쎄-함의 시초가 된 에피소드가 있은 1-2년 후,
H가 본부로 파견되어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꺽꺽 웃으며 '우린 잘 되는데 왜 힘들어?' 하며 비웃더니
잘 되는 브랜치는 어쩌고 본부로 간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는 인간이었다.
(사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관심도 없었다)
그가 본부에서 저성과 브랜치의 개편 업무를 맡았다는 소식을
다른 동기를 통해 들었다.
우리 브랜치에는 특히 성과가 좋지 않은 팀이 있었는데
이 팀 덕분에 우리 브랜치 전체의 성과가 수치상 매우 낮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잘 안 되어서 그런 건지, 그래서 잘 안 되는 건지
팀 구성원 간의 불화도 심했다.
이 팀의 저 성과를 보완하기 위해서 다른 팀들이 더 갈려나갔다.
그러던 중, 이 팀을 개편하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개편이라 함은 팀이 자체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사업계획을 제안하고
본부에 타당하다 판단하면 그걸 할 수 있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팀은 개편 준비를 시작했다.
늦은 가을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오피스 창 밖으로 단풍이 너무 아름다웠던 어느 날,
H가 우리 브랜치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개편을 준비하고 있는 그 팀을 만나러 온다는 것이었다.
응? 뭔 소리래?
전국 브랜치에서 개편을 하는 팀들이 매년 몇십 개가 되기 때문에
담당이 그 팀을 다 돌아다나며 만나는 경우는 내 경험 상 없었다.
매우 의아했지만 어쨌든 입사동기가 그 멀리까지 온다 하니
브랜치에 한 명 더 있었던 동기 B가 셋이 식사나 차 한 잔 해야 할 것 같다며
H에게 연락을 좀 해달라 부탁했다.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도착해서 회의 중인가?
아님 내 번호를 저장 안 해서 모르는 번호라 안 받나?
메시지를 남겼다.
멀리 오셨는데 식사나 차 한 잔 하고 가시라고, 연락 달라고 했다.
H는 퇴근시간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혹시 나에겐 연락을 안 했지만 B에게는 했나 해서 B의 오피스에 찾아갔다.
H에게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남겼으나 연락이 없다 했더니
B는 씁쓸하면서도 뭔가 깨달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갔어요. 그 사람은 우리 안 만나요. 지사장님만 만나고 갔어요."
아,
그는 입사동기 나부랭이에게는 관심이 없구나.
오로지 높은 사람에게만 관심이 있구나.
나의 연락에는 대답할 가치를 전혀 못 느끼는구나.
그의 관심사는 오피스 구석에서 묵묵히 일하는 입사동기가 아니라
자신의 안위를 결정할 사람, 제일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뿐이었다.
그에게 인간관계란 '공감'이나 '의리'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히 '이득'과 '계급'의 영역이었다.
그런 그에게 나의 연락은 '읽을 가치도 없는 스팸'에 불과했을 것이다.
으이그
동기 왔다고 뭐 먹을까 메뉴 고민한 내가 등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