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5

- 5. 아버지의 왜소한 등판

by 김정수

5. 아버지의 왜소한 등판

가장 불편한 것은 어쨌거나 복강에 구멍을 뚫고 거기에 가느다란 호스를 찔러 넣어 신장에 고이는 체액을 몸 밖으로 빼내어 받아놓는 물주머니 하나를 허리춤에 차고 있어야 하는 일이다. 지나치게 물리적인 조치라는 생각이 든다. 몸속에 있어야 할 장기가 밖으로 나와 있는 꼴이다. 모양새가 흉하다. 미학적인 고려를 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냉혹하리만큼 기능적이다. 의사들은 예술가가 아니다. 그저 의학적으로 필요한 조치일 뿐이다. 휴머니즘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않은데도 내 몸에 다른 몸 하나가 따로 붙어 있는 샴쌍둥이와 같은 꼴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옛날에는 그런 존재들만 모아서 서커스의 눈요기 감으로 쓰기도 했다던데. 어디에서, 어느 매체를 통해서 보았는지 잘 모르겠다. 사진이 기억난다. 한마디로, 인간이라기보다는 괴물이다. 다리가 넷이거나, 팔이 여섯이거나, 머리가 둘이거나, 나뭇가지처럼 등으로 팔이 쑥 비어져 나와 있거나, 눈이 셋이거나……. 진짜라고 믿기 힘들 만큼 끔찍하다. 머리가 코끼리만큼 커다란 인간은 숫제 이름이 엘리펀트맨이다. 같은 제목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생김새가 그러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다. 사랑도 언감생심이다. 평생 숨어 살아야 한다. 신산스러운 삶이다. 그들은 끊임없이 수치심에 시달렸고, 자기들의 딱한 운명을 비관했다. 사람들은 호기심에서 그들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 연민이나 동정 따위는 없었다. 그런 괴물들도 자기네와 똑같은 인간이라는 생각을 그들은 할 줄 몰랐다. 괴물은 괴물일 뿐이었다. 사회 어디에도 발을 붙이지 못하니, 서커스는 그들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생계 수단이었다. 사람들은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고 싶어 하지는 않으면서도 그들을 요상한 구경거리로 바라보는 일은 좋아했다. 이제는 내가 그런 꼴이 된 것이다. 병원에 있을 때부터도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것 같아 늘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실은 몹시 언짢았다. 그때는 그걸 충분히 느낄 여유가 없었을 뿐이다. 지금 뒤늦게 느낀다. 이런 것이로구나. 환자로, 괴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쁜 생각이라는 걸 알지만, 피할 수 없다.

처음에는 통증이 심했다. 그럴 수밖에. 날카로운 쇠꼬챙이가 내 뱃가죽을 깊숙이 찌르고 든 것이었으니까. 원리가 그렇다.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영화에서 칼로 몸을 찔린 형사들이 피범벅의 몰골로 범인들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이 다 가짜라는 생각이 든다. 통증은 가차 없다. 사정 따위 봐주지 않는다. 진통제를 먹어야 하고, 항생제도 삼켜야 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주사까지 맞았다. 주사액은 효과가 금세 나타난다. 온몸이 노곤해지면서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잠이 온다. 잠을 잔다. 그러면 통증에서 해방된다. 완전하지 않은,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해방이지만, 그 정도만으로도 살 것 같다. 하지만 주사는 통증을 견디기 힘들다고 호소해야 비로소 놔준다. 마지못해 무슨 선심이라도 쓰듯이. 물론 의료비에 다 포함된다. 공짜가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무슨 턱없는 은혜라도 입은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환자란 그런 존재다. 다시금 깨닫는다. 뼈저리다.

환자로서 좀 더 경험이 쌓이면 지금과는 다른 반응을 하게 될까. 의사에 명의가 있다면 환자에도 명환자로서 나름의 고수가 있을 것이다. 그건 또 어떤 경지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한편으로는 그런 경지까지는 오르지 않는 편이 좋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것은 회복이 그만큼 더디게 이루어진다는 뜻이기도 할 테니까. 내 담당의는 어느 정도의 고수일까. 잘 모르겠다. 나는 환자로서는 초보다. 그런 걸 판별할 만한 안목은 아직 없다. 앞으로도 그런 안목은 생기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의사는 고수일 필요가 있지만, 환자는 굳이 고수일 필요가 없다. 세상이 원하는 것은 명의지 명환자가 아니니까. 환자가 고수이건 아니건, 의사는 스스로 판단하기에 적절하다 싶은 처방을 내릴 뿐이다. 그게 의사의 일이다.

