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물길처럼 갈라진 골목으로 들어섰다.
장대 끝에 흰 깃발과 붉은 깃발이 매달려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문 하나가 열리더니 한복을 입은 여자가 나왔다. 그 뒤로 돼지 한 마리를 이고 나온 남자 인부가 보였다. 마지막으로 어린 여자아이가 나타났는데, 한 손에는 쇠스랑을, 다른 손에는 식칼 두 자루를 들고 있었다.
아이의 손에 쥔 쇠가 유난히 번들거려 보였다.
나는 그 집 앞을 그냥 지나치려 했다.
“에이, 재수 없으려니 이거나 맞고 가.”
여자가 말했다. 손에서 무엇인가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팥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팥알이 신발에 튀어 올랐다. 말을 꺼낼 새도 없이 여자는 몇 번이나 더 뿌렸다.
“자, 이거 마시고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재수가 없다는 말이 나를 향한 저주처럼 들려, 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며칠 전부터 꿈속에서 장구 소리와 징 소리가 들리곤 했다. 꿈속에서는 언제나 그 소리가 골목 끝에서부터 천천히 가까워졌다. 깨어나면 귀 안쪽이 울렸다. 그날은 이상하게도, 깨어 있는 지금 그 소리가 더 또렷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여보세요?”
재성이었다.
얼마 전, 경기도 시흥의 작은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다며 연락을 해왔던 동생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 교회에서 평생 목회를 하다 늙은 목사였다. 재성은 그런 삶을 혐오하듯 말하곤 했다. 결국 그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 무렵 나는 신학에 환멸을 느끼고 교회를 떠났다. 몇 번의 논쟁 끝에 우리는 연락을 끊었다.
그런 그가 먼저 전화를 해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나를 이해해 왔다는 사람처럼.
그날 재성의 숨은 가빴다.
“형, 말대로 했어.”
그 말 한마디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는 횡설수설하며 지금 당장 이리로 와줄 수 없냐고 물었다. 꼭 와야 한다고, 주소를 문자로 남기겠다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다시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나는 오늘은 갈 수 없다고, 무슨 일인지부터 말해보라고 문자를 보냈다.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취재해 온 자료를 정리하고 백업하고 있었다. 블로그에는 몇 개의 댓글과 쪽지가 쌓여 있었지만 제대로 보지 않았다. 재성만이 몇 주 전부터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오늘 가져온 자료가 더 중요했다.
당나라 임제의현이 직접 남겼다고 전해지는 탱화의 밑그림. 초본이었다. 불교의 탱화는 전승이 전부다. 개인의 해석이 개입될 여지는 없다. 그런데 그 초본에는 전통에서 벗어난 선이 남아 있었다. 학계에서는 애초에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온 흔적이었다.
내가 집요하게 붙들고 있는 건 그 선이 아니었다.
숫자였다.
임제는 다섯 점의 밑그림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불교는 오래도록 정해진 상징의 숫자들을 반복해 왔다. 넷, 일곱, 여덟, 그런데 다섯이었다. 왜 다섯이었을까. 그 질문은 밑그림을 들여다볼수록 더 선명해졌다.
그 그림을 몰래 가져왔다는 통일신라의 도선국사. 풍수지리에 능했다는 사실만이 희미한 단서처럼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설명할 수 없을 뿐이었다.
막내 이모는 잠실이 막 개발되던 시절 풍납동으로 올라왔다. 신앙이라고 해봐야 큰언니가 불같이 믿어대니 어쩔 수 없이 따라 믿은 것이었다. 갈 곳이 없던 이모는 교회 옥상 쪽방에 세 들어 살았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늦게 돌아와 잠들었다.
어린 내가 찾아가면 이모는 늘 시계를 사주었다. 예쁜 시계였다. 나는 그 시계를 늘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잃어버렸다. 그럴 때마다 이모는 웃으며 말했다.
“기완아, 너 자꾸 시간을 벗어나 살려고 하는구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오래도록 몰랐다.
다음 날, 재성이 알려준 시흥의 교회에 도착했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장례식이 치러지고 있었다. 북극성을 향해 날아가라는 듯 길게 늘어진 흰 천, 은하수를 건너라는 의미라며 배 모양으로 꾸민 꽃상여가 마당에 놓여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들었다.
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형, 왔어?”
재성이었다. 검은 상주복을 입고 서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눈앞이 하얗게 번졌다.
“야, 네가 알려준 대로 했는데 죽었잖아.”
멱살이 잡혔다. 입안에 쇠 맛이 번졌다.
“왜 안 되는 건데. 그렇게 하면 된다며.”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멀리서 장구 소리가 들렸다. 꿈속에서만 울리던 그 느린 박자였다. 팥이 신발에 튀던 감각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날 골목에서 뿌려진 것은 저주가 아니라,
시간을 넘지 말라는 경고였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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