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기다림_8

- 8. 아버지의 발소리

by 김정수

8. 아버지의 발소리

덜그럭거리는 소리. 온몸의 감각이 되살아난다. 잠이 빠르게 달아난다. 소리가 먼저인지, 잠에서 깬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 부엌 쪽이다. 그릇끼리 부딪히는 소리, 밥상에 그릇을 탁 내려놓는 소리가 그것만 해도 제법 큰 냉장고 소음을 뚫고 여기까지 거침없이 날아온다. 눈꺼풀이 무겁다. 눈을 뜨지 않은 채로 소리만 듣는다. 그릇을 저런 식으로 거칠게 다루는 손길은 아버지의 것이다. 변하지 않았다.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어머니는 결코 저렇듯 함부로 물건을 다루지 않는다. 귀에 거슬린다. 커피라도 한 잔 타서 마시려는 걸까. 어머니의 기척은 없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일어났다면 아버지가 혼자 저러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 꽤나 이른 아침이 분명하다. 어쩌면 새벽녘? 눈을 떠서 확인하면 될 테지만 귀찮다. 아주 어둡지는 않다. 눈꺼풀에 와 닿는 빛이 벌써 희읍스름하다. 아버지가 일어날 만한 시각이 아니다. 역시 늙은 것일까. 그래서 잠이 줄어든 것일까.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는 모습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있기는 있지만 또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학교에 가려고 책가방을 들고 집을 나설 때 아버지는 대개 자리에 누워 있었다. 밤새워 원고를 손질하다가 새벽녘에야 잠이 든 것이다.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할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는 한 직장을 진득하니 오래 다닌 적이 없다. 비위에 거슬리는 일을 참지 못했다. 무슨 일로든 수틀리면 그 자리에서 당장 사표를 휘갈겨 써서 상사의 면전에 냅다 집어 던지고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있는 가운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짜고짜 사무실 문을 발로 걷어차고 나왔다. 그 이야기를 무슨 대단한 무용담처럼 어머니 앞에서 열에 뜬 기색으로 떠벌리는 모습을 내가 본 것만도 여러 차례다.

그렇다고 수입이 끊긴 마당에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 결국 아버지는 여기저기 출판사의 알음알이들을 통해 일거리를 받아왔고, 그날부터 집은 아버지의 일터가 되었다. 그마저도 다행스러워하고, 고마워하는 마음으로였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는 직장을 다닐 때보다 더욱 불만에 찬 얼굴이었다. 양미간에는 깊이 세로 주름이 새겨졌고, 두 눈에는 광기 어린 핏줄이 서 있었다. 담배 연기가 안방을 자욱하니 채웠다. 싫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덕분에 나는 밤새 쿵쾅거리며 집 안을 돌아다니는 아버지의 발걸음 소리에 곧잘 단잠을 깨곤 했다. 그 발걸음만으로도 지금 아버지가 얼마나 흥분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거칠게 문 여닫는 소리, 헛기침 소리, 때로는 누구한테라 할 것 없는 고함과 욕설. 유감스럽게도 그 대상은 흔히 어머니였다. 어머니 앞에서 아버지는 대놓고 여봐란듯이 광태를 부렸다. 한밤중에 듣는 아버지의 목소리는 끔찍하고 고약했다. 때로는 아버지가 분을 참지 못하고 집어던진 물건이 벽이나 바닥에 제멋대로 부딪혀 깨지는 소리가 거기에 섞였다. 겁에 질려 조그맣게 웅크리고 앉아 오들오들 떨고 있을 어머니의 모습을 나는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었다. 그 순간 어머니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손가락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듣고 있을 수 없었다. 공포에 분노와 짜증, 그리고 환멸과 절망.

