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과학기술과 예술이 만나 ..

[ 과학기술의 미래와 상상 ] 08

by 사이에살다

전시장 벽면에 흐르는 폭포수가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방향을 바꾸고, 바닥에 핀 디지털 꽃들이 사람의 발걸음을 피해 흩어진다. 일본 도쿄의 팀랩(teamLab) 전시관에서 펼쳐지는 이 광경은 단순한 영상 쇼가 아니다. 관람객의 몸과 감각이 작품의 일부가 되어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순간이다.


오늘날 기술과 예술은 서로의 경계를 지우고 있다. 기술이 만든 영상, 데이터, 인공지능은 예술의 새로운 재료가 되었고, 예술은 기술의 인간적 의미를 되묻는 사유의 장이 되었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미디어아트(Media Art)이다. 미디어아트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과 달리 기술적 매체를 예술의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다. 초기에는 기계적 장치나 필름을 이용한 실험이 중심이었지만, 오늘날에는 AI, VR, 로봇, 인터랙티브 시스템이 예술의 핵심 도구로 활용된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나 일본 teamLab, 한국의 백남준아트센터에 전시된 작품들은 그 대표적인 예다.


teamLab의 몰입형 작품 'B orderless'는 관람객의 움직임에 따라 벽과 바닥의 빛이 반응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한 공간에서 피어난 디지털 나비가 다른 공간으로 날아가고, 관람객이 만진 벽면에서 꽃이 피어난다. 이곳에서는 작품과 작품 사이의 경계도, 작품과 관람객 사이의 경계도 사라진다.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관객의 몸과 감각이 참여하는 새로운 예술적 공간을 창조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1. 기술과 예술: 경계를 허물다


어원으로 본 기술과 예술의 뿌리

'기술(technology)'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techne'에서 비롯되었다. techne는 단순한 기능(skill)이 아니라 무언가를 아름답게 드러내는 인간적 솜씨를 의미했다. 목수가 나무를 다듬는 것, 도공이 항아리를 빚는 것,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것 모두 techne였다. 라틴어 'ars', 영어 'art' 역시 같은 어원을 가진다.


즉, 서양 중세에서 근대 초기까지 기술과 예술은 분리되지 않은 개념이었다. 당시 화가나 조각가, 건축가는 모두 '기술자(artisan)'로 불렸고, 예술은 신의 질서를 구현하는 기술적 행위로 이해되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동시에 화가이자 발명가, 해부학자, 건축가였던 것은 당시로서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근대 이후 상황이 바뀌었다. 산업혁명과 함께 기술은 '과학적 효율성'을, 예술은 '감성적 표현'을 각각 담당하게 되면서 두 영역은 분리되었다. 기술은 공장과 실험실로, 예술은 화실과 무대로 갈라섰다. 기술자는 이성과 논리를, 예술가는 감성과 직관을 대표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디지털 기술은 다시금 두 세계를 잇고 있다. 인공지능이 그림을 그리고, 알고리즘이 음악을 작곡하며, 로봇이 춤을 추는 시대—예술은 다시 기술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기술과 예술은 새로운 방식으로 재결합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의 미디어아트 진화


1960년대는 예술사에서 기술 매체의 예술적 전환기였다. 텔레비전, 비디오, 컴퓨터가 예술의 재료로 등장하면서 '미디어아트'라는 새로운 장르가 형성되었다. 1960년대에는 기계 매체가 중심이었다. 빛을 이용한 라이트 아트, 움직이는 조각인 키네틱 아트가 등장했다. 예술가들은 전기모터, 전구, 자석 같은 산업 재료를 작품에 끌어들였다.


1970~80년대는 비디오아트의 전성기였다. 비디오카메라와 모니터가 대중화되면서 예술가들은 시간과 움직임을 작품에 담기 시작했다. 실시간 영상, 지연된 영상, 다중 화면 등 새로운 표현 기법이 개발되었다. 1990년대에는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인터랙션이 본격화되었다. 관람객이 작품을 만지거나 움직이면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아트가 등장했다. 예술은 더 이상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참여의 대상이 되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AI, VR, 로봇, 데이터 아트, 생명예술(Bio Art)로 영역이 확장되었다. 인공지능이 창작 주체가 되고, 생명공학이 예술의 재료가 되며, 가상현실이 전시 공간이 되었다. 기술은 이제 단순한 재현의 도구가 아니라 예술의 존재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조건이 되었다.


바이오아트 작품


백남준과 비디오아트의 선구


한국의 예술가 백남준(Nam June Paik, 1932-2006)은 미디어아트의 선구자로 평가된다. 그는 텔레비전이라는 매체를 통해 예술과 기술, 동양과 서양, 인간과 기계를 연결했다.


