새끼를

두껍고 탄탄한 뒷발로 사정없이 걷어찼다.

이리 휘청, 저리 휘청

결국, 삐딱이는 철퍼덕 쓰러지고 말았다.


한참을 쓰러져 있던 삐딱이가 다시 일어섰다.

한 발 두 발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는 못난이를 향했다.

세상에서 믿을 수 있는 건 오직 제 어미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못난이는 도끼눈을 뜨고 다가오는 제 새끼를 노려본다.

새끼는 젖을 먹어야 사는데 허락하지 않는다.


다시 휘두른 못난이의 뒷다리에

삐딱이는 바닥에 처박히고 태어난 의미를 놓아버렸다.

그리고 가엾게도 삐딱이의 예쁜 얼굴이 삐딱하게 돌아가버렸다.


"못난이, 못난이, 못된 못난이."


소리치는 어린 나를 못난 못난이가 뚱하게 쳐다본다.


못난이에게서 멀리 떨어진 구석에 삐딱한 얼굴을 쳐들고 누워있는

삐딱이에게 뽀얗고 따뜻한 우유를 담은 그릇과 숟가락을 들고서 다가갔다.


한 숟가락 두 숟가락 삐딱이의 입에 우유를 대어 보지만

삐딱이는 한 방울의 우유도 삼키지 않았다.

굳게 닫은 입과 그저 까맣기만 한 눈을 보니

마음이 까맣게 녹아내렸다.


"그래도 먹어야 살지. 이제부터 내가 엄마 해 줄게.

네 이름은 삐딱이로 하자."


우유가 입에 안 맞는 걸까?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멋대로 엄마가 되어준다고 골이 난 걸까?


삐딱이는 한 방울의 우유도 삼키지 않았다.

나는 부아가 치밀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부아가 채 식기도 전에 까맣기만 한 삐딱이의 눈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다시 따뜻한 물에 우유를 타서 휘휘 젓는다.

그리고는 삐딱이에게 다가간다.


기다려준다. 내 마음이 너에게 닿을 때까지.


삐딱이가 벌떡 일어선다.

나에게 다가온다.

우유를 먹으러 다가온다.

이상한 모양의 엄마품으로 다가온다.


삐딱이가 송아지를 낳던 날

우리는 걱정이 되었다.

못난이를 닮아 송아지를 핥아 주지 않으면 어쩌지?

젖을 주지 않으면 어쩌지?


하지만 삐딱이는 삐딱한 얼굴을 하고서도

제 새끼를 핥아주고 젖을 준다.


받아본 적 없는 어미의 사랑을

새끼에게 품어준다.



it's gonna be another day with the sunshine

햇살은 나의 창을 밝게 비추고,

반쯤 눈을 떴을 땐 그대 미소가 나를 반겨요...

내 볼에 살짝 입 맞추고 사랑한다고 속삭였죠.

내 머리맡엔 morning coffee 혹시 내가 꿈을 꾸나요

it's gonna be another day with the sunshine

햇살은 나의 창을 밝게 비추고

반쯤 눈을 떴을 땐 그대 미소가 나를 반겨요.


-장나라) Sweet dream-



20년 전 삐딱이가 생각나

그 시절 귀에 익었던 노래를 찾아 들어봤다.

삐딱이의 삐딱했던 얼굴과 따뜻했던 숨결이 전해져

가슴이 서늘해지다가도 이내 따뜻해진다.


삐딱이의 생은 짧았지만 달콤한 꿈을 꾼 것처럼 너의 여운은 선명히 남아 있다.


삐딱이에게 먹일 우유를 들고

캄캄하고 냄새나던 축사를 드나들던 나는 이제 진짜 엄마가 되었다.

가끔 못난이 같은 엄마가 되기도 삐딱이 같은 엄마가 되기도 하면서...


엄마 인생 11년 차

연차가 쌓일 수록 좌절도 많이 쌓여간다.

'엄마가 되는 길은 참으로 어렵구나.'

'엄마가 되어봤다고 생각했는데 어림없구나.'


의문도 차곡차곡 쌓여간다.

'엄마는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가?'

'삐딱이처럼 나도 기특한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옛 시절 그리운 인연이 떠오르지만 다시 만날 길이 없을 때면

머릿속 물음표가 가득해 작아질 때면,

추억을 머금은 음악으로

마음을 달래 본다.


그 음악, 참 어여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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