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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은 찐인가?

[과학기술의 미래와 상상] 07

by 사이에살다

VR 헤드셋을 쓰고 가상 오피스에서 오전 회의를 한다. 점심시간에는 메타버스 속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고, 저녁에는 VR 게임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협동 미션을 수행한다. 이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우리의 일상이다.




1. 가상현실의 세계로


가상현실이란 무엇인가


가상현실(Virtual Reality, VR)은 사용자가 실제와 유사한 환경이나 체험을 느끼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하지만 VR은 단순한 시각적 착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감각과 지각을 인공적으로 재구성하여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하는 기술적 장치다.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재런 래니어(Jaron Lanier)는 1980년대에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하며, 이를 "컴퓨터를 통해 창조된 상호작용 가능한 인공 환경"으로 정의했다. 그의 정의는 VR의 핵심을 명확히 보여준다. 가상현실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상호작용하고 체험하는 것이다.


가상현실은 실제 물리적 세계가 아니라 비물질적 이미지와 데이터로 구성된 인공적 세계다. 그러나 그 세계는 인간의 오감, 특히 시각과 청각, 촉각에 기반해 '현전감(presence)'—즉, "내가 지금 여기에 있다"는 실재감을—만들어낸다. 따라서 VR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인식, 그리고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것이 과연 '진짜'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가상현실은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우리 앞에 던진다.



가상현실 시스템의 진화


가상현실 시스템은 인간의 감각을 최대한 자극하여 몰입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초기의 단순한 3D 영상에서 시작해, 이제는 시각·청각·촉각·후각까지 재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몰입 시스템(Immersion System)은 사용자가 HMD(Head Mounted Display), 데이터 글러브(Data Glove), 햅틱 슈트(haptic suit) 등을 착용해 가상 세계에 완전히 몰입하는 형태다. 사용자는 가상의 숲 속을 걸으며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바람이 피부를 스치는 감촉을 느끼며, 심지어 꽃향기까지 맡을 수 있다. 최근에는 햅틱(haptic) 기술의 발전으로 촉각 피드백이 더욱 정교해졌다. 가상 물체를 잡으면 실제로 무게감이 느껴지고, 가상 벽을 만지면 단단한 저항감이 전달된다. 일부 고급 시스템에서는 온도 변화까지 재현하여, 가상의 얼음을 만지면 차가움을, 불 근처에 가면 뜨거움을 느낄 수 있다.


탑승형 시스템(Vehicle-based System)은 가상공간에서 탈것을 이용해 움직이는 형태로, HMD와 조이스틱, 그리고 실제 탑승 장치가 결합된다. 테마파크의 VR 롤러코스터가 대표적인 예다. 사용자는 실제로 움직이는 의자에 앉아 가상의 드래곤을 타고 하늘을 날거나, 우주선을 몰고 은하계를 탐험한다. 실제 움직임과 가상 이미지의 동기화는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이 시스템은 스포츠 훈련에도 활용된다. 스키 시뮬레이터는 실제 경사면을 재현하고, 자전거 훈련 시스템은 페달의 저항을 조절하여 오르막과 내리막을 구현한다.


원거리 로보틱스(Tele-robotics)는 가상현실에 로봇 기술을 결합한 형태다. 사용자는 VR 장비를 통해 원격지의 로봇을 조종하며, 로봇의 카메라와 센서가 전달하는 정보를 마치 자신이 그곳에 있는 것처럼 경험한다. 2001년 뉴욕의 외과의사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는 환자의 담낭을 원격으로 제거한 수술은 의료계에 큰 충격을 주었다. 화성 탐사 로봇의 조종도 이 기술을 활용한다. 지구에서 수억 킬로미터 떨어진 화성의 로봇을 조종하는 과학자들은 VR을 통해 마치 화성 표면을 직접 걷는 듯한 경험을 한다. 이러한 시스템들은 단순히 영상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물리적 거리와 공간의 제약을 초월하여 인간이 '다른 장소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경험을 창조한다.


가상현실이 만드는 새로운 경험


가상현실이 만들어내는 효과는 기술적 기능을 넘어 우리의 일상과 사회로 확장된다.


원격현전(tele-presence)은 사용자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존재한다'는 느낌을 받는 효과다.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급증한 원격 회의와 VR 회의는 질적으로 다르다. VR 회의실에서는 참가자들이 아바타로 나타나 실제 회의실에 앉은 것처럼 눈을 마주치고, 제스처를 사용하며, 가상 화이트보드에 함께 그림을 그린다.