그의 대표작 'TV Buddha'(1974)에서는 좌선한 부처상이 텔레비전에 비친 자기 자신의 영상을 바라본다. 부처는 CCTV를 통해 실시간으로 자신을 관찰한다. 이는 단순한 설치 작품이 아니라 깊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고대의 명상과 현대의 기술이 만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자기 성찰이란 무엇인가? 이미지와 실재의 관계는?


백남준은 "기술은 예술의 팔레트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에게 텔레비전은 대중을 조종하는 도구가 아니라 새로운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예술 재료였다. 그의 실험은 예술이 기술을 통해 사유할 수 있는 존재론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비디오아트 창시자 백남준 선생



2. 과학과 예술(Ⅰ): 과학, 예술로부터 영향을 받다


과학과 예술은 흔히 이성과 감성, 논리와 직관, 객관과 주관으로 대비된다. 과학은 자연의 법칙을 분석하고, 예술은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다. 과학자는 실험실에서 가설을 검증하고, 예술가는 화실에서 영감을 형상화한다.


그러나 이런 이분법은 피상적이다. 근대 과학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위대한 과학자들은 뛰어난 예술적 감수성과 표현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의 시각적 사유는 '그림 그리는 눈'을 가진 과학자들에 의해 발전했다. 관찰하고, 묘사하고,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은 과학과 예술 모두에 필수적이다.




갈릴레오의 달 스케치: 예술적 관찰이 과학적 발견으로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1609년 자신이 개량한 망원경으로 달을 관찰하고, 그 모습을 세밀한 소묘로 남겼다. 그의 저서 'Sidereus Nuncius'(1610, 『별에서 온 전령』)에 실린 달의 스케치는 단순한 관찰 기록이 아니라 예술적 해석을 가미한 시각적 문서였다. 갈릴레오는 명암법(chiaroscuro)을 사용해 달 표면의 음영을 표현했다. 이는 당시 르네상스 화가들이 입체감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던 기법이었다. 그의 그림은 명암과 음영을 통해 달의 표면에 산맥과 계곡이 존재함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이러한 발견은 당시 천문학계에 충격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사람들은 천체, 특히 달은 완전무결한 구체라고 믿었다. 하지만 갈릴레오의 스케치는 달이 지구처럼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졌음을 보여주었다. 천상의 세계도 지상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 발견은 중세 우주관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즉, 예술적 관찰력과 묘사 능력이 과학적 발견의 문을 연 사례였다. 갈릴레오가 그림을 그릴 줄 몰랐다면, 그리고 명암법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는 달의 진정한 모습을 포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갈릴레오가 그린 달



뉴턴의 분광 스펙트럼과 예술의 색채이론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1666년 프리즘 실험을 통해 햇빛이 일곱 가지 색으로 분해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이를 단순한 물리 현상으로 보지 않고 더 깊은 의미를 찾으려 했다. 흥미롭게도 뉴턴은 색의 스펙트럼을 음악의 7 음계와 연결했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를 도, 레, 미, 파, 솔, 라, 시에 대응시킨 것이다. 그는 색과 소리가 모두 진동이며, 자연은 조화로운 수학적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는 고대 피타고라스 학파의 '음악적 우주론'을 계승한 생각이었다.


뉴턴의 색채 이론은 이후 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18세기 괴테(Goethe)는 『색채론(Theory of Colours)』(1810)에서 뉴턴의 물리적 색채론에 대항해 인간 지각의 심리적 색채론을 주장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 특히 조르주 쇠라(Georges Seurat)는 뉴턴의 색 분해 원리를 회화에 적용해 점묘법(Pointillism)을 개발했다. 순수한 색의 점들을 캔버스에 찍으면 관람자의 눈에서 혼합되어 빛나는 색채 효과를 낸다는 원리였다. 과학의 발견이 예술의 미학적 실험으로 이어진 것이다.


뉴턴의 프리즘 실험

뉴턴이 그린 분광 도해도



해부학과 예술의 협력: 베살리우스의 『인체구조에 대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해부학자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Andreas Vesalius, 1514-1564)는 1543년 출간한 'De humani corporis fabrica'(『인체구조에 대하여』)에서 인체를 세밀하고 입체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해부도는 당시 티치아노의 제자였던 화가 얀 스테판 반 칼카르(Jan Stephan van Calcar)에 의해 제작되었다. 이 그림들은 과학적 정확성과 예술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추구했다. 해부된 인체는 살아있는 사람처럼 포즈를 취하고, 배경에는 이탈리아의 전원 풍경이 펼쳐진다. 심지어 근육층이 드러난 시체가 사색하는 듯한 자세로 턱을 괴고 있는 그림도 있다.


