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다섯 가지를 알아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당집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사람들을 '단골' 또는 '당골래'라고 부릅니다. 점집에 자주 간다고 해서 부정탈 일은 전혀 없습니다. 제대로 된 무당의 신당은 그 어느 곳보다 깨끗하고 신성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기감이 좋거나 영적으로 예민한 분들은 신당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위로와 안심을 얻기도 합니다.
무당의 집은 부정을 타는 곳이 아니라, 오히려 밖에서 온갖 부정을 묻혀온 사람들이 그 부정을 털어내는 곳입니다. 그래서 현관 앞에 소금을 뿌려 부정을 치고, 오방색지(다섯 가지 색의 종이)를 찢어내는 비방을 쓰는 것입니다. 만약 내가 집에 있을 때는 불안한데, 신당에만 들어가면 마음이 평온해진다면 그곳은 정말 신성한 곳입니다. 그 집 무당이 정결하게 기도하며 신당 관리를 잘하는 '만신'이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다만, 너무 자주 찾아오면 무당도 사람인지라 피곤할 때가 있습니다. 무당에게는 돌봐야 할 '재가집(단골 신도)'이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데, 한 사람이 와서 계속 징징대면 그 사람 하나만 붙들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만약 무당이 '애동(신내림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무당)' 시절이라면 자주 방문하는 것을 반길 수도 있습니다. 점사를 맞추는 연습 대상이 되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감응력이 발달하면 무당 곁에서 실장 노릇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무당이 모시는 동자나 동녀, 애기씨들이 대신 심부름을 시키기도 합니다. 이는 무당에게 좋은 일을 해주는 격이 되니 본인이 잘 판단하셔야 합니다. 무당이 빌어주는 재가집에게 동자나 애기씨들은 그저 '엄마(무당)'를 위하는 순수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시면 편합니다.
무조건 "귀신이 붙었으니 굿해야 한다"라고 겁박하며 굿을 권하는 무당은 가짜일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왜 그 조상님이 오셨는지 사연을 알려주고 그 중요성을 자세히 납득시켜 준다면 진짜입니다. 사실 무당들도 귀신을 무서워합니다. 무당이라고 해서 다 귀신을 보는 것도 아닙니다. 영안이 밝은 분들은 잘 보기도 하지만, 일반인이 귀신을 잘 본다는 것은 '귀문(귀신이 드나드는 문)'이 열린 것이라 결코 좋은 현상이 아닙니다. 이런 분들이 소위 '사람 잡는 선무당'을 만나면 "신가물(신령의 기운이 강한 사람)"이니 "조상 가물"이니 하는 말에 속아 먹잇감이 되기 쉽습니다.
귀신을 보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은 본래 그렇게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릴 적 충격이나 '겁살' 같은 강한 살성, 혹은 요즘처럼 귀신을 부르는 문화 탓에 후천적으로 귀문이 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대인에게 정신병이나 우울증이 많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음기(영혼)는 양기(사람)를 원합니다. 한때 몸을 입고 살았던 영혼들을 이제 '영가'라 부르겠습니다. 이 영가들은 우리와 인연이 있는 분들입니다. 자기가 죽었는지도 모르거나, 저승으로 가지 못해 떠도는 영가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에도 보통 열다섯 분에서 많게는 서른 분 정도의 영가가 계십니다.
제대로 된 무당이라면 이분들의 천도를 위해 굿을 권할 것입니다. 조상님은 착한 자손에게 붙어 배가 고프다거나 묫자리가 불편하다는 신호를 보냅니다. 하지만 이런 영적인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무당은 드뭅니다. 특히 '퇴마'라는 이름으로 영가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과거 아주 유명했던 모 법사님처럼 영가에게 예의를 갖추고 사연을 들어주며 천도해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반면 그 제자를 자처하면서도 이상한 방식으로 퇴마를 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영가분들은 퇴마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와 인연이 닿은 소중한 존재임을 잊지 마세요.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기독교의 여호와(야훼) 같은 존재들은 온 우주의 창조주나 공적인 존재입니다. 이 거대한 천신들은 개인의 사사로운 기도를 일일이 들어주지 않습니다. 무당들이 천신을 모실 때 가장 정성을 들이는 이유도,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낼 이유가 없기 때문에 '지성이면 감천'의 자세로 매달리는 것입니다.
천신이 한 명의 무당에게 놀아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기도의 방향이 공동체를 위한 것이라면 몰라도, 개인의 사소한 소망을 들어주는 주체는 오직 내 부모, 내 할아버지, 내 할머니입니다.