모형화(modeling)는 건축, 항공, 의료 등에서 실제 환경을 정밀하게 모사하여 실험하고 검증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건축가는 설계한 건물 안을 실제로 걸어 다니며 공간감을 확인하고, 항공 엔지니어는 가상 비행기를 조종하며 설계의 문제점을 발견한다.


리허설(rehearsal)은 위험하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상황을 가상으로 재현하여 반복 연습할 수 있게 한다. 소방관은 가상 화재 현장에서 대피 경로를 훈련하고, 외과의사는 복잡한 수술을 가상으로 수십 번 연습한 후 실제 수술에 임한다.


오락(entertainment)은 가장 대중적인 VR 활용 분야다. VR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단순히 화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게임 세계 안에 들어가 직접 검을 휘두르고, 마법을 사용하고, 괴물과 싸운다. 이처럼 가상현실은 인간의 '현전감'을 기술적으로 생산하는 장치이며, 점점 더 우리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VR 장치를 이용하여 게임하는 장면



2. 현실의 확장: XR과 메타버스


XR이 만드는 새로운 세계


VR은 이제 단일 기술로 존재하지 않는다. 확장현실(XR, eXtended Reality)이라는 더 넓은 기술군으로 발전하면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는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 XR 기술은 인간이 인식하는 '현실'의 층위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한다. 더 이상 현실은 하나가 아니다. 물리적 현실, 증강된 현실, 혼합된 현실, 대체된 현실이 복잡하게 얽혀 우리의 일상을 구성한다.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은 실제 현실 위에 가상 이미지와 정보를 덧입히는 기술이다. 스마트폰 게임 포켓몬고(Pokémon GO)를 떠올려보자. 사용자는 실제 거리를 걸으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 그 위에 덧입혀진 가상의 포켓몬을 본다. 현실 공간은 그대로지만, 디지털 정보가 더해져 '하이브리드 공간'이 된다. 자동차의 헤드업 디스플레이(HUD)도 AR의 좋은 예다. 운전자는 앞 유리를 통해 실제 도로를 보면서 동시에 속도, 내비게이션, 안전 경고 등의 정보를 함께 본다. 의료 분야에서 AR은 혁명적이다. 외과의사는 AR 안경을 쓰고 환자의 몸을 보면, 그 위에 CT 스캔 이미지가 겹쳐져 나타난다.


혼합현실(MR, Mixed Reality)은 AR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킨 형태로, 현실과 가상이 단순히 겹쳐지는 것을 넘어 서로 상호작용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가 대표적이다. MR 안경을 쓰고 실제 탁자를 보면 그 위에 가상의 홀로그램 공이 나타난다. 이 공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다. 손으로 밀면 굴러가고, 탁자 끝에 도달하면 떨어진다. 가상 객체가 실제 물리 법칙을 따르는 것처럼 행동한다.


대체현실(SR, Substitutional Reality)은 물리적 현실을 완전히 다른 현실로 대체하는 기술이다. 좁은 방에 있는 사용자가 SR 헤드셋을 쓰면 광활한 초원이나 화려한 궁전 안에 있는 것처럼 경험한다. 메타버스 플랫폼들이 추구하는 것도 일종의 SR이다. 사용자는 물리적으로는 자신의 집에 있지만, 메타버스 안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아바타가 되어 다른 세계에서 활동한다.


메타버스: 가상이 만든 새로운 사회


가상현실이 메타버스(Metaverse)와 결합하면서 단순한 기술적 체험을 넘어 새로운 사회 공간이 탄생했다. 메타버스는 '초월(meta)'과 '세계(universe)'의 합성어로, 3차원 가상공간 속에서 사용자들이 아바타로 만나 상호작용하고 경제·사회·문화 활동을 하는 디지털 우주다.


로블록스(Roblox), 제페토(Zepeto), 메타의 호라이즌 월드(Horizon Worlds) 같은 플랫폼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이 활동한다. 이들은 단순히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 대화하고, 콘서트에 가고, 쇼핑을 하며, 심지어 가상 부동산을 거래한다. 가상공간의 땅이 실물 경제의 가치로 거래되기도 한다. 구찌(Gucci)는 메타버스에서 한정판 가상 가방을 실제 가방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했고, 나이키(Nike)는 가상 운동화를 출시했다. 이런 경제 활동은 더 이상 '가상'이 아니라 실물 자산과 연결된 '진짜' 경제다.