모기의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귀에 거슬리는 가느다란 금속성이다.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린다. 온몸의 감각이 느닷없는 총소리에 일제히 날아오르는 숲속의 새떼처럼 화들짝 되살아나려 한다. 눈으로 모기를 찾는다. 밤이다. 어둡다. 보일 턱이 없다. 다행히 아직은 저녁 약의 나른한 기운이 남아 있다. 이대로 더 자면 된다. 그러면 깊이 잠들 수 있다. 때를 놓치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할지도 모른다. 그건 싫다. 견디기 힘들 만큼 지루한 시간이 될 것이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하게 될 테니까. 좋지 않다, 몸에도 마음에도.

다시 모기가 소리가 다가온다. 그럴 때 모기는 언제나 나한테서, 정확히는 내 귀에서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다. 멀리 있는 모기는 소리를 내지 않는다. 내가 물리는 것은 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모기가 나한테서 어지간히 떨어져 있을 때다. 가까이 다가온 모기한테는 물릴 일이 없다. 소리를 듣고 쫓아낼 수 있으니까. 모기가 내 귀에 가까이 다가와 있는 동안은 안전한 셈이다. 모기는 그렇게 소릴 감춘 채 물고 또 문다.

손을 들어 모기 쫓는 시늉을 한다. 내가 뜻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동작들 가운데 하나다. 얇은 이불로 배만 덮고 있으니, 모기한테 물린다면 그건 밖으로 드러난 종아리나 발일 것이다. 혹시나 싶어 발을, 다리를 움직여본다. 기다렸다는 듯 시술받은 뱃가죽 부위에 무지근한 통증이 인다. 어김없다. 다행히 이제는 제법 견딜 만하다. 처음보다는 많이 무뎌졌다. 그래도 통증은 통증이다. 아프다. 체념한다. 차라리 모기가 어서 내 몸을 한 번 물고 어딘가로 사라져 주기를 바란다. 눈을 감는다.

러닝셔츠 차림이라 드러나 있는 한쪽 어깨가 서늘하다. 손가락 하나 굵기만큼 열린 창틈으로 밤공기가 스며들어오는 모양이다. 닫을까 말까 망설인다. 그러려면 윗몸을 조금 일으켜야 한다. 나 혼자 힘으로 그러기에는 아직 버겁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망설인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듯이. 헛웃음이 나오려 한다. 다시 눈을 뜬다. 고개를 돌린다. 열린 방문 밖으로 마룻바닥에 누워 잠들어 있는 어머니의 실루엣이 보인다. 혹시라도 상태가 나빠져서 내가 끙끙 앓기라도 하면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얼른 일어나 나를 돌보려고 방이 아니라 마루에서 자는 것이다. 그러지 마시라고 했지만, 그런 내 말을 들을 어머니가 아니다.

몇 시인지 알 수 없다. 깊은 밤이다. 몇 시인지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지금 나한테는 시간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시간은 흐르지 않고 깊은 물웅덩이처럼 고여 있다. 출근할 일도 없고, 누구를 만날 약속도 없다. 내 몫이었던 회사의 업무가 신기하리만큼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다. 인간관계에 대한 미련도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바깥 사회와 연결되어 있던 끈을 다 잘라낸 셈이다. 고립이다. 한데 이게 편하다. 내가 학교 때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도 어쩌면 이런 까닭에서였을까. 공부할 필요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공부는 방학 때도 계속했다. 하고 싶어서 한 것이다. 감각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는 따위 현실적인 계산속은 없었다. 그저 했다. 밥을 날마다 먹는 것처럼. 하지 않으면 끼니를 거른 양 허전했으니까.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대비한 공부도, 선생님이 내준 숙제도 아니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순전히 나 혼자만의 뜻이었다.

