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 내 여동생
9. 내 여동생
덥다. 덥다는 게 느껴진다. 너무나 확실한 느낌이라 부정하거나 의심할 도리가 없다. 이걸 내 몸이 회복되고 있다는 증거로 새겨도 될까. 아니면 나 같은 환자조차 덥다는 걸 느끼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계절이 바야흐로 여름의 한가운데로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 한 걸음 한 걸음 계절은 성큼성큼 여름의 한복판을 향해 똑바로 다가간다. 하루하루 그걸 느낀다. 공기의 질이 날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촉각이 그걸, 그 약간의 차이를, 그 미세한 변화를 놓치지 않고 낚아챈다. 역시 몸이 편치 않은 탓일까. 청각만이 아니라 모든 감각이 막 숫돌에 갈아낸 칼처럼 저마다 새파랗게 날이 서 있다. 피로하다. 몸이 허한 것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쪽의 감각이다. 몸의 피로가 아니라 신경의 피로다. 이런 적이 없다. 낯설다.
한밤중인데도 후텁지근하다. 습기 찬 솜털이 내 몸을 한 겹 둘러싸고 있는 것 같다. 숨쉬기가 버겁다. 내 몸에는 차라리 이편이 낫다고 생각하면서도 불쾌하다. 덕분에 요 며칠 밤잠을 설쳤다. 오늘밤도 그러기가 십상이다. 어머니는 행여 내가 감기라도 들까 싶어 창문을 꼭꼭 닫아둔다. 아무리 더워도 새벽녘에는 공기가 서늘하다고. 그게 내 몸에 해로울지도 모른다고. 어머니로서는 당연한 걱정이다. 받아들인다. 별수 없는 노릇이다. 나는 지금 병자다. 잘 안다. 한여름에 해산한 여자가 두꺼운 옷을 입고 더운 아랫목에 누워 몸조리를 하듯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 아픈 사람은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그게 맞다고 어머니는 믿고 있다. 그런 시대를 살아온 분이다. 아픈 사람은 마땅히 뜨거운 온돌방 아랫목에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 등을 지져야 한다. 그러고 있는 모습을 보아야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 여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등짝에 땀띠가 발갛게 돋아도 하는 수 없다. 그게 어쨌거나 몸을 하루라도 빨리 추스를 수 있는 비결이다. 어머니의 믿음이다. 그 믿음에 딴죽을 걸 수는 없다.
그 믿음은 어느 순간 슬그머니 내 것이 되기도 한다. 내 몸이 지레 그걸 안다. 어린 시절 내가 아프기만 하면 어머니는 어김없이 나를 아랫목으로 몰아넣었다. 검누르게 빛이 바랜 뜨거운 장판 위에 나를 눕혀놓고 코밑까지 이불을 덮어씌운다. 나는 머지않아 땀범벅이 된다. 기어이 그걸 확인하고 마침내 어머니는 중얼거린다. 이제 나으려나 보네. 그 순간 어머니 얼굴에서 걱정의 그늘이 사라지는 것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나도 덩달아 마음을 놓는다. 땀이 나는 것보다 더 확실한 회복의 징후는 없다. 내 몸이 그걸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신기하다. 그 기억이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게 만든다. 몸이 더우면 시술받은 부위가 덧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그때만큼은 사라진다. 물론 나는 어머니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이불깃을 살짝 들추어 뱃가죽을 공기 중에 노출시킨다. 그래야 또 안심이 된다. 속절없는 노릇이다. 어머니와 나는 그렇게 은밀히 서로를 감시하고 경계한다.
낮에 여동생이 다녀갔다. 입원실로 문병 오려는 것을 못하게 막았다. 혹시라도 내비칠지 모르는 질타의 눈빛이 두려웠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다. 여동생한테 나는 직무유기를 한 오빠인 셈이니까. 잘 안다. 잘 모르겠는 것과 잘 알겠는 것 사이. 보여주기 싫은 것과 보여줘도 괜찮은 것 사이. 보여주기 싫었다. 이런 내 모습을. 적어도 입원실에서 환자복을 입고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은. 보여주기 싫은 까닭이 무엇이냐고 누가 물어온다면 딱 부러지게 대답할 말은 없다. 그저 간호사와 의사, 그리고 같은 입원실의 다른 환자들, 그 생판 모르는 사람들 틈에 끼어 혼자 있고 싶었다. 지극히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손길들에 내 몸을 온전히 내맡기고 싶었다. 자책일 수도, 자학일 수도 있다. 낯선 나라의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 틈에 섞여 홀로 걷고 싶은 마음이었다고 하면 낯간지럽고 한가로운, 돼먹지 못한 사치일까.
