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 무당을 찾아서.
무속인을 본격적으로 취재하기 시작한 것이 3년 전이다. 직접 만난 그들의 세계는 책과 영상으로 분석한 것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흥미로웠다.
그렇다면 지금의 무당들도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요’다. 통계적으로 보면 현재 한국경신연합회에 등록된 무당은 2010년 기준 30만 명이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 만난 무당들의 체감 수치는 훨씬 높았다. 그들은 약 100만 명까지 보고 있었고, 그중 99%는 ‘가짜’라고 단언했다.
우리가 무당을 이해할 때는 지역적 특색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작두를 탄다’고 하면 무조건 황해도 굿을 하는 무당이라 보면 된다. 강화도의 만신, 고(故) 김금화 선생이 전형적인 황해도 무당의 맥을 이은 분이다. 황해도 굿은 작두를 타서 별상장군의 위엄을 과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한 ‘대살굿’으로 알려진 군웅, 즉 살풀이의 오리지널도 황해도다. 실제로 황해도 굿을 하다가 무당이 목숨을 잃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제물로 바쳐진 돼지의 생간을 직접 먹기 때문이다. 집안의 액운을 씻어내기 위해 장군신이 실린 무당은 준비된 제물에 입을 맞추고 피를 묻히며 그 고통을 대신 씻어내는 퍼포먼스를 행한다. 실제 피와 간을 먹거나 얼굴에 묻히기 때문에, 위생 문제가 심각한 여름철에는 사고가 빈번할 수밖에 없다.
이 퍼포먼스가 워낙 강력하고 볼거리가 많다 보니, 요즘은 너도나도 황해도 굿이라 사기 치는 이들이 많다. 제대로 된 굿거리를 할 줄 모르면서 흉내만 내거나, 돈을 벌기 위해 뒤늦게 배우는 무당들이 수두룩하다. 내가 취재한 무당은 정통 황해도 굿을 하는 이였다. 그의 ‘신아버지’도, 굿판을 돕는 ‘선생’도 황해도 굿의 명맥을 잇는 젊은 남자였다. 촌수로 따지면 ‘신할아버지’인 셈이다. 그들은 방방 뛰며 무칼을 흔들고 요란한 방울 소리로 신의 강림을 과시한다.
경기도 이남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대물림되는 ‘세습무’가 주를 이루기에 황해도처럼 격한 모습은 드물다. 학습을 통해 전달되는 세습무는 대부분 푸닥거리나 살풀이로 복을 빌어주는 수준이다. 충청도는 앉아서 징을 치며 경문을 외우는 ‘앉은뱅이굿’이, 전라도는 죽은 이의 한을 풀어주는 ‘씻김굿’이 주를 이룬다.
전라도에서는 마을마다 담당 무당이 있었는데 이를 ‘당골레’라 불렀다. 우리가 흔히 쓰는 ‘단골손님’의 ‘단골’이 여기서 유래했다. 더 깊게 들어가면 당골레는 본래 ‘단군’에서 나왔으며, 중앙아시아에서는 ‘텡그리(Tengri)’로 발음되었다. 북방 유목민에게서 시작된 텡그리, 즉 당골레는 제사장이자 통치자였다. 그들은 천문을 읽고 왕을 지명할 권한이 있었다. 특히 전라도에 이 용어가 왜 남았는지는 의문이나, 가야와 신라의 역사를 추적해 보면 유추할 수 있는 근거들이 나온다. 무당은 우리 고유의 것을 넘어 고대 북방 민족, 즉 12 연방국가에서 제사장을 맡았던 이들의 후예라 할 수 있다.
과거 전라도 지방의 당골레는 동네 의원처럼 마을에 상주하며 영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그 대가로 곡식과 생필품을 받았는데, 남들에게 빌어야 먹고살 수 있는 이들이 바로 무당이었다. 우리가 욕설처럼 쓰는 “빌어먹을 놈”이라는 말은 사실 무당을 지칭하는 것이었으며, 그들의 삶이 얼마나 고단하고 비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신내림이 끝이 아니다.
현실은 큰돈 들여 굿을 해도 신당을 차릴 돈이 없고, 점을 볼 줄도 모른다. 결국 ‘신부모’ 밑에서 최소 3년은 기도하고 수행하며 굿의 열두(12)거리를 배워야 한다. 굿에는 엄격한 형식이 있어 배우지 않으면 절대 집전할 수 없다. 신내림 날은 해피엔딩이 아니라 ‘개고생’의 시작인 셈이다. 진짜 제자는 이 과정을 버티며 수행하지만, 견디지 못한 ‘성격 파탄자’들이 튀어나가 ‘선무당’ 짓을 하며 세상을 어지럽힌다.
이것이 지금 무당이 급증한 원인이다. 자기 빚을 갚기 위해 영적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억지로 신내림을 강요하고, 결국 그 몸에는 신이 아닌 ‘허주(잡귀)’가 들어앉는다. 몸을 그리워하는 떠도는 영가들은 빙의되는 순간 예전의 습성을 그대로 드러내며 사람을 망가뜨린다. 한 번 몸을 얻은 영가는 절대로 나가지 않으려 하고, 결국 숙주를 죽여서 함께 데려가려 한다. 지금의 무속판은 이 ‘허주’들로 인해 심각하게 병들어 있다. 하지만 이를 막을 그 어떤 제도도, 장치도 없다. 그들은 더 이상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