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계무신 빈계지신 유가지삭
文(문)2.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요? / 牝雞無晨(빈계무신). 牝雞之晨(빈계지신), 惟家之索(유가지삭).
한문 공부를 하다 보면 뜻밖의 충격을 주는 글자들을 만나는 경우가 더러, 아니, 곧잘 생깁니다. 저한테는 그 가운데 하나가 ‘새벽 신(晨)’자였습니다.
오래전에 소설가 김성동 선생이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유명한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가운데 들어 있는 〈사소절(士小節)〉을 번역하여 ‘현대적 감각에 맞게 다시 엮은’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부제:선비의 예절과 지혜)》(솔)이라는 책을 읽다가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문장을 만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바로 ‘새벽(晨)’이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그저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만 알고 있던 말이었는데, 실은 ‘새벽에’라는 단서가 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새벽에’라는 단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 문장의 의미는 천양지판(天壤之判)으로 갈립니다.
곧, ‘새벽에’라는 단서가 붙어 있지 않으면 이 문장은 그야말로 극도의 성차별 의식을 담은 몹쓸 말이지만, ‘새벽에’라는 단서가 붙어 있으면 그 성차별의 느낌이 얼마간 희석되고 반감되는, 그래서 어찌 보면 제법 과학적인 원리를 표현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말이 되니까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른 새벽에 ‘알람 시계’나 ‘모닝콜’처럼 “꼬끼오!” 하고 우렁차게 울어서 날이 밝고 있음을 사람들한테 알려주는 구실을 하는 닭은 암탉이 아니라 수탉입니다. 그러니까 새벽에 수탉이 아닌 암탉이 운다면 자연계의 상태 또는 원리에 뭔가 이상(異常)이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아직 과학적인 사고를 할 줄 몰랐던 옛사람들이야 당연히 새벽에 암탉이 울면 무슨 불길한 일, 곧 재앙이 일어날 징조로 그 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그랬을 것입니다. 당시는 일식(日蝕) 현상이 일어나도 임금이 그걸 자신의 부덕(不德)의 소치(所致)로 여기고, 나라에 재앙이 생길 불길한 징조라고 받아들여 하늘에 석고대죄(席藁待罪)를 하며 제(祭)를 올렸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않았겠습니까.
물론, 얼마든지 ‘수탉이 (새벽이 아니라) 대낮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굳이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하여 암탉을 강조한 점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성차별 의식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요.
바로 이 ‘새벽에’라는 단서에 충격을 받은 저는 당연히 한문 원문을 찾아 그 말의 본디 모양새를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 결과 이덕무의 글을 포함하여 《사기(史記)》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그리고 《소학(小學)》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결국 그 최초의 출처가 《서경(書經)》의 〈목서편(牧誓篇)〉이라는 사실을 알아냈지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는 다른 출처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서경》에 나오는 그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牝雞無晨(빈계무신). 牝雞之晨(빈계지신), 惟家之索(유가지삭).’
여기서 ‘암컷 빈(牝)’자, ‘닭 계(雞)’자, ‘없을 무(無)’자, ‘새벽 신(晨)’자, ‘오직 유(惟)’자, ‘집 가(家)’자는 그리 어렵지는 않은 글자들입니다. ‘갈 지(之)’자도 어조사(語助辭)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만 알고 있으면 해석하기에 크게 곤란한 글자는 아니지요.
문제는 ‘노 삭(索)’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글자가 ‘다하다, 없어지다, 멸망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색’으로 읽을 때는 ‘찾다’라는 뜻이지만요. 여기서는 이 ‘삭(索)’자가 ‘망할 망(亡)’자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냥 ‘망(亡)’자로 쓰면 해석하기가 수월할 텐데, 이런 식으로 굳이 다른 글자를 써서 읽는 사람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한문에서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면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시대를 멀리 거슬러 올라갈수록 그렇습니다.
끊어 읽기는 ‘빈계/무신. 빈계지/신, 유/가지/삭’ 정도로 하면 되겠고,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문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이런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암컷 닭은 새벽이 없다. 암컷 닭의 새벽은 오직 집의 멸망일 뿐이다.’
의미는 어렴풋이 잡히지만, 우리 말 문장으로는 도무지 요령부득(要領不得)이지요. 이는 이 문장에 생략된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문에서는 오래된 문장일수록 이렇듯 생략된 부분이 많다는 점을 알아두면 해석이나 번역에 도움이 됩니다.
이는, 종이가 없던 시절, 물리적으로 많은 글자를 쓸 수 없어서 최소한의 글자로 의미를 담아내어야만 했던 ‘죽간(竹簡)’에 글을 쓴 탓이 크다고 추정됩니다. 그래서 한문은 역사가 오래된 문장일수록 그 의미를 해석해 내기가 쉽지 않다는 난점(難點)이 있습니다. 이는 한문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속절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입니다.
‘새벽 신(晨)’자도 번역하기에 쉽지 않은 글자입니다. 어쩌면 ‘삭(索)’자 보다 더 어렵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왜냐하면, ‘晨(신)’자를 ‘울 명(鳴)’자와 ‘어조사(전치사) 어(於)’자로 이루어진 ‘鳴於晨(명어신)’에서 ‘鳴於(명어)’가 생략된 것으로 보고, 이 글자를 ‘새벽에 울다’나 ‘새벽을 알리다’라는 식으로 동사화(動詞化)시켜서 풀어 번역하지 않으면, 우리말 문장으로 어색하지 않게 번역하기가 매우 곤란한 탓입니다.