메타버스는 단순한 놀이 공간을 넘어 사회적 실험의 장으로 진화하고 있다.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많은 대학들이 메타버스에서 입학식과 졸업식을 열었다. 학생들은 아바타로 참석해 친구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감동의 순간을 나눴다. 물리적으로는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이 느낀 감정과 경험은 진짜였다.


기업들은 메타버스에 가상 오피스를 마련하고 직원들을 고용한다. 직원들은 아바타로 출근해 회의를 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의료 분야에서도 메타버스가 활용된다. 공포증 환자들이 가상 환경에서 점진적으로 두려움의 대상에 노출되는 치료를 받는다. 고소공포증 환자는 가상의 고층 건물에서 시작해 점차 높이를 올리며 두려움을 극복한다. 교육 분야에서 메타버스는 혁명적이다. 역사 수업에서 학생들은 고대 로마나 조선 시대로 '시간 여행'을 가서 그 시대를 직접 체험한다. 과학 수업에서는 인체 내부로 들어가 세포와 장기를 관찰하거나, 우주로 나가 행성과 별을 탐험한다.


메타버스는 인간 존재의 '장소성'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물리적 공간이 아닌 디지털 공간 안에서도 인간은 관계를 맺고, 감정을 느끼며, 의미 있는 경험을 한다. 철학적으로 볼 때, 메타버스는 "가상현실이 또 하나의 진짜 현실로 작동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3. 가상현실은 가짜인가, 진짜인가


현실과 감각의 관계


'현실(reality)'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는 "현재 실제로 존재하는 사실이나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인간이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문제는 복잡해진다. 인간은 현실을 직접 경험하지 못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감각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뇌가 처리하고 해석한 결과다. 눈은 빛의 패턴을 감지하고, 귀는 공기의 진동을 포착하며, 피부는 압력과 온도를 느낀다. 이 원시적인 신호들이 뇌로 전달되면, 뇌는 이를 종합하여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통합된 경험을 만들어낸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이 결코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들어오는 정보를 단순히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재구성한다. 우리가 보는 색깔, 듣는 소리, 느끼는 촉감은 모두 뇌가 만들어낸 주관적 구성물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보는 '빨간색'은 약 700 나노미터 파장의 빛에 대한 뇌의 해석이다. 하지만 다른 생명체는 같은 빛을 다르게 경험한다. 꿀벌은 자외선을 볼 수 있지만 빨간색을 보지 못하고, 개는 파란색과 노란색만 구별한다. 그렇다면 '진짜' 색깔은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전자기파일 뿐이고, 색깔은 각 생명체의 감각기관과 뇌가 만들어내는 주관적 경험이다.


이는 현실 인식의 핵심을 보여준다. 현실은 객관적으로 '거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인지 과정을 거쳐 구성되는 것이다.


가짜 현실이라는 주장: 플라톤과 데카르트


이런 감각의 불확실성 때문에 많은 철학자들이 감각을 불신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유명한 '동굴의 비유'를 제시했다. 이 비유에서 플라톤은 감각의 주관성과 편성을 지적하고 있다. 동굴 속에 묶여 있는 죄수들은 평생 동굴 벽만 바라본다. 그들 뒤에서 불이 타오르고, 그 사이로 사람들이 물건을 들고 지나간다. 죄수들은 벽에 비친 그림자만을 본다. 그들에게 이 그림자가 바로 현실이다. 하지만 만약 한 죄수가 풀려나 동굴 밖으로 나가면, 태양 아래의 실제 세계를 보게 된다. 그때 그는 깨닫는다. 자신이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실재의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것을! 플라톤에게 감각 세계는 진정한 실재(이데아)의 불완전한 모방일 뿐이다. 우리가 보고 만지는 것들은 변하고 소멸하지만, 진정한 실재는 영원불변하며 오직 이성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 역시 감각의 불확실성을 지적했다. 그는 『성찰』에서 유명한 회의의 방법을 제시한다. 데카르트는 둥근 그릇이 특정 각도에서 보면 찌그러져 보일 수 있고, 꿈속에서 깨어 있다고 확신하지만 실제로는 꿈이며, 심지어 악한 악마가 우리를 속여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한다고 믿게 만들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한 끝에 단 하나 의심할 수 없는 진리에 도달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감각은 우리를 속일 수 있지만, 의심하고 생각하는 나 자신의 존재만큼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플라톤과 데카르트에게 진짜 현실은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세계였다. 플라톤에게는 이데아의 세계, 데카르트에게는 이성으로 파악되는 본질적 실재가 그것이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상현실은 감각을 통해 인위적으로 구성된 이중의 모사물이다. 이미 불완전한 감각 세계를 다시 한번 기술적으로 재현한 것이므로, 진리에서 두 단계나 멀어진 '가짜 중의 가짜'인 셈이다.


