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진짜 제자를 만나다
신당(神堂)의 문을 열었을 때 나를 맞이한 것은 기이할 정도의 고요함이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교회에서 자랐고, 교회를 떠난 이후에는 전국 사찰의 탱화(幀畫)를 연구하느라 법당을 제집 드나들듯 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이곳의 공기는 사뭇 달랐다. 사찰의 법당이 거대한 부처의 자비 아래 압도당하는 기분이라면, 이북 강신무의 신당은 날 선 칼날 같은 예리함과 어머니의 품 같은 온기가 공존하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정면 벽에는 황해도 굿의 전통을 잇는 이들이 모시는 ‘열두 신명’의 이름이 적힌 '명패(名牌)'들이 엄숙하게 봉안되어 있었다. 하늘의 지존인 '천존(天尊)'을 시작으로 해와 달의 기운인 '일월(日月)',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칠성(七星)'과 '제석(帝釋)', 그리고 서슬 퍼런 '장군(將軍)'과 '별상(別相)'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들은 단순히 무명지에 새겨진 글자가 아니라, 그곳에 좌정(坐定)한 신령들의 엄중한 ‘현존’이었다.
아직 신을 모신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이 ‘애동제자’의 신당은 화려한 신상(神像) 대신 정갈함이 지배하고 있었다. 신령님께 올리는 가장 순수한 정성인 '옥수(玉水)' 그릇들은 티 없이 맑은 얼굴로 열을 맞추고 있었고, 그 양옆으로는 집안의 복록을 담아두는 '불사 단지(제석항아리)'와 무당의 말문을 열어주는 '대신 단지'가 묵직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은 신령과 제자가 서로의 기운을 맞추며 신뢰를 쌓아가는 ‘정화의 시간’이기에, 비어 있는 듯한 그 공간은 오히려 신령의 기운으로 빽빽하게 차 있었다.
“신당에 들어오시면 가장 먼저 신령님들께 예를 갖춰야 합니다. 살아 계신 분에겐 한 번, 돌아가신 조상님께는 두 번이지만, 여기 계신 높은 신명(神明)들은 왕의 격을 갖추신 분들이니 세 번 절을 올리는 것이 법도지요.”
그녀의 목소리에는 서슬 퍼런 위엄보다는 신을 대하는 제자의 겸허함이 배어 있었다. 인사를 마치자 그녀는 나의 '사주(四柱)'를 물었다. 단순히 태어난 시(時)를 넘어 본적과 거주지까지 읊는 과정은 신령님께 올리는 정교한 보고서와 같았다. 이윽고 그녀가 화려한 탱화가 그려진 '무선(巫扇, 무당부채)'을 펼치고 '대신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쨍- 찰랑-’
방울 소리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공간의 밀도가 변했다. 본래 무속에서 방울은 단순히 소리를 내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고대 치우천왕이 악귀를 쫓을 때 썼다는 영험한 무구(巫具)의 후예이자, 잠든 신령을 깨우고 제자의 정신을 맑게 하여 신의 소리를 듣게 하는 '청배(請陪)'의 신호다. 그녀의 방울 소리는 귀를 파고들어 내 영혼의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듯했다.
“해동조선 대한민국, 갑진년 해운년(海運年)에... 전라남도 김 씨 자손이 답답한 마음을 풀길 없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할머니, 이 자손의 가련한 사정을 굽어살펴 주시고, 말문(末門) 열어 갈 길을 일러 주시옵소서.”
그녀는 아주 낮은 자세로 신을 청했다.
기독교에서는 무당집에 귀신이 득실거린다고 말하지만, 영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성령(Holy Spirit)이나 신령이나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거룩한 영’이긴 마찬가지다. 다만 그 성령을 대하는 태도에서, 나는 이 어린 무당이 가진 지극한 경외심을 보았다. 그녀가 방울을 흔들며 '대신할머니'께 간청하자, 마침내 무당의 입에서 서늘하고도 따뜻한 '공수(神의 말씀)'가 터져 나왔다.
“천신(天尊) 하나님을 원망하지 마세요. 그분은 사장님의 소소한 기도를 일일이 들어주지 않아요. 우주의 질서를 다스리는 분이 움직이면 세상은 지각변동이 일어나거든요. 대신, 사장님 마음속에는 이미 '미륵(彌勒)'이 계시는 걸요?”
그녀는 '화경(花鏡)'을 보듯 나의 내면을 읽어내며 환하게 웃었다. 불교에 귀의한 나의 영적 상태를 꿰뚫어 본 것이다. 세 시간 가까이 이어진 상담은 단순한 점사가 아니라 고통받는 영혼을 향한 치유의 의식이었다. 상담심리학이 이론으로 접근한다면, 그녀는 신령의 서슬 퍼런 기운으로 내면의 한(恨)을 단숨에 베어내어 따뜻한 봄바람에 말려주었다. 흔한 굿 권유조차 없었다. 그저 조상님들께 따뜻한 상 한 번 대접해 드리면 족하다는, 제자의 도리만을 일러줄 뿐이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진짜 무당’이 걸어가는 고독한 길을 보았다. '내림굿'은 끝이 아니라, 신의 제자로 살겠다는 처절한 다짐의 첫걸음이다. 제자는 평생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전국의 명산을 돌며 '산천기도'를 올려야 한다. 신은 결코 자기를 먼저 드러내지 않는다. 제자가 피눈물 흘리는 기도를 통해 신의 기운을 감지하고, 그 명호를 찾아 신당에 좌정시켜야만 비로소 신과 제자의 연이 완성된다.
그 과정을 통해 제자는 인격적으로 성장한다.
오늘날 신의 이름을 팔아 직업인으로 살아가는 종교인들이 과연 이토록 신을 두렵고 떨림으로 대하고 있을까. 내가 만난 지인 목사들 중 일부는 더 이상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신령이 직접 말씀하지 않고, 그 소리를 듣기 위한 처절한 기도가 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
신당을 나오며 나는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2년 차 애동제자의 맑은 눈동자 뒤에 숨겨진, 신을 향한 지독한 경외심과 그 고독한 수행의 흔적이 신당 안의 정갈한 공기와 닮아 있었다. 진짜 무당은 신령을 두려워할 줄 알고, 그 두려움으로 사람의 아픔을 닦아내는 존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