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6

- 6. 도란도란

by 김정수

6. 도란도란

골목 밖을 걸어가는 여자 구두 굽 소리가 들린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밤중이라 소리가 제법 크다. 또각또각. 규칙적이다. 차분하다. 술에 취한 걸음걸이는 아니다. 그게 이상하게 가슴을 찌른다. 어딜 갔다 이제야 돌아오는 걸까. 집에 가는 길일 텐데. 이 골목에 사는 여자일까. 야근을 한 것일까. 소리는 가볍고도 날카롭다. 그 금속성의 규칙적인 소리가 혼곤히 잦아들던 온몸의 감각을 기어이 되살려놓으려 한다. 나는 소리 나는 쪽으로 귀를 열고 그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차츰 멀어진다. 마침내 들리지 않을 때까지 온 신경을 귀에 모은다.

저녁 무렵 아내가 왔다 갔다. 이걸 문병이라고 말해도 될까. 아내가 남편을 문병 온다는 말이 성립될 수 있는 걸까. 실은 내 곁에 있으면서 간병을 해야 할 사람이 아내고, 나는 아내 곁에 있으면서 간병을 받아야 할 남편이다. 그게 제대로 된 모양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내와 떨어져 있다. 간병은 아내의 시어머니 몫이 되어 있다. 새삼 마음이 불편하다. 어머니의 손길이 싫은 것이 아니다. 아내의 손길이 못내 그리운 것도 아니다. 아귀가 어긋나게 맞물려 있는 이 관계가 어색하고 껄끄럽다. 내 자리가 아니다.

반가웠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아내가 왔는데도 일어나 앉지 못했다. 일어나 앉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실은 한 번 일어나 앉았다. 아내가 도착할 즈음 미리 일어나 앉아 있다가 조금이라도 보기 좋은 낯빛으로 아내를 맞고 싶었다. 통증을 참았다. 일어나는 순간 뱃가죽이 당기면서 치미는 통증을 잠깐만 참으면 이내 몸은 앉은 자세에 적응한다. 그러면 통증은 차츰 사라지고 힘겨우나마 앉아 있을 수는 있다. 문제는 현기증이었다.

피를 많이 흘린 것은 사실이다. 뱃가죽에 꼽힌 고무관을 통해서 끊임없이 소변이 흘러나온다. 신장에 고이는 체액이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이니 소변이라고 해야 맞을 텐데, 색깔은 여전히 발그스름하다. 피가 섞여 있는 탓이다. 병원에서는 콜라 색이라 말하는 걸 들었다. 몇 퍼센트의 혈액인지는 모르겠다. 백 퍼센트는 아니라는 사실로 위안을 삼는다. 신장이 피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미처 걸러내기도 전의 단계에 속하는 피라고 해야 할까. 몸속에 머물러야 할 헤모글로빈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니 일어나 앉으려 할 때마다 현기증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흔히들 빈혈이라고 부르는 현상이다. 이렇게 심각한 것인 줄 몰랐다.

좋지 않은 몸 상태로 롤러코스터를 탔을 때처럼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린다. 통증보다 더 참기 힘들다. 통증은 잠시만 견디면 된다. 하지만 현기증은 길다. 통증과 현기증 둘 가운데 한쪽을 고르라면 매우 불편한 마음으로 나는 통증을 선택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다시 눕고 말았다. 호흡이 거칠다.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다. 눈을 감고 한참을 쉰다. 통증은 금세 사라지지만 현기증은 오래도록 머물면서 나를 괴롭힌다. 곧잘 벌컥 화를 내지만 뒤끝은 없는 사람과 은근히 끈질기게 두고두고 상대를 괴롭히는 성질 고약한 사람의 차이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차멀미를 많이 했다. 그때는 단순히 몸이 약해서라고 생각했다. 어리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실제로 나이가 들면서 차멀미는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니 다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차멀미는 어쩌면 현기증의 일종이다. 적어도 증세만으로는 그렇다는 느낌이다. 차멀미만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월요일 아침마다 있었던 애국 조회 시간에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부동자세로 서서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을 듣는 동안 나는 언제나 조금씩 현기증을 느끼곤 했다. 그러다 한 번은 정말로 쓰러진 적도 있다. 그 순간 나는 진짜로 짙은 황색의 하늘을 보았다. 말로만 듣던, 눈앞이 노래진다는 현상을 몸소 겪은 것이다. 다행히 정신은 금세 돌아왔다. 양호실에 실려가 누워 있거나 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물에 빠진 생쥐처럼 후줄근한 기분이었다. 몸이 무거웠다.

하니, 따지고 보면 나는 처음부터 문제가 있는 몸으로 태어난 셈이다. 그때는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을 생각 따위 아무도 하지 않았고, 그럴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생활 형편도 못되던 시절이었다. 그런 쪽으로는 눈길 돌릴 틈도 없었다고 해야 맞다. 이해한다. 그 일로 부모님을 원망하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세월이었으니까. 원망을 한들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지 않은가. 그때 어떤 조치를 취했더라면 뭐라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부질없다. 지나간 일이다. 돌이킬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이상하게 아무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이 장창이라면, 끝이 많이 무디어져서 아무것도 시원스레 찌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나 할까.

참 야릇했다, 병상에 누워 아내라는 여자를 맞이하는 기분은. 감기 몸살로 누워 앓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하고는 사뭇 달랐다. 언제나 그랬듯이 아내의 얼굴에서는 지금 아내가 어떤 기분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남편이 누워 있는 모습을 보는 아내의 마음은 으레 이런 것이려니 하는 차원에서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 언제나처럼 구체적으로 헤아리기는 어려웠다. 아내는 그런 여자다. 자기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데 익숙한 여자가 아니다. 가면 같은 얼굴이라는 뜻이 아니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는 있으니까.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연애 초기와 같은 터무니없는 오해는 하지 않는다.