중세의 해부서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극명하다. 1316년 출간된 'Anatomia Corporis Humani'의 그림들은 도식적이고 부정확했다. 반면 베살리우스의 해부도는 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 명암법, 해부학적 지식을 총동원해 인체를 있는 그대로 재현했다. 이는 예술과 과학의 협력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한 대표적 사례이다. 과학자의 관찰과 예술가의 표현력이 만나 의학 교육에 혁명을 가져왔다. 베살리우스의 책은 단순한 의학서를 넘어 예술작품으로도 평가받는다.


베살리우스 <인체구조에 대하여>에 실린 해부도 일부



3. 과학과 예술(Ⅱ): 예술, 과학으로부터 영향을 받다


아르누보 운동과 생물학의 만남


19세기말(Art Nouveau, '새로운 예술')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특징은 곡선과 유기적 형태, 자연 모티프의 적극적 사용이었다. 당시 현미경 기술의 발전으로 미생물학이 급속히 발전했다.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Ernst Haeckel)은 'Kunstformen der Natur'(『자연의 예술 형태들』, 1904)에서 해파리, 방산충, 규조류 등 미생물의 아름다운 대칭 구조를 정밀한 그림으로 남겼다. 이 미생물들의 곡선 구조와 유기적 형태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영감을 주었다.


스페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í)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보면, 직선이 거의 없다. 기둥은 나무처럼 위로 갈수록 가지를 뻗고, 천장은 숲의 잎사귀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이는 식물과 미생물의 성장 원리를 건축에 적용한 것이다. 생명체의 '자연스러운 곡선'이 예술의 미적 원리로 채택된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인상주의와 색채: 빛을 해체하다


19세기 후반, 과학의 광학 연구는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뉴턴의 분광 이론과 헤르만 폰 헬름홀츠(Hermann von Helmholtz)의 색채 인식 연구는 빛의 삼원색(빨강·초록·파랑) 개념을 확립했다. 프랑스의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뢰(Michel Eugène Chevreul)은 색의 동시대비와 보색 이론을 발전시켰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같은 대상을 시간대별로 반복해서 그리며 빛의 변화를 포착하려 했다. 그의 '루앙 대성당' 연작이나 '수련' 연작은 빛이 시시각각 어떻게 색을 바꾸는지를 기록한 과학적 실험이기도 했다.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Paul Signac)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점묘법(Pointillism)을 개발했다. 그들은 팔레트에서 물감을 섞지 않고, 순수한 색의 작은 점들을 캔버스에 나란히 찍었다. 빨강 점과 노랑 점을 가까이 찍으면, 관람자의 눈에서 주황색으로 혼합되어 보인다는 광학적 원리를 활용한 것이다. 즉, 인상주의는 과학적 지식이 낳은 감성의 회화였다. 그들은 빛이라는 물리 현상을 예술적으로 번역했다.


폴 시냐크, <아비뇽 교황청>


초현실주의와 양자역학: 불확정성의 세계


20세기 초 물리학계에 혁명이 일어났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은 뉴턴 이래의 고전 물리학을 뒤집었다. 입자는 동시에 파동이고, 관찰 행위가 대상을 변화시키며, 시간과 공간은 절대적이지 않다는 새로운 세계관이 등장했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1904-1989)는 이런 과학적 발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의 대표작 'The Persistence of Memory'(『기억의 지속』, 1931)에는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시계들이 등장한다. 딱딱하고 정확해야 할 시계가 마치 치즈처럼 늘어진다. 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제시한 '시간의 상대성'을 시각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양자역학이 제시한 불확정성과 확률의 세계,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는 현실은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에게 무의식과 꿈의 세계를 탐구할 새로운 언어를 제공했다. 과학이 밝혀낸 세계의 비합리성과 불확실성이 오히려 예술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기억의 지속>


입체파와 상대성이론: 시점의 해방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의 입체파(Cubism)는 20세기 초 미술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들은 한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동시에 바라본 모습을 한 화면에 담았다. 정면, 측면, 위에서 본모습이 한 그림 안에 공존한다.


흥미롭게도 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제시한 '시공간의 다층적 구조'와 평행한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이 분리된 절대적 실체가 아니라 관찰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임을 보여주었다. 입체파가 하나의 절대적 시점을 거부하고 복수의 시점을 동시에 제시한 것은, 상대성이론이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을 부정한 것과 철학적으로 공명한다.


물론 피카소가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직접 읽고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유럽 지성계에는 '절대성의 해체'라는 시대정신이 흐르고 있었고, 과학과 예술은 각자의 언어로 이를 표현했다.


피카소, <우는 여인>



4. 과학과 예술이 만나다: 상호 영감의 현장


예술, 과학적 사고에 도움을 주다


예술은 과학자에게 관찰력, 상상력, 통찰력을 길러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정밀한 해부 스케치나 갈릴레오의 달 그림처럼, 예술적 훈련은 자연을 세밀하게 보는 눈을 키운다. 오늘날에도 이런 전통은 이어진다. 의학 교육에서 해부 스케치는 여전히 중요한 학습 도구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학생들은 구조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단순히 보는 것과 그리는 것은 다르다. 그리려면 관찰해야 하고, 이해해야 하며, 선택해야 한다.