아버지는 젊은 시절 원인 모를 병을 앓은 탓에 한 쪽 귀가 먹었다. 그렇게 들었다. 한순간에 그렇게 되었는지, 시간을 두고 차츰 그렇게 되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무슨 병인지는 모르겠다. 중이염이나 뭐 그쯤 되리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그걸 여태껏 한 번도 따져 물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뿐만이 아니라, 나머지 한 쪽 귀의 청력도 온전치 않다. 그 탓이겠지만, 아버지는 소리에 무디다. 소리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다. 자신이 내는 소리가 다른 사람들한테 어떻게 들릴지 헤아리지 못한다. 헤아려도 잠시뿐이다. 금세 잊어버린다. 아버지한테는 잘 들리지 않는 그 상태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릇을 거칠게 내려놓아도 자기 귀에는 그 소리가 거칠게 들리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헤아리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도 모른다. 상대가 생판 모르는 남이든, 병든 자기 아들이든. 그 소리에 아들이 잠에서 깰지도 모른다는 것을 아버지는 헤아리지 못한다. 조심성도 잃은 셈이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다. 한데도 나는 아버지를 두고 그저 귀가 잘 안 들리는 사람일 뿐 한 번도 장애인이라고 여겨본 적이 없다. 이 생각에 나는 언뜻 소스라친다. 귀먹은 사람과 청각장애인. 장애인이 비장애인을 배려해야 할 의무는 없다. 감히 요구할 수 없는 의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아버지가 싫다. 이게 문제다.

어릴 때는 싫어하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도대체 싫어할 수조차 없는 대상이었다. 목소리가 컸다. 두터운 구름 속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천둥소리 같은 위압감. 공포. 긴 침묵 끝에 터져 나오는 그 커다란 고함 소리는 끔찍했다.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다. 언제 터질지 알 수 없는 폭탄. 하지만 언제가 되었건 반드시 터지는 폭탄. 나는 늘 조마조마했다. 아버지의 침묵은 질기도록 길었다. 그 침묵 사이사이에 마치 나도 목소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듯 느닷없이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가 섞였다. 먹이를 찾아 겨울 산을 누비고 다니는 호랑이의 그것처럼 아버지의 목소리는 우렁차고 거칠었다. 어쩌면 그것도 청력상실과 관계가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예전에는 그저 고약하고 단순한 습성이라고만 여겼는데. 어쩌면 아버지는 그렇게라도 해야 비로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꼈던 것일까.

손가락으로 살며시 내 귀를 틀어막아 본다. 팔이 무겁다. 중력이 삼십 퍼센트쯤 강해진 것 같다. 드러누워 있는데도 몸이 무거운 걸 느낀다. 누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내 사지를 바닥에 단단히 묶어놓은 것 같다. 어쩌면 난쟁이 나라에서 막 눈을 뜬 딱한 사내 걸리버도 바로 이런 꼴,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온몸이 땅바닥에 온전히 포박당한 상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갑갑함. 당황스러움. 마음을 가만히 도사려본다. 몸이 회복되는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직은 그렇다. 아니면 회복은 되고 있지만 내가 느끼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씩인 걸까. 그렇다면 다행이다. 기다리면 될 테니까. 의사가 말한 대로 필요한 건 인내심일 뿐. 그거라면 어지간히 할 수 있다. 또 그거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손가락이 귓구멍에 꼭 맞는다. 한 쪽 귀는 완전히, 그리고 나머지 한 쪽 귀는 반쯤만 틀어막는다. 그저 갑갑한 것하고는 조금 다르다. 음악을 듣다가 오디오의 볼륨을 갑자기 낮추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바닷가에서 소라 껍데기를 주워 귀에 대었을 때처럼 파도 소리를 닮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알 수 없는 잡음이 고막을 줄곧 낮게 울린다. 가려운 곳을 손톱으로 긁지 않고 손끝으로 문지르기만 하는 느낌이다. 공기의 흐름, 혈액의 흐름, 또는 심장의 고동. 불쾌한 소리. 답답하다. 산소가 희박한 밀폐공간에 드러누워 숨을 쉬는 것 같다.