아내는 호불호를 얼굴 표정으로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는 여자다. 어쩌면 그럴 줄을 모른다고 해야 할까. 아내 쪽을 편들어 말한다면, 그러고 싶은데도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라고 해야 공정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에는 오해를 많이 했다. 나를 좋아하는지 좋아하지 않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계속 만나야 할지, 아니면 다른 여자를 찾아봐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표정이 아닌 다른 것으로 아내의 마음을 읽을 줄 알게 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그 적지 않은 시간을 견뎌낸 것을 보면 나는 아내를 처음부터 많이 좋아하긴 했던 모양이다. 나는 아내를 좋아하는데 아내도 그만큼 나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어서 괴로웠던 셈이라고나 할까.

그만둘까, 여러 번 망설였다.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만일 그랬다면 지금 아내는 내 곁에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혼자거나, 아니면 다른 여자가 있거나. 천만다행이다. 아내는 여자로서, 아내로서 믿을 만한 사람이다. 이게 내 결론이다. 충신과 간신으로 빗대자면 아내는 단연 충신 쪽이다. 간신은 매력은 있지만 진정한 도움은 되지 않는다. 충신은 군주에게 사랑받기는 힘들지만 필요한 존재다. 이걸 헤아리면 성군이 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아내는 충신이다. 결국은 충신의 사랑이 진짜다. 이걸 아는 데 꽤 많은 세월이 걸렸다.

그렇다고 아내한테 여자로서의 매력이 없다는 뜻은 천만에, 아니다. 나는 아내의 몸을 좋아했다. 연애 시기의 막바지에는 아내의 몸에 탐닉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아내를 여자로서 좋아했다. 아내라는 여자를 좋아했다. 나한테 아내는 여자였다. 하지만 아내는 내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했다. 무턱대고 밀어내지도 않았고, 막무가내로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거기에 박자를 맞춰주는 데 나는 힘겨우면서도 수긍했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아내를 존중하는 태도라고 믿었다. 그래야 떳떳하리라고 여겼다. 그 생각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혼은 그에 대한 보상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받아들였다. 이상하게도 아내는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여자였다. 그런 자세를 버리지 않게 만드는 여자였다. 사랑을 넘어서서 아내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은 그때부터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지만, 무엇보다도 아내를 믿는다. 사랑은 쉽게 얻을 수 있지만, 믿음은 간단하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간신은 널렸지만, 충신은 드물다. 간신은 요란하지만, 충신은 호들갑 떨지 않는다. 아내는 병석에 누운 남편 앞에서 못내 눈물짓거나 유난스레 걱정하는 눈치를 보이지 않았다. 속은 어떻든 겉으로는 담담했고 침착했다. 오래도록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어머니한테 소식을 전한 아내였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생각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생각해 왔다는 뜻이다. 거기까지 헤아렸다는 뜻이다. 그래서 결단을 내리고, 용기를 냈다는 뜻이다. 이번 일에서 나는 아내한테 신세를 진 셈이다. 은혜를 입은 것이다. 현명한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달리 현실적인 대안은 없는 형편이기도 하였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어쩔 수 없는 형편이었다고 해도 거기까지 나아간 것은 아내가 아니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럴 뜻도 없었고, 그럴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거기는 내 상상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다. 아내는 며느리로서 시어머니한테 뭐라고 말했을까. 오래도록 왕래가 없었던 아들이 덜컥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알 수 없다. 나 몰래 벌어진 일이다. 두 여인은 각기 자기 남편과 자기 아들을 두고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합의에 도달했을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의견은 아니었을까. 부탁이든 강요든. 그 점에 대해서는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 굳이 알고 싶지는 않다. 알 필요도 없다. 나는 어쨌든 그 합의를 받아들인 셈이니까. 그것으로 된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가 주고받는 말이 자연스럽다. 말의 내용보다는 말투가 그렇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 같지가 않다. 신통하리만큼 어색한 구석이 별로 없다. 나만의 느낌일까. 잘 모르겠다. 자리에 누운 채 나는 아내와 어머니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는다. 퇴근하는 길이로구나. 예. 애들은 잘 있고? 예. 어머니는 묻고 아내는 대답한다. 간단하다. 길지 않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아내의 목소리는 다소곳하다. 머리맡에서 주고받는 대화다. 도란도란. 바로 그 느낌이다. 새삼스럽다. 오랜만이다. 머리맡에서 오가는 대화는 언제나 도란도란, 바로 그 느낌이었다. 나지막하고 부드럽다. 험한 말 따위 없다. 누워서 자고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다. 편안하다.

어릴 때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서 오가는 어른들의 대화를 듣는 일이 곧잘 있었다. 잠결에 들려오는 그 나긋나긋한 대화는 내게 자장가였다. 부드러운 중저음. 그때만은 아버지도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내용은 기억나는 것이 없다. 고막을 살며시 어루만지는 그 낮은 음의 진동을 내 귀가 잊지 않고 있다. 지금 돌이켜보니 그건 따로 대화를 나눌 만한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단칸 셋방에서 아이들을 재워놓고 주고받는 어른들의 대화란 누워 있는 아이들 머리맡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도 발치에서 그러는 일은 드물었다. 그리고 이따금 내 머리를 어루만지는 어머니의 따스하고 다정한 손길. 내 이마가 그걸 고스란히 기억한다. 신기하다. 내가 아플 때 어머니는 늘 내 머리맡에 앉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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