[효과적인 개인 기도 방법]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조상님이 계신 산소나 납골당에 가는 것입니다.
1. 준비물: 제철 과일 세 가지(배, 사과, 감, 대추 등)를 홀수로 준비하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술(모르면 막걸리나 소주), 담배를 좋아하셨다면 담배도 준비합니다.
2. 산신령께 먼저 인사: 산소나 납골당에 도착하면 그곳을 지키시는 산신령님께 먼저 인사드려야 합니다. 동북 방향(1~2시 방향)에 통먹태포 하나와 막걸리를 종이컵에 따라 놓고 두 손 모아 인사하세요. "산신님, 오늘 저희 조상님께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늘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길도 살펴주세요."
3. 조상님께 기도: 이제 조상님 앞에 과일과 술을 올리고 두 번 절합니다. (살아계신 분은 한 번, 조상님은 두 번, 신이 나 왕에게는 세 번입니다.)
4. 대화하기: 절을 올린 후, 현재 겪고 있는 힘든 일이나 어려운 상황을 마음속으로 다 이야기하세요. 이것이 진짜 개인 기도를 하는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함부로 무당들이 가는 기도터나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지 마세요. 집에서 혼자 초를 켜고 기도하는 것도 위험합니다. '옳다구나' 하고 떠돌이 원한 귀신들이 올라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나 절처럼 많은 사람이 함께 있는 곳에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조상님은 차원이 다를 뿐, 우리 옆에서 다 보고 계십니다. 행실을 바르게 하고 마음으로 빌면 반드시 도와주십니다.
무당의 가장 큰 장점은 다가올 불행을 미리 예고해 주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일종의 '경고 사격'인 셈이죠. 이때 알려준 주의사항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우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점은 '의존'입니다. 예언이 한두 번 맞아떨어지면 사람은 그 무당에게 종속되기 쉽습니다. 무당이 모시는 아기씨나 선녀 신령님들은 이런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마음을 뺏기도 합니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 내 인생의 주도권까지 넘겨주며 의지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알아두실 것은, 무당이 내뱉는 '공수(신령의 메시지)'는 무당 본인이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신령님이 무당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것이라 무당 자신도 잊어버리는 것이 정상입니다. 불행을 막기 위해 액막이나 치성(간단한 정성 의례)을 드릴 수도 있습니다. 무당을 돕는 신령님들은 철저히 무당의 편입니다. 신령님들의 일 순위는 자기 새끼(무당)를 잘 불려주고 배 불려주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재가집(손님)을 도와주고 수고비를 챙기는 셈이죠.
가장 중요한 지혜는 이것입니다. 굿이나 치성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돌아가실 때가 된 분이 돌아가시거나, 일어날 수밖에 없는 큰 사고는 굿으로도 막지 못합니다. "굿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것이 무당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진정한 마음가짐입니다.
삼국시대의 '차차웅'이라는 칭호나, 중앙아시아에서 전해지는 탱그리-단군-당골레로 이어지는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고조선의 단군은 12연방국가(조선)의 제사장 역할을 맡았던 우리 민족의 뿌리였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신기가 많고 재능과 신명이 넘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역사적 DNA 때문입니다.
조선 시대 정조 때를 기점으로 국가 무당이 폐위되면서 무당은 그늘진 곳으로 숨어들었지만, 여전히 민중의 답답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해왔습니다. 우리가 현대에도 무당을 찾는 이유는 무속이 MBTI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초개인적인' 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진짜 무당이라면 과거를 맞추는 영험함을 넘어, 내 인생의 답답함을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단순히 굿을 해야 한다고 종용하는 것은 능력이 없거나 기도가 부족한 것입니다. 신을 우습게 여기고 게으른 무당이 태반인 것도 현실입니다.
요즘 일부 무당들은 인격 수양보다는 외적인 것에 치중하기도 합니다. 수천만 원짜리 고가 한복을 입고, 명품을 두르고, 성형 수술을 하며 외제차를 끄는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조상님이 시키기도 하고, 무시당하지 않으려는 방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무당의 본질은 결국 하나입니다. '점사를 잘 보고 손님의 답답함을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무당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하는 '제자'로서의 부름을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회가 혼란스러울수록 무당들은 명품에 눈독 들일 게 아니라, 치열하게 수행하고 기도하며 인성을 닦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속이 현대 사회에서 담당해야 할 진정한 역할이자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