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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수 Nov 25. 2024

P27. 결국 우리는 아는 겁니다

  - 황인숙,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P27. 결국 우리는 아는 겁니다 – 황인숙,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문학과지성사, 문학과지성 시인선 492)

 

   무엇보다도

   흐르는 세월,

   또는

   나이 들어감,

   또는

   늙어감에 대한

   시인의 코멘트가

   아픕니다.

   시인은

   먼저

   지난날부터

   돌이켜봅니다.

   ‘그때 나 아직 젊었을 적에 젊은 줄 모르고 젊었지’라고요.

   맞아요.

   젊었을 적엔

   어째선지

   이상하게도

   그 젊음을

   잘 몰라요.

   그 이유를 시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때는 아무도 내게 젊다고 말해주지 않았으면서’라고요.

   돌이켜보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내가 젊었던 시절

   누군가가 나한테

   너 젊다, 라고

   말해준 기억이

   정말

   없습니다.

   어째서였을까요?

   이제 시인은

   비로소

   자신의 젊지 않음을,

   자신의 늙음을

   아니,

   자신이 늙었음을

   고백합니다.

   ‘지금은 늙었다고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이 없네’라고요.

   세상에!

   정말 그렇잖아요?

   나 스스로도

   그러고,

   남들도

   그러잖아요?

   나 늙었구나!

   너 늙었네!

   우리 다 늙었어!

   이런 말,

   뻑하면,

   걸핏하면

   하고, 또

   듣잖아요?

   왜 그러는 거지요?

   모르긴 몰라도

   사실은 사실이잖아요?

   부정할 수도,

   외면할 수도

   없는

   사실이요.

   참, 아프네요.

   아마도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말을

   돌리는 걸까요?

   ‘이제 조용한 바다가 좋아요’라고요.

   그리고

   솔직하고 꾸밈없이

   고백합니다.

   ‘삶이란 원래 슬픔과 고뇌로 가득 찬 거야’라고요.

   그러면서 그렇게

   늙고 지친 우리를

   시인은

   이렇듯 따뜻하게

   초대합니다.

   ‘오세요, 지친 이여 눈매 서늘한 바다가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요.

   심지어

   이렇게까지

   우리를

   마음 편하게

   만들어주면서요.

   ‘뉘신지 당신이 궁금치 않네’라고요.

   정말,

   이제는 누가 나를

   궁금해하는 것도

   짐스럽지 않나요?

   그런 나이입니다.

   그걸 시인은

   참 잘

   알고 있네요.

   하지만 시인은

   ‘알 수 없는 것투성이고 매사 서툴렀던 흘러가버린 시절’을

   여전히

   떠올리면서도

   ‘풀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답이 두렵기에’라고

   성숙한 고백을

   합니다.

   젊었을 적에는

   미숙했기에

   이 문제, 저 문제를

   풀어보려고

   나름 치열하게

   싸웠지만,

   결국 우리는

   아는 겁니다.

   풀고 싶지 않다는 것을요.

   아니, 굳이 풀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요.

   어차피

   풀 수도 없다는 것을요.

   이제는

   아는 겁니다.

   왜냐하면,

   시인의 말대로,

   답이 두렵거든요.

   답이 두렵다는 걸 알

   만큼

   우리는 이제야

   충분히

   늙었거든요.

   마침내 시인은

   패배를 시인합니다.

   ‘연이은 패배를 버텨내기에 우린 이제 나이가 많아’라고요.

   그래요.

   시인은 아는 겁니다.

   ‘영원히는 뛰지 못할 내 가슴’을요.

   그런데도

   시인은

   기어이

   이 한마디를

   우리를 위해

   남겨둡니다.

   ‘너희 핏줄 속 명랑함을 잃지 말렴!’이라고요.

   느낌표까지 찍어가면서요.

   아무리 세월을 잃어

   늙어가면서도

   ‘명랑함’까지 잃으면

   안 되잖아요?

   심지어 시인은

   ‘앞으로는 시를 끝내주게 쓰는 날이 남은 거지!’라고

   스스로를,

   우리를

   격려하기까지

   합니다.

   예,

   시인이 그런다면

   우리도

   기운을 내야 하지

   않을까요?

   엄연히

   마지막 날까지는

   아직

   날들이

   남아 있는 거니까요.

   왜요?

   왜긴요?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잖아요?

   아직도,

   여전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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