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b장조 ‘에로이카(영웅)’ LP
♬1. 오이겐 요훔의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b장조 ‘에로이카(영웅)’ LP / 연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EMI Angel / 오아시스 레코드사 / 주식회사 코코
스무 해쯤 전, 종로 쪽의 어떤 레코드 가게가 폐업하면서 헐값에 내놓은 것들 가운데 우연히 골라 구입한 음반입니다.
뜯지 않고 그대로 둔 ‘₩2000원’이라는 가격표가 지금 봐도 앙증맞네요.
커버 앞면의 지휘자는 누가 봐도 분명히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입니다.
당연히 저도 처음에는 카라얀의 것이라 생각하고 집어 들었는데, 웬걸요!
뒷면에 소개되어 있는 지휘자는 20세기의 거장 가운데 한 사람인 독일 출신의 ‘오이겐 요훔’(1902~1987)이었습니다.
연주도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였고요.
게다가 수록되어 있는 곡도 모든 교향곡을 통틀어 제가 가장 좋아하는 베토벤 교향곡 제3번 Eb장조 ‘에로이카(영웅)’였습니다.
그때 저는 ‘영웅 교향곡’을 지휘자별로 찾아서 듣고 있었는데, 요훔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궁금했지요.
라이선스 판인 데다가 보관 상태도 썩 좋아 보이지 않아서 음질이 다소 못 미더웠지만, 구입을 망설일 이유는 없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그걸 고운 헝겊으로 조심스럽게 닦아서 턴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장 그것은 저의 최애 ‘영웅 교향곡’ 음반이 되었습니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충분한 다이내믹함―.
너무 빨라서 경박하지도, 너무 느려서 우울하지도 않은 절묘한 템포―.
물론 허름한 커버 앞뒷면의 카라얀과 요훔의 불일치가 연주의 정체를 다소 의심스럽게는 하였지만, 상관없었습니다.
LP 특유의 잡음과 더불어 음질이 살짝 떨어지는 것도 CD만의 저 한 점의 티도 없어 비인간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번지르르함보다는 오히려 연주에 인간적인 매력을 더해주는 구실을 하는 느낌이어서 좋았지요. 제가 LP를 애정하는 이유입니다.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도 모노 녹음인 탓에 오히려 더 고전적인 명연의 느낌이 진하게 나지 않습니까.
그 뒤로 저는, 존 엘리엇 가디너의 원전연주를 논외로 친다면, 이보다 더, 또는 이만큼 마음에 드는 ‘영웅’을 아직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