플라톤의 동굴 우상



진짜 현실이라는 주장: 버클리와 굿먼


하지만 감각이 불완전하다고 해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경험이 '가짜'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까? 다른 철학자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다. 18세기 아일랜드의 철학자 조지 버클리는 급진적인 주장을 한다: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Esse est percipi)." 즉, 지각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가 숲에서 쓰러질 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그 소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버클리의 관점에서 보면 물질적 실재가 감각과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생각 자체가 증명 불가능한 가정이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지각과 경험뿐이다. 따라서 현실이란 지각의 총체이며, 지각 밖의 '객관적 현실'은 의미 없는 개념이다.


20세기 미국의 철학자 넬슨 굿맨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세계제작의 방법들(Ways of Worldmaking)』에서 "우리는 세계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든다"라고 주장한다. 과학자는 과학의 언어로 세계를 구성하고, 예술가는 예술의 언어로 세계를 구성한다. 그리고 각각의 구성된 세계는 모두 정당하다. 굿맨에게 하나의 절대적 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세계 버전들(world versions)'이 있을 뿐이다. 과학적 세계, 예술적 세계, 일상적 세계는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가진 현실의 버전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상현실도 하나의 정당한 세계 버전이다. 그것은 디지털 기술이라는 언어로 구성된 세계이며, 사용자의 감각과 경험을 통해 현실성을 획득한다.


조지 버클리와 넬슨 굿맨


인간이 느끼는 것이 곧 현실이다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자.. 인간이 실제 세계를 인식하는 과정과 가상현실을 경험하는 과정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가 있을까?


실제 세계에서:

외부 자극 → 감각기관 → 신경신호 → 뇌의 처리 → 의식적 경험


가상현실에서:

디지털 자극 → 감각기관 → 신경신호 → 뇌의 처리 → 의식적 경험


두 경로를 비교해 보면,, 감각기관 이후의 과정은 동일하다. 뇌는 신경신호의 출처를 구별하지 못한다. 망막에 도달한 빛이 실제 사과에서 반사된 것인지 VR 디스플레이에서 나온 것인지 뇌는 알 수 없다. 뇌가 만드는 '빨간 사과'의 경험은 두 경우 모두 동일할 수 있다. 실제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연구들은 가상현실 경험이 실제 경험과 유사한 뇌 활성화 패턴을 만든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거미를 보는 것과 VR로 거미를 보는 것 모두 공포증 환자의 편도체(두려움을 처리하는 뇌 영역)를 활성화시킨다. 신경과학적으로 볼 때, 두 경험은 동등하게 '진짜'다.


다양한 현실의 층위


더 나아가, 생명체마다 경험하는 현실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해 보자. 인간은 가시광선 영역(약 380-700nm)의 빛만 볼 수 있지만, 벌은 자외선을 보고 뱀은 적외선을 감지한다. 개는 인간이 듣지 못하는 고주파 소리를 듣고, 박쥐는 초음파로 세계를 '본다'. 상어는 전기장을 감지하여 먹이를 찾는다.


그렇다면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일까? 인간이 보는 세계가 벌이 보는 세계보다 더 진짜라고 할 근거는 없다. 각 생명체는 자신의 감각 체계에 맞는 현실을 구성하며, 그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생물학자 야콥 폰 윅스퀼(Jakob von Uexküll)은 이를 '환경세계(Umwelt)'라고 불렀다. 각 생명체는 고유한 환경세계를 살아간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상현실은 기술을 통해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환경세계다. 그것은 물리적 현실과 다른 규칙을 가질 수 있고, 다른 감각적 특성을 가질 수 있지만, 인간의 의식이 경험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한 그것은 하나의 현실이다.



4. 새로운 현실 이해: 다층적 현실 개념


다층적 현실


이제 우리는 "가상현실은 진짜인가, 가짜인가"라는 이분법적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더 적절한 질문은 "가상현실은 어떤 종류의 현실인가?"이다.


현대의 우리는 여러 층위의 현실을 동시에 살아간다:

* 물리적 현실(Physical Reality) - 물질과 에너지로 구성된 세계. 중력, 전자기력 등 물리 법칙이 지배한다.

* 지각적 현실(Perceptual Reality) - 인간의 감각기관이 구성하는 세계. 색깔, 소리, 냄새 등 주관적 경험의 세계다.

