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이동순 산문집
*H 라는 인물은 문화계에서는 인지도 높은 인물이라 이니셜로 대신합니다.
몇 해 전 무더운 여름,
서울로 향해 휘어져 뻗은 고가다리 아래 작업실에서 H를 만났다. 풍문으로만 듣던 그의 모습은 흠없이 아름다웠다. 글과 노래로 그려오던 환상은 실물 앞에서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봄이 오면 화려한 철쭉보다는 진달래처럼 피어 있었고, 녹음이 짙은 산속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대나무처럼 빛을 내는 것만 같았다. 오래되어 보이는 뿔테안경 너머의 순수한 웃음과 환대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안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하찮은 나의 신앙을 변증 하고자 기독교 출판물에 깊이 물들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성범죄자 전 씨의 책을, 몇십억을 내놓으라 엄포 놓던 노인의 믿음의 본질을 아무 의심 없이 끝까지 읽어버렸었다. 그 외에도 수많은 기도 관련 서적들, 다소 탈기독적인 책들을 기웃거리던 어느 여름,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동네 책방에서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죽은 신을 위하여] _슬라보예 지젝
웬 정신 나간 놈인가 싶어 한참을 서서 읽었다. 이백 페이지도 되지 않는 얇은 책을 들고 한 시간 동안 몇 장도 넘기지 못했다. 그것이 내가 처음 만난 철학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서관에서 [노마디즘]을 집어 들었지만 1·2권 합쳐 천 페이지를 훌쩍 넘긴 그 책 역시 끝내 읽지 못했다. 그 책이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천 페이지짜리 저작의 해설서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 신학은 내 관심 밖이 되었다.
'절대 타자'라는 전제를 끝내 깨지 못한 채 자기 확신만 반복하는 그들의 언어는 학문이라기보다 주문처럼 들렸다. 나는 철학과 역사, 시와 문학의 세계를 헤엄쳐 다녔다. 실존철학에 흠뻑 젖어 몇 년을 살았고, 한때는 룸펜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꿈꾸며 정치철학에까지 깊이 빠져든 적도 있었다.
소설가 ‘한강’ *이후,
내 사상은 강남과 강북으로 갈라져버렸다.
그러니까 H를 만나기 전까지 내가 말하던 문학이란 [어린 왕자]나 [갈매기의 꿈], 기껏해야 「꽃」 같은 시를 들먹이며 뭇 소녀의 마음이나 훔치던 소인배의 언어였다. 어느 회심과 회개 *이후, 나는 삭개오처럼 나무에서 내려온 사람이 되었다.
H는 내게 '노래의 발자취'를 들려주었다.
함께한 동무의 주식 차트와는 아무 상관없는 어제의 노래, 그저께 저작거리에서 사라진 쪽지에 적힌 루머와 썰, 그런 지담전설들이었다. 어찌나 그 시간이 좋았던지 그의 부친 친구가 남긴 책들까지 탐독하게 되었다. 윤오영 선생의 산문집에는 잃어버린 말들이 가득했다.
나는 오래전부터 글쓰기란, 낱말을 수집하는 일이라 믿어왔다. 그 믿음은 김애란 누나에게서 배웠다.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침묵의 미래]에서 그는 언어와 모어, 낱말과 말의 소멸을 이야기했다. 그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사라지는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내 청춘에 대해, 대지를 달구던 뜨거운 책들에 대해, 그리고 우리 인생 속 지지부진한 것들에 대해 말이다.
늦깎이 또는 뒷북.
그것이 내 삶을 지탱해 왔다.
유행이 다 지나고 아무도 관심 갖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관심을 갖는다. 굳이 알 필요 없는 것들까지 샅샅이 들춰보면서. 옛이야기에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빛이 있었다. 더는 쓰이지 않는 문장 구조와 단어들, 사투리가 변형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시간들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그 현장에 없었음에도 마치 그 시간에 동참한 것 같은 착각은 나를 더욱 깊이 이 시간 속으로 끌어당겼다. 이동순 시인이 다시 꺼내 읽었다는 편지들 속에서 나는 할머니를, 아버지와 어머니의 청춘을 만났다.
나의 속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던 할머니는
내 불알주머니를 매만지며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로 “오메, 내 새끼” 하고 시를 읊어주셨을 것이다
다 죽어가던 나를 껴안고 달리던
엄마의 젖가슴에서 들리던
격렬한 심장 소리 같은 시를
귀가 멀어
남다른 감각으로 엄마를 꼬셨을
아버지의 격조 높은 시어를
이승에 없는 할머니는 저승에서도 받아볼 수 있는 붉은 밧줄이 시로 남아 있다. 강신주는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에서 [철학적 시 읽기의 즐거움]을 읽은 독자의 인상으로 시인과 철학자를 가름했다. 15년이 지났는 데도 그때의 감탄이 여전히 새록새록하다.
“시인은 그것이 무슨 씨인지도 모른 채 씨를 뿌리고 지나갑니다. 시간이 흘러 그 씨앗들은 각기 다른 꽃을 피우겠지요. 그러면 철학자가 뒤따라가 그 씨가 어떤 꽃의 씨였는지를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_미상
오늘 나는 H와 나의 무명들에게 편지를 쓴다.
이는 김애란 누나에게 배워 줄 곧 쓰는 문장임을 밝혀둔다.
-안녕하세요.
가늠할 수 없는 안부들을 여쭙니다.
잘 계시는지요. 안녕 하고 물으면,
안녕 하고 대답하는 인사 뒤의 소소한 걱정들과
다시 안녕 하고 돌아선 뒤 묻지 못하는
안부 너머에 있는 안부들까지 모두, 안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