아버지의 느낌은 이것과도 다를 것이다. 나는 귀를 손가락 하나로 틀어막았을 뿐이다. 청력은 그대로다. 아버지는 청력 자체를 잃었다. 잡음조차 없을지 모른다. 있더라도 성격이 다른 잡음일 것이다. 나는 모른다. 모르는 것을 두고 무어라 말할 수는 없다. 귀에서 손가락을 뺀다. 산소가 밀려든다. 숨을 쉴 수 있다. 살 것 같다. 소리가 선명하다. 감각이란 이런 것이다. 하나의 세상이 닫혔다가 열리는 느낌. 아버지는 이런 감각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이런 감각의 체험을 하지 못한 지 오래다. 그래도 감각에 대한 오래 전의 기억은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기억이 아버지한테 끊임없이 감각에 대한 갈망을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큰 목소리를 내는 것도, 물건을 소리 나게 다루는 것도 어쩌면 다 그 탓일까. 반쯤 남은 나머지 한쪽의 청각이 그걸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후루룩. 커피 마시는 소리다. 입술을 잔 운두에 살짝 붙일 듯 말 듯 갖다 대고 들이마신다. 아버지의 방식이다. 숭늉을 마시듯, 막걸리를 들이켜듯. 아버지는 금세 잔을 비우고 역시나 탁 소리 나게 그걸 내려놓는다. 아버지는 성미가 급하다. 참을성이 부족하다. 손길 하나하나가 그렇다. 나는 줄곧 그걸 느끼면서 살았다. 그래서 늘 조마조마하고 불안했다. 저렇게 말없이 도사리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버럭 폭발하고 마는 아버지. 마음의 준비 따위 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그런 아버지와 대화를? 언감생심이다. 아버지한테 말을 붙여본 기억이 없다. 질문을 하지도 않았고, 의논을 한 적도 없다. 아버지가 나한테 말을 걸어온 기억도 거의 없다. 있더라도 고작해야 명령이나 호통이 전부였다.

아버지가 일어난다. 동작이 경쾌하다. 그렇게 느껴진다. 아버지는 몸무게가 가볍다. 굳이 규정하자면 아버지는 채식에 소식주의자다. 육고기를 기피한다. 돼지고기는 냄새조차 맡지 못한다. 생선이나 조금 먹을 뿐이다. 식사량 자체가 적다. 그러니 아버지한테는 나잇살이라는 것조차 없다. 타고난 체질인지, 어떤 일을 계기로 그렇게 된 것인지 나는 모른다.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감히 물어볼 수 없었을 뿐이다. 아버지 앞에서 나는 구제불능의 벙어리였다. 늘 지레 잔뜩 주눅이 든 상태였다. 아버지의 그런 성향이 일종의 결벽증인지도 모른다는 것은 한참 나중에야 가까스로 떠오른 생각이었다. 아버지는 소리에 무딘 대신 냄새에 민감하다. 청각과 후각. 아버지는 고기 냄새를 오래 견디지 못한다. 살점이 타들어가고 피가 변색되면서 빠르게 그것이 익어가는 냄새 앞에서 아버지의 참을성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고 만다. 오만상을 찌푸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고기를 자주 먹을 형편도 못 되었지만, 어쩌다 기회가 생겨도 나는 기분 나쁜 죄책감을 느끼면서 먹어야 했다. 아버지가 싫어하는 일을 하는 아들의 심정. 그렇게 섭취한 동물성 단백질이 곱게 피가 되고 살이 될 턱이 없다. 남몰래 못된 짓을 저지르는 기분. 지독히도 싫었다.

아버지의 발걸음이 싱크대 쪽으로 옮겨간다. 수도꼭지를 비튼다.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 잔을 부신다. 수도꼭지를 잠그고 잔을 어딘가에 내려놓는다. 아니, 넣어놓는다. 소리가 날카롭고 또렷하다. 고막이 조금 아프다. 싱크대 한쪽에 걸려 있는 수건으로 손을 훔친다. 그 일련의 동작을 머릿속에 고스란히 그릴 수 있다. 낯설다. 역시 변한 건 분명하다. 저런 잔 설거지 따위 손수 할 위인이 아닌데. 쿵쿵, 바닥이 울린다. 걷기 시작했다. 익숙한 발걸음이다. 아버지는 조신하게 걷지 않는다. 휘적휘적 마루를 가로지른다.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소리. 아버지는 문을 가만히 여닫지 않는다. 저 소리에 언제나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내가 밤늦게 시험공부를 하고 있을 때도 아버지는 언제나 저런 발걸음으로, 저렇게 함부로 문을 열고 또 닫으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때 기억이 떠오르니 그때의 감정도 오롯이 되살아난다. 참아내기가 쉽지 않다. 큰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닫힌다.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진다. 기다렸다는 듯 냉장고 소음이 아버지가 사라지고 없는 빈자리를 가득 채우고 든다. 그 무미건조한 소음이 신통하게도 내 마음을 가라앉힌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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