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함 더 비기닝

당신의 입사동기가 일이 힘들다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by 닥터맥리

그 쎄---함은 도대체 언제가 처음이었을까?


사실 상사와 나는 입사동기다.

학번도 같다.

즉, 나이도 사회경험도 비슷하다는 얘기다.


우리 회사는 전국에 수십 개의 브랜치가 있고

이 브랜치를 관리하는 본부가 있다.

나와 상사는 입사 후 각각 물리적으로 아주 먼 브랜치에 배치되어 근무했으므로

입사 후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서로 교류는 전혀 없었다.

어쩌다 일 년에 한두 번 동기모임을 하면 그때 보고 인사하는 정도의 관계.


브랜치가 전국에 흩어져있다 보니 지역의 특성과 산업구조 등등에 따라

실적이 좋은 곳도 있지만 어려운 곳도 있을 수밖에 없다.

내가 속한 브랜치는 매우 어려운 곳 중의 하나였다.

모든 구성원들이 노력을 해도 쇠락한 산업을 다시 일으키는 재주는 없었다.

전국 각 브랜치에서 모인 동기들끼리 '누가 누가 더 어려운가' 배틀이 붙으면

내가 항상 1등일 정도로 일명 '답 없는 곳'이었다.


실적이 안 좋으니 윗사람들이 자주 본부에 불려 갔고

본부에서 혼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아랫사람들을 괴롭히는 걸로 푸는 게 일상화가 되어있었다.

괴롭히는 방법은 여러 가지였는데

직원들의 당연한 권리를 제한하는 게 자주 채택되었다.


휴가 결재 안 하기,

하계/동계휴가 없애버리기,

업무 상 당연히 해야 하는 외부활동 금지하기,

유연근무 금지하기,

각종 연수 제한 하기,

오후 5시 넘어서 회의 시작하기 등등

여기가 21세기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동기들은 우리 브랜치의 필연적인 저 성과 안타까워했고

내가 당하고 있는 갑질에 혀를 찼다.


입사 3-4년쯤 됐을 어느 여름날, 동기 모임이었다.

그때는 동기 나부랭이, 지금은 상사인 그(H라고 하겠다)가

원래 모임에 잘 안 나오는데 그날은 일찌감치 와 있었다.

잘 안 오던 사람이 왔으니 반갑기도 하고,

그 브랜치는 상황이 어떤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내 고충도 털어놓았다.

동기라면 마땅히 '정말 힘들겠다'는 말이 먼저 나올 거라 믿으면서.

그도 힘들다 하면 같이 분개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나: 거기는 어때요? 우리는 지역이 고령화가 심해서 성장동력이 없으니 실적이 계속 나빠져서 힘들어요.

(힘든 상황 설명) 윗사람들 갑질도 이젠 도를 지나친 수준이고요. (내가 당한 갑질 설명)

H: 왜? 왜 힘들어? 우리는 하나도 안 힘든데. 우리는 협력업체가 밥도 잘 사고,

아래 직원들도 말 잘 듣고 다 좋은데? (꺽꺽 넘어가는 웃음소리)

나: ... 네?...?

H: 나가면 잠재 고객사들도 많고 좋아. (또 그 웃음소리) 너무 회사 안에만 있는 거 아냐?

영업도 좀 뛰고 해야지.

나: ..........;;;


이런 얘기 듣자고 남부끄러운 내 사정 얘기 한 게 아닌데

이 얘기는 회사 꼰대들이나 하는 얘기지 입사 동기가 나한테 할 얘기는 아닌 것 같은데...

...

아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

내 고통을 위로나 공감이 필요한 '문제'로 보지 않고,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할 '배경'으로 삼는구나.


그때였다.


쎄-----함

(더 비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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