‘암컷 닭’은 우리가 흔히 쓰는 모양새로 ‘암탉’으로 줄여 번역하는 게 좋겠지요.
이때 ‘없을 무(無)’자도 문제가 됩니다. 이 글자를 ‘없다’라고 하려면 ‘새벽 신(晨)’자를 ‘새벽에 우는 일(법)’ 정도로 명사화(名詞化)시켜서 번역해야 서로 호응이 잘 되는 문장이 됩니다. 그럼 ‘牝雞無晨(빈계무신)’은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지요.
‘암탉은 새벽에 우는 일(법)이 없다.’
한데, 여기서 ‘무(無)’자는 ‘말 물(勿)’자와 통용되기도 하니까 ‘신(晨)’자를 그냥 동사로 ‘새벽에 울다’라고 하고 싶다면 ‘무(無)’자를 ‘않다, 말다’ 정도로 번역해서 서로 잘 호응되는 문장으로 만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저는 이 문장이 앞의 번역문보다 한결 깔끔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이 문장을 좀 더 강한 어감으로 번역하고 싶다면 ‘않는다’를 ‘말아야 한다’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아야 한다’라고 할 수 있겠지요.
다음은 ‘牝雞之晨(빈계지신), 惟家之索(유가지삭)’입니다. 여기서는 앞뒤 두 ‘갈 지(之)’자의 번역에 주의해야 합니다.
우선, 이 둘을 모두 소유격 조사로 보고 ‘~의’라고 하면 다음과 같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신(晨)’자는 ‘새벽 울음’ 정도로 명사화시키는 것이 적절하겠습니다. 이때 ‘집 가(家)’자도 그냥 ‘집’이라고 하기보다는 ‘집안’이라고 하는 편이 좀 더 의미가 명료하게 살아나는 느낌이지요. 그럼 이렇습니다.
‘암탉의 새벽 울음은 오직 집안의 멸망일 뿐이다.’
의미는 통하지만, 역시 우리말 문장으로는 어딘가 어색하지요? 그래서 ‘지(之)’자를 주격조사로 간주하고 번역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오직 집안이 망할 뿐이다.’
집안이 망하는 사태가 암탉이 새벽에 운 것으로 말미암은 결과니까, 그 인과관계를 고려하여 이 문장을 조건문으로 보아서 ‘울다’의 토씨를 ‘~면’이라고 처리한 것입니다.
한데, 여기서 ‘유(惟)’자는 어조사로도 쓰이는 글자이므로 굳이 해석하지 않기로 한다면 최종적으로 번역문은 이렇게 됩니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물론 이때 ‘신(晨)’자를 ‘새벽을 알리다’라고 하고 싶다면 ‘암탉이 새벽을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알리다’보다는 ‘울다’ 쪽이 조금 더 마음에 듭니다.
여기서도 어감을 살짝 더 강하게 하고 싶다면 ‘惟家之索(유가지삭)’에서 ‘家之索(가지삭)’을 ‘索(삭)’자와 ‘家(가)’자가 서로 도치되었다고 보고 ‘索家(삭가)’, 곧 ‘家(가)를 索(삭)하다’라고 해서 ‘집안을 망가뜨리다’라는 능동형 표현으로 번역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 이때의 ‘之(지)’자는 그 유명한 ‘도치의 之(지)’가 되는 것입니다. 글자를 이처럼 도치시킬 때 그 도치된 글자들 사이에 ‘之(지)’자를 집어넣는 것이 한문 특유의 문법 가운데 하나니까, 기억하고 있으면 한문 문장의 해석과 번역에 적잖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제 앞 문장과 이 문장을 서로 연결하면 전체 문장은 이렇게 됩니다.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는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
어감을 강하게 번역하면 ‘암탉은 새벽에 울지 말아야 한다.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을 망가뜨린다’라는 정도로 할 수 있겠지요. 조금 더 나아가면 ‘울지 말아야 한다’를 ‘울면 안 된다’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새벽 신(晨)’자, 곧 ‘새벽에’라는 단서를 쏙 뺌으로써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말이 지금까지도 얼마나 여성의 심신(心身)을 총체적으로 억압하는 몹쓸 구실을 해왔는가를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입니다. 조선시대의 그 수많은 학자, 선비들이 이 말에 애초 ‘새벽 신(晨)’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턱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이 말에 ‘신(晨)’자가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애써 드러내어 지적하고 강조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소리를 저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 모두가, 이 말이 애초의 본뜻과는 무관하게 여성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동하는 데 한마음 한뜻으로 공모(共謀)했다고 지적하고 규정하더라도 결코 지나친 처사는 아닐 것입니다. 진의(眞意)를 외면하고 은폐한 그들의 책임이 실로 무겁다는 것이 저의 평가입니다.
그러니, 이런 말은 절대 써서는 안 되겠지만, 기어이 써야 하겠다면 앞으로는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하지 말고, 반드시 ‘새벽에’라는 단서를 넣어서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해야 그나마 성차별의 의미가 다소 덜한 그 본디 뜻을 조금이라도 살리는 길이 되지 않을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