과학자들은 복잡한 데이터를 시각화할 때도 예술적 감각을 활용한다. NASA의 우주 시각화 연구소는 천문학 데이터를 예술적으로 해석하여 대중의 이해를 돕는다. 허블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성운 사진들은 과학적 정보이면서 동시에 경이로운 예술작품이다. 과학자들은 여러 파장의 데이터에 색을 입히고 배치할 때 미학적 판단을 내린다.


과학, 예술 활동에 영감을 주다


반대로 과학은 예술가에게 새로운 재료, 주제, 사고방식을 제공한다. 생명공학(Bio Art), 인공지능 미술, 데이터 아트는 모두 과학의 언어를 예술로 번역한 결과다. 생명예술가 에두아르도 카츠(Eduardo Kac)는 2000년 형광 단백질을 가진 토끼 'GFP Bunny'를 창조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한 살아있는 예술작품이었다.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동시에 생명공학 시대에 생명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는 중요한 예술적 질문이었다.


AI 화가 '오비어스(Obvious)'가 2018년 만든 초상화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달러(약 5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 그림은 인간이 아닌 알고리즘이 창작했다. 알고리즘 작곡가 'AIVA'는 영화음악과 교향곡을 작곡한다. 이제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제기되고 있다.


데이터 아티스트들은 빅데이터를 시각화하여 사회 현상을 예술로 표현한다. 소셜미디어의 흐름, 도시의 교통 패턴, 기후 변화 데이터를 아름다운 시각적 형태로 번역한다. 과학은 이제 예술의 상상력을 확장하는 실험실이 되었다.


상상력, 과학과 예술이 함께 하는 무대


과학과 예술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둘 다 인간의 상상력에 뿌리내린 탐구다. 과학이 '세계는 무엇인가'를 설명한다면, 예술은 '세계는 무엇일 수도 있는가'를 묻는다. 과학이 발견(discovery)이라면, 예술은 발명(invention)이다. 하지만 위대한 과학에는 발명이 있고, 위대한 예술에는 발견이 있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지식보다 중요하다. 지식은 한계가 있지만 상상력은 세계를 포용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이라는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상대성이론을 발전시켰다. 빛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를 상상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중력을 생각하는 것은 논리적 계산이기도 하지만 창조적 상상이기도 했다.


MIT 미디어랩(MIT Media Lab)의 설립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Nicholas Negroponte)는 "예술은 과학의 질문을, 과학은 예술의 방법을 필요로 한다"라고" 말했다. 이 연구소에서는 공학자, 디자이너, 예술가, 심리학자들이 한 팀을 이루어 작업한다. 그들이 개발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을 풍요롭게 하는 '인간화된 기술'이다.


두 세계의 만남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총체적 지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근대가 나눈 것을 현대가 다시 잇고 있다.




5. 마치며: 통합적 인간 정신을 향하여


과학기술과 예술은 이제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이 물질의 세계를 탐구한다면, 예술은 인간의 감각과 의미의 세계를 탐색한다. 그러나 두 세계는 서로를 통해 성장한다. 기술이 예술을 돕고, 예술이 기술을 인간화한다.


백남준이 말했듯이, "예술은 기술의 영혼이고, 기술은 예술의 몸이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기후변화, 인공지능 윤리, 팬데믹 대응 같은 과제들은 모두 과학기술적 지식과 인문예술적 통찰을 동시에 요구한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성공 비결을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서 찾았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직관적 인터페이스는 공학적 완성도만으로는 나올 수 없다. 사용자의 감성과 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미래의 창조자들은 과학자인 동시에 예술가여야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랬던 것처럼, 미래의 인재는 통합적 사고를 하는 '르네상스형 인간'이 될 것이다. 두 세계가 만날 때, 인간은 단순히 도구를 사용하는 존재를 넘어선다. 우리는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존재로 거듭난다. 과학기술이 '할 수 있는 것'의 영역을 확장한다면, 예술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의 방향을 제시한다. 둘이 만날 때 비로소 인간다운 창조가 가능하다.


teamLab의 전시장에서 디지털 꽃을 피우는 어린이를 보자. 그 아이에게 과학과 예술의 구분은 없다. 그저 경이로운 세계가 있을 뿐이다.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바로 그 통합적 경이감이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만남은 인간 정신의 본래적 통합성을 회복하는 여정이다. 감성과 이성, 직관과 논리가 하나로 어우러질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인간으로서 세계를 이해하고 창조할 수 있다.


keyword
이전 08화가상현실은 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