좋았다, 그것이. 사회와 연결된 줄이 끊어진 상태에 대한 기호. 그거야말로 내 타고난 본성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껏 내 본성대로, 내 본성에 맞는 삶을 살아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 번도 이렇게 지내본 적이 없다. 언제나 어디엔가 소속되어 있었고, 그 소속감이 필요한 줄로만 알고 살았다. 그 소속이 가져다주는 안정감과 그 소속의 대가로 손에 넣은 요긴한 생활의 방편을 한순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여겼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고, 또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믿었다. 한데, 먹고 배설하는 일조차 뜻대로 못 하면서 그저 누워만 있는 지금, 나는 처음으로 그지없이 편하다. 깊은 체념상태의 이상하리만큼 나른한 쾌감.

모든 것은 어머니가 대신 해준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을 어머니를 통해서 한다. 내가 온전히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그야말로 숨쉬기뿐이다. 어머니가 많이 지쳤으리라고 생각한다. 예전 같을 리가 없다. 나도 예전의 내가 아니지만, 어머니도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다. 아버지만 늙은 것이 아니다. 어머니도 늙었다. 세월은 어김없고 가차 없다. 이 점에서만큼은 세월은 공평하다. 공평하게 냉정하다. 고생을 많이 했다고 봐주지 않는다. 세월은 누구한테나 똑같은 속도로 흐를 뿐이다. 그게 고전 물리학의 법칙이다. 늦추어주지도, 반대로 빨리 흘러가 주지도 않는다. 불행한 사람한테도, 행복한 사람한테도 세월의 태도는 똑같다. 세월은 보상 따위 해줄 줄 모른다. 그저 잠자코 무심히 흐를 뿐이다. 사람이 자기 처지에 맞추어 혼자 제멋대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느낄 뿐이다.

어머니는 잠 못 드는 밤이 많았다. 아버지의 광태가 시작되는 시간이 흔히 밤이었으니까. 태양이 떠 있는 동안에는 관 속에 누워 얌전히 잠들어 있다가 어두운 밤이 되면 비로소 깨어 일어나 활동을 시작하는 뱀파이어 한가지였다. 그렇게 기다렸다는 듯 한밤중에 날뛰는 아버지를 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직 기운이 모자랐고, 어머니는 겁에 질려 있었다. 잠든 동생들을 깨울 수도 없었다. 인생에 실패한 남자가, 인생에 실패했다고 스스로 믿고 있는 남자가, 다시 시작할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고, 회복할 수도 없다고 믿는 남자가 자기 처자식을 상대로 벌이는 어쭙잖은 행악이었다.

딱 한 번 그러는 아버지한테 대든 적이 있다. 겨울밤이었다. 안방에서 물건 집어던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함치는 소리가 간간이 섞였다. 아니, 그 소리에 물건 집어던지는 소리가 끼어든 것이다. 제일 먼저 어머니가 생각났다. 겁에 질려 떨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은 떠올리기만도 고통스러웠다. 이불을 걷고 일어나 앉았다. 선득했다. 나는 주섬주섬 옷부터 껴입었다. 뭔가 나를 감싸주는 느낌이 필요했다. 억지로 용기를 낼 필요는 없었다. 기분이 나빴고, 슬펐다. 그 감정이 나를 떠다밀었다.

안방은 아수라장이었다. 어머니는 창백한 얼굴로 무슨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방 이쪽 구석에 오도카니 도사리고 선 채 얼어붙어 있었고, 아버지는 저쪽 바닥에 주저앉아 뭔가를 한창 깨부수고 있었다. 아버지 입에서는 연신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특정한 누구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가학이면서 동시에 자학이었다, 언제나처럼. 낯익은 풍경. 나는 안방 문을 되도록 활짝 열어놓고 세 걸음쯤 떨어진 곳에 서서 아버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시간을 끌었다. 말할 기회를 엿본 것이 아니다. 기묘한 마비 상태에 빠져서 나는 아버지를 말 그대로 구경했다. 열린 방문을 통해 밀려 들어오는 마루의 차끈한 공기가 내 두 발을 적셨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양말을 신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방금 마룻바닥을 밟으면서는 느끼지 못했던 차가움이라 나는 속으로 조금 소스라쳤다.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웅크린 한 남자의 왜소한 등판을 내려다보았다. 내 아버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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