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민지, 《파란색 미술관》
B56. 정신적이고 신성한 색이자 완벽하게 자유로운 색 / 《파란색 미술관》 - 강민지 지음 / 아트북스
파란색은 예전에 제가 가장 좋아하던 색이었습니다.
지금은 보라색으로 바뀌었지요.
그래도 여전히 파란색만큼 널리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색깔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물론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분홍색 등속을 좋아하는 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파란색을 싫어하거나 혐오하는 분은 드물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도 지금은 보라색을 좋아하는 색깔로 첫손가락에 꼽지만, 그렇다고 파란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좋아하지요.
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저 스스로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보라색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을 뿐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 파란색에 집요하게 착목하는, 매우 독특한 미술 관련 서적입니다.
이런 성격의 책은 처음 봅니다.
미술의 기본은 선과 색일 텐데, 바로 그 색, 색깔, 색채라는 필터로, 그 가운데서도 온전히 파란색이라는 필터로 미술을, 정확히는 세계적인 화가들 15명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는 신기한 책이지요.
음악을 그 기본 구성 요소인 선율과 음색의 필터로 들여다보는 책이 있다고 가정해 보면, 이 책이 얼마나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금세 미루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책을 통하여 그 파란색이 지닌 예술성의 진면목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고 고백해야겠습니다.
파란색의 예술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런 말이 허용된다면, 저는 파란색의 예술성을 미술이 아니라 영화에서 처음 느꼈던 것 같습니다.
특히 프랑스의 누벨 이마주 세대 감독들의 영화들, 그러니까 장 자크 베넥스의 〈베티 블루 37.2〉(1986)나, 뤽 베송의 〈그랑 블루〉(1988)와 같은 영화들에서 처음으로, 뒤이어 제임스 카메론의 〈어비스〉(1989),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1991)―뒷날의 〈아바타〉(2009) 시리즈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겠지요―에서 또 한 번, 나아가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의 〈세 가지 색: 블루〉(1993)와 같은 영화들을 통하여 결정적으로 파란색의 예술성을 절절히 느끼고 인식한 바 있지요.
이 책은 그 파란색이 얼마나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성스러운 색인지를, 그리고 중세에는 성모마리아의 옷이나 유럽 왕권을 표현하는 색으로 쓰였으며, 동시에 인상파 이후로는 우울, 고독, 차가움, 냉정, 슬픔, 불안 따위 어두운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는 색으로도 널리 쓰였다는 사실을 화가 15명의 다양한 작품들을 통하여 차례로 보여줍니다.
크게 ‘파랑’, ‘파란’, ‘블루’라는 제목의 3개 챕터에 클로드 모네에서부터 시작하여 오귀스트 르누아르, 호아킨 소로야, 라울 뒤피, 알폰스 무하, 이브 클랭, 오딜롱 르동, 앙리 마티스,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 뭉크, 카지미르 말레비치,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베르메르), 에드가르 드가, 에드워드 호퍼, 페데르 세베린 크뢰위에르에 이르기까지, 모두 열다섯 명의 화가들이 그린 ‘파란색’ 또는 ‘파란색’이 주조인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그 파란색이라는 신비롭고도 슬프며, 슬프면서도 그지없이 아름다운 색채의 물결에 온몸이 흥건히 젖어드는 듯한, 매우 드문 예술 체험을 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열다섯 명의 화가들 가운데서도 오로지 파란색만으로 화폭 전체를 백 퍼센트 온전히 채워서 그린 작품을 남긴 유일한 화가인 이브 클랭 편의 다음과 같은 설명이 기억해 둘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클랭은 파란색 하늘에 유난히 집착했어요. 그 이유는 파란색과 하늘이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 개념에 완전히 부합했기 때문이지요. 우선 파란색은 정신적이고 신성한 색이자 완벽하게 자유로운 색이었습니다. 또 하늘은 ‘비물질적’인 것으로 사물처럼 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의 흐름이나 기상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에 확실한 원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죠. 클랭은 미술이 확실히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형태를 갖추지 않은, 말 그대로 ‘비물질적’인 것을 향해 새로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히, 처음부터 끝까지 수월하게 잘 읽힌다는 것은 기본값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