결국 여동생은 집으로 왔다. 그래도 내 마음을 아는지, 여동생은 이내 서둘러 돌아갔다. 머무르는 동안 말도 몇 마디 붙여오지 않았다. 보일 듯 말 듯 측은한 빛이 어린 눈매로 잠시 나를 힐끗거렸을 뿐이다. 여동생은 지극히 사무적이고 기계적으로 제 할 일만 했다. 손수 만들어 가져온 밑반찬들을 냉장고에 척척 정리해 넣고, 어머니가 나를 돌보느라 미루어둔 집안일에 이것저것 손을 댔다. 능란했다. 시간 낭비가 없는 손길이었다. 소리만 듣고도 알 수 있었다. 아무나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이제는 남편이요 아빠다. 듣는 귀가 있다. 뛰어난 소리꾼이 있으면 귀명창도 있는 법. 맞다. 여동생도 이제 아내요 엄마다. 아내다운 손길, 엄마다운 손길이었다. 기특하면서도 안쓰러웠다. 이게 오라비의 마음일까.
오빠 노릇을 제대로 못한 건 사실이다. 아니, 제대로 한다는 건 또 어떤 것일까. 그걸 알 수 있는 세월을 살지 못했다. 나는 오로지 떠나는 데에만 골몰해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집을 벗어나고 싶었으니까. 숨이 막혔으니까. 도무지 다른 곳을 돌아볼 여유라곤 없었다. 여동생도 내 관심 밖으로 멀찍이 밀려나 있었다. 아무리 기억을 되새겨보아도 그 시절 내 여동생이 어떻게 지냈는지 상세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다. 참 무심한 오빠였던 셈이다. 열린 방문을 통해 곁눈으로 여동생이 하는 양을 잠시 지켜보다 눈을 감았다. 내가 잠든 줄 알았는지 두 여자 사이에 오가는 목소리가 더욱 낮아진다. 그걸 예민해진 내 청각이 한사코 놓치지 않고 잡아챈다. 오빤 어때? 먹는 게 없으니 기운이 나겠니. 여동생은 재우쳐 묻지 않는다. 고개만 가만히 끄덕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청각이 더욱 예리하게 날을 세운다. 그 느낌이 싫다. 힘겹다. 그래도 귀를 막지 않는 한 듣지 않을 수는 없다. 아무거나 잘 먹을 수만 있어도 한결 나을 텐데. 어머니의 말끝에 들릴 듯 말 듯 한숨이 얹힌다. 나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그들을 외면하듯 고개를 슬며시 옆으로 돌린다.
잊지 못할 기억이 있다. 여동생이 아주 어렸을 때였다.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어느 날 여동생을 유모차에 태우고 집 밖을 잠시 돌아다녔다. 왜 집 밖으로 나갔는지는 모르겠다. 집에는 꽤 너른 마당이 있었다. 그때는 마당 너른 집이 많았다. 집 자체는 방 두 칸에 비좁은 마루가 있을 뿐이었는데, 마당은 그 집보다 배나 더 넓었다. 작은 단층집에 너른 마당.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공간의 낭비일 테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집이 드물지 않았다. 그러니 굳이 집 밖으로 나갈 필요까지는 없었다. 한데도 나는 기어이 동생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어쩌면 잠시 나가 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손님이 찾아왔던 것도 같고, 어머니가 무슨 심부름을 시켰을 수도 있다. 아니면 나 스스로 동생한테 바깥공기를 쐬게 해주고 싶었거나. 어쨌든 나는 동생을 태운 유모차를 밀며 한동안 집 밖을 돌아다녔다. 그 유모차가 동생을 위해 사들인 새것이었는지, 아니면 누구 이웃한테서 얻어온 헌것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걸 두 손으로 밀면서 어디까지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딴에는 제법 멀리까지 갔다가 돌아온 것 같다. 힘에 겨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팔다리가 제법 아팠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집에 거의 다 와서 그만 유모차를 놓쳤다. 어쩌면 짐짓 놓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힘들다는 핑계로. 조금 경사진 곳이었는지, 내 앞에서 유모차가 저 혼자 굴러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나는 제 자리에 꼼짝 않고 서서 그걸 달려가 붙잡을 염도 못 내고 있었다. 잠깐 지독한 마비 상태에 빠졌던 것도 같다. 나는 굴러가는 유모차를 가만히 구경만 했다. 나 자신 사람이 아니라 아무런 감정도 없는 카메라가 된 것처럼. 유모차는 저 혼자 잠시 굴러가더니 급기야 저 멀리 앞에 있는 어느 집 담벼락에 쿵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유모차가 튀어 오르면서 크게 기우뚱했다. 