* 사회적 현실(Social Reality) - 인간의 합의와 제도가 만드는 세계. 돈, 국가, 법률, 결혼 같은 것들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 않지만 강력한 현실적 힘을 가진다.

* 가상적 현실(Virtual Reality) - 디지털 기술이 구성하는 세계. VR, AR, 메타버스 등이 여기 속한다.


이 층위들은 서로 독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복잡하게 얽혀 있고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메타버스에서 이루어진 가상 부동산 거래(가상적 현실)는 실제 화폐로 결제되고(사회적 현실), 법적 효력을 가지며(사회적 현실), 당사자에게 실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지각적 현실).


현실의 재정의


결국 현실이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재정의할 수 있다: 현실이란 인간의 의식이 일관되고 의미 있게 경험하는 모든 것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가상현실은 의심의 여지없이 현실이다. 그것은 물리적 현실과 다른 기반 위에 구축되었지만, 인간의 경험과 의식에게는 동등한 현실성을 가진다.


중요한 것은 '진짜냐 가짜냐'가 아니라 '어떤 특성을 가진 현실이냐'다. 물리적 현실은 지속성과 공유성이 높다. 내가 방을 나갔다 들어와도 책상은 그대로 있고, 다른 사람도 같은 책상을 볼 수 있다. 반면 가상현실은 가변성과 맞춤성이 높다. 세계의 규칙을 바꿀 수 있고, 개인마다 다른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이런 다층적 현실 개념은 단순히 철학적 논의가 아니라 실천적 함의를 가진다.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이라면, 거기서 일어나는 일에도 윤리적 책임이 따른다. VR에서 누군가를 폭행하는 행위는 어떨까? 물리적 신체에 직접적 해를 가하지는 않지만, 피해자는 실제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다. 메타버스에서의 사기나 절도는? 가상 재화라도 실제 가치가 있다면 이는 실제 범죄가 아닐까? 반대로 가상현실에서의 긍정적 경험도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 VR을 통한 교육, 치료, 예술적 경험은 '가짜'가 아니라 진정한 성장과 치유를 가져온다. 메타버스에서 형성된 우정과 공동체는 의미 있는 사회적 관계다.






5. 마치며: 확장되는 현실의 지평


"가상현실은 진짜 현실인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이 탐구는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귀결된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발견한다. 현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이며, 유연한 개념이라는 것을. 가상현실은 인간이 기술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낸 새로운 세계다. 그것은 물리적 현실의 대체물이 아니라, 현실을 확장하고 재해석하는 또 하나의 층위다.


플라톤과 데카르트의 시대에는 감각을 불신하고 그 너머의 절대적 실재를 찾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감각을 확장하는 기술을 통해 새로운 현실들을 창조한다. 우리가 가상현실 속에서 느끼는 현전감, 감정, 상호작용, 의미는 허구가 아니라 감각과 의식이 만든 실재적 경험이다. VR 헤드셋을 벗는다고 해서 그 경험이 무효화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억 속에 남고,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며, 우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새로운 질문들을 열어놓는다.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이라면:

- 우리는 어느 현실을 우선해야 하는가?

- 물리적 삶과 가상적 삶 사이의 균형은 어디에 있는가?

- 가상 세계에서의 정체성과 물리 세계에서의 정체성이 다를 때, 어느 것이 '진짜 나'인가?

- 가상 경험이 물리적 경험을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은 단순히 기술적이거나 철학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이다.


결국 우리가 도달한 결론은 이것이다: 현실은 더 이상 하나가 아니다. 인간의 의식이 경험하는 모든 세계—그것이 물리적이든, 증강되었든, 혼합되었든, 완전히 가상적이든—모두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일부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여러 개의 현실을 자유롭게 오가는 존재가 되었다. 아침에는 물리적 현실에서 깨어나고, 낮에는 증강된 현실에서 일하며, 저녁에는 가상 세계에서 놀고, 밤에는 꿈이라는 또 다른 현실을 경험한다. 이 모든 경험이 우리를 구성한다. 어느 하나만이 '진짜'이고 나머지가 '가짜'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다층적 현실을 살아가는 다층적 존재다.


가상현실은 이제 더 이상 물리적 현실의 모방이나 대체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경험의 새로운 지평이며, 우리가 존재하고 만나고 창조하는 또 하나의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우리가 어떻게 설계하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 존재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새로운 형태의 속박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기술을 통해 어떤 세계를 만들어가기를 원하느냐다. 가상현실이 진짜 현실이라면, 우리는 그 현실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이것이 우리 모두가 함께 답해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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