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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조선의 귀신

타츠키를 아시나요?

by 랑시에르

조선의 귀신

평소 종교적 미스터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진우는 어느 날, 운명처럼 한 헌책방에서 『조선의 귀신』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책의 낡은 표지를 스치는 순간, 그는 이 책이 단순한 민속서가 아니라는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손끝에 닿는 먼지, 오래된 종이의 냄새, 마치 오랜 잠에서 깨어나는 무언가의 숨결 같았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종이 사이로 바람이 일렁이듯, 오래 묵은 시간의 입김이 새어 나왔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신라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낯선 이름들이었다.


페르시아의 마즈다 교주 차라투슈트라,
당나라의 마지막 배화교 무녀 아미,
그리고 조지아 출신의 주술사 기오르기.


익숙지 않은 이름들이 신라의 전설에 얽혀 있다는 사실은 그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러나 진우의 시선을 멈추게 한 이름은 따로 있었다. 샤캬족 출신, ‘고타마 싯다르타의 후예’로 불린 마하 칼라라는 인물. 그 이름은 불교의 신화와 마귀의 이름을 동시에 떠올리게 했다.


그는 책의 발간 연도를 확인했다.
1929년 — 일제강점기.
총독부의 지시로 일본 민속학자 무라야마 지쥰이 조선의 무속 신앙을 연구하며 쓴 책이었다. 그는 조선 각지의 민속과 제의 기록을 수집하면서, 신라의 전설 속 ‘외래의 영혼들’을 추적한 인물이었다. 무라야마는 기록 속에서 한 인물에게 집착했다.


이름만 남은 존재, 타츠키(タツキ).


성별조차 불분명한 이 인물은 일본의 센다이 출신으로, 음양사에게 수련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었다. 그는 히타치의 버려진 아이였고, 한 스님이 그를 데려가 신라로 보냈다는 것이다. 이상한 점은, 스님이 그를 보낸 직후 이유를 알 수 없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무라야마는 다시 조선으로 돌아와 원효의 기록에서 ‘타츠키’라는 이름을 찾아냈다. 그는 신라의 황룡사에서 수행하던 이방의 아이였고, 황룡사 아래 흐르던 샘물과 일본 히타치의 전설적 샘이 같은 물줄기에서 이어진다는 기이한 기록도 함께 남아 있었다.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타츠키는 물의 신이다. 그러나 그녀는 신이 아니라, 신을 모방한 존재였다.”


진우는 페이지를 넘겼다. 그날 밤, 그는 책 속의 ‘비밀 기록’을 발견했다. 거기엔 1942년이라는 연도가 적혀 있었다. 무라야마가 전쟁 중 다시 조선에 와 책을 재작성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희미하게 이런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1972년, 서울대학교 종교학부에 기증함.”


출판 정보는 없었다.

인쇄본이 아닌, 필사본이었다.
진우는 직감했다. 이 책은 세상에 단 한 권뿐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책을 덮지 못한 채 밤을 새웠다. 무라야마의 기록은 점점 더 불길하게 흘러갔다. 그는 불국사에서 발견한 고문서를 언급했다.


“불국사 두 탑 사이,

안양전으로 향하는 입구 앞에서 동서남북으로 일곱 걸음, 다시 동쪽으로 여덟 걸음을 걸어라. 그 자리에 한 자 반을 파면, 불국사의 탄생 비밀을 알 수 있으리라.”


무라야마는 비가 퍼붓는 밤, 그 지침대로 땅을 팠다. 그리고 나무로 된 함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이름조차 불길한 여자의 형상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타츠키였다. 그는 함을 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 뒤, 마지막으로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자장율사를 찾아가 금강계단에 묻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신라는 다시 불탈 것이다.”


그 문장을 끝으로 무라야마의 기록은 끊겼다.

진우는 책을 덮지 못한 채 며칠을 지새웠다. 불길한 꿈이 이어졌다. 꿈속에서 그는 불국사의 돌계단을 밟고 있었다. 발밑에서 물소리가 났다. 계단 아래엔 얼굴 없는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무언의 입술로 단 한마디를 반복했다.


“네가 나를 읽었지.”

그날 새벽, 그는 불안한 마음에 검색을 하다 월정사의 자연 스님이 쓴 『사찰의 비밀』이라는 책을 발견했다.거기엔 짧은 문장이 있었다.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보수하던 중,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던 그 자리에서 ‘타키’라는 아이에 대한 문서가 나왔다.”


그는 바로 월정사로 달려갔다.
하지만 자연 스님은 이미 일본 센다이로 떠난 뒤였다. 대신 스님이 남긴 메모 한 장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츠키는 여자아이였습니다. 신라 사람들은 그녀를 ‘타키’라 불렀죠. 신라의 무녀 초원은 그녀를 지키다 사라졌습니다. 그 둘은 신과 인간의 경계를 넘은 존재였어요.”


진우는 자연 스님에게 긴급히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답장이 도착했다.


보낸 사람: 자연 스님
제목: 타츠키에 대하여


“나는 지금 센다이에 와 있습니다.
무라야마 지쥰의 다른 책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요. 그 책은 그냥 읽으면 안 됩니다. 타츠키는 단순한 소녀가 아니에요. 그녀는 일본 무교에서 ‘요정’이자 ‘요괴’로 전해집니다. 신계에서 추방된 선녀의 딸이었죠. 무라야마가 쓴 책의 표지를 보세요. 가슴을 가르는 팔처럼 보이는 형상이 있지요? 그건 타츠키가 무라야마의 심장을 뜯어가는 모습입니다.


무라야마는 단순한 민속학자가 아닙니다. 신계에서 내려온 지장보살의 현현이었어요. 그는 타츠키의 저주를 막으려 했습니다. 진우 씨, 그 책을 끝까지 읽지 마세요. 그건 타츠키를 깨우는 주문입니다. 혹시 이미 다 읽으셨나요?”


진우는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썼다.

“네… 이미 다 읽었습니다.”

잠시 후, 답장이 왔다.


“그 책은 결계를 푸는 열쇠입니다.
부처님의 진법은 4와 8의 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4월 8일, 그날만이 타츠키를 다시 봉인할 수 있는 날입니다. 내일이 4월 7일, 타츠키의 힘이 가장 강해지는 날입니다. 제발 그 책을 손에서 내려놓으세요. 봉유 스님을 보낼 테니, 문을 잠그고 기다리세요.”


그는 메일을 덮었다.
모니터의 불빛이 그의 얼굴을 파랗게 물들였다. 창밖에선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낮은 물소리가 들렸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창가로 걸어갔다. 유리창에는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 순간 —
물방울 사이로 한 소녀의 얼굴이 비쳤다.
눈이 없었다. 입술이 열렸다.


“네가 나를 읽었지.”


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책상이 흔들렸고, 『조선의 귀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책의 마지막 장이었다. 잉크가 번져 새겨진 문장 한 줄.


“4월 8일, 타츠키는 깨어났다.”


다음 날, 월정사에서 봉유 스님이 도착했을 때, 진우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탁자 위에는 검게 그을린 종이 한 장이 남아 있었다. 그 위엔 손으로 쓴 듯한 문장이 있었다.


“타키는 물의 신이 아니다.
타키는, 내가 본 거울 속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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