다행히 쓰러지지는 않았다. 그제야 나는 정신을 차리고 유모차를 향해 뛰어갔다. 동생이 걱정되었다. 다쳤을까. 내 쪽에서는 동생이 보이지 않았다. 울음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동생은 이마에 상처가 나 있었다. 벽이나 유모차 앞 가름막에 이마를 들이박은 모양이었다. 힐끗 보아도 이마 한 귀퉁이가 불그스름한 것이 제법 눈에 띄는 크기였다. 피는 나지 않았다. 아니, 살짝 핏기가 비쳤던 것도 같다. 자세히 살필 용기가 없었다. 나는 당황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있었을 테지만, 그들을 의식할 정신머리가 없었다. 동생은 점점 더 크게 울었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나는 동생을 달랠 엄두도 못 내고 있었다. 다 내버려 두고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이 나를 다잡았는지, 나는 다음 순간 유모차를 밀면서 집 쪽으로 황급히 내닫고 있었다. 어머니한테 야단맞을 생각에 가슴이 옥죄였다. 동생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그래도 빨리 동생을 어머니한테 보여야 한다는 판단은 했던 것을 보면 최소한의 이성은 있었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나를 혼내지 않았다. 아무 말도 없었다. 동생은 어머니 품 안에서 이내 안정을 찾았다. 나도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그렇게 지나갔다.
문제는 얼마 뒤에 그와 똑같은 일이 한 번 더 있었다는 것이다. 그날도 나는 여동생을 유모차에 태우고 밖으로 나갔다. 날이 흐렸다. 집으로 돌아올 때쯤 빗방울이 듣기 시작했다. 어쩌면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애초 더 가려던 계획을 접고 도중에 발길을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서둘렀다. 동생한테 비를 맞혀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그만 지난번에 사고가 났던 바로 그곳에서 또다시 유모차를 놓치고 말았다. 무엇에 단단히 씐 것처럼. 어쩌면 빗물에 손이 미끄러워 어쩔 수 없이 놓쳤던 것인지도 모른다. 일부러 그랬던 건 절대로 아니다. 나는 당황했다. 이번에는 넋 놓고 있지 않고 재빨리 달려가 손을 뻗었다. 빗길이라 미끄러운 탓인지, 유모차는 이상하게도 지난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내달았다. 아무리 애를 써도 붙잡을 수 없었다. 꿈속인가 싶었다. 누가 앞에서 유모차를 힘껏 끌어당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간발의 차이. 아슬아슬하게 잡지 못하고 말았다. 유모차는 지난번처럼 똑같은 벽에 쿵하고 부딪혔다. 그 소리가 고막이 아플 만큼 크게 들렸다. 여동생이 울기 시작하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동생을 살펴볼 생각조차 못했다. 나는 벌써 있는 대로 겁에 질려 있었다. 빗방울이 점점 더 굵어져 갔다. 미루적거리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나는 그 정신머리에도 지난번처럼 다짜고짜 유모차를 밀며 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단 한 차례의 경험이 어느덧 내 몸에 새겨놓은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벌써 대문 밖에 나와 있었다. 그날은 크게 꾸중을 들었다. 몇 차례 매를 맞았던 것도 같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되새기고 싶지 않은 일화다. 마당 한쪽에는 어머니가 심어놓은 옥수수가 가득히 자라 있었다. 내 키보다 더 컸다. 나는 그 옥수수 사이로 기어들어가 숨었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집 안에 들어가 있을 염치가 없었다. 길고 무성한 옥수수 이파리에 떨어지는 빗줄기 소리가 사방에서 요란했다. 귀가 따가웠다. 어머니는 나를 찾지 않았다. 어쩌면 찾았는데 내가 그 소리를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여동생의 날카로운 울음소리만은 똑똑히 들었다. 가슴이 아프고, 우울했다. 슬펐다. 울먹였던 것도 같다. 온몸이 빗물에 흠뻑 젖었다. 그 여동생이 지금은 저렇게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아이들을 낳았고, 오라비를 살피러 와서 어머니를 돕고 있다. 이마에 흉터는 남아 있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