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찬호, 《난 고양이로소이다》
P40.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다 – 송찬호 디카 시집, 《난 고양이로소이다》(한국디카시 대표시선 9, 작가)
예,
‘기다리는 마음’을
기다렸습니다.
왜냐고요?
예,
기다림이,
기다리는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세상이니까요.
이젠
아무도
기다리지 않습니다.
참을성,
인내심도
덩달아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
아무도
참지 않습니다.
아무도
인내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이제 그에게
문자 그대로 고문(拷問)이
되었습니다.
또는,
무례(無禮)가
되었습니다.
30초짜리 쇼츠도
끝까지
참고 못 봅니다.
그래서
시인의 말이
귀합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다’라는 말이요.
어떻게 똑같다는
걸까요?
오만한 사람은
기다릴 줄 모릅니다.
그런 사람은
자기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을,
또는 무엇을
증오합니다.
기다림은
겸손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선한 사람만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이렇게 묻는 거
본 적 있으세요?
‘가을은 어디쯤 오고 있는 겁니까?’라고요.
계절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만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기다릴 줄 모르는,
기다리고 싶지 않은,
심지어 기다림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묻지 않습니다.
오든 말든.
가든 말든.
이게
기다림과 무관한 사람들의
태도일 겁니다.
시인은 말합니다.
‘골목을 지나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고 탑이 된 대문 기둥을 본다 합장하고 지나간다’라고요.
기다릴 줄 모르는 사람은
골목을
천천히 걷지
않을 겁니다.
‘오랜 세월 풍상을 겪고 탑이 된 대문 기둥’ 따위
거들떠보지도
않을 겁니다.
그런 걸
‘본다’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일 겁니다.
더욱이
‘합장하고’ 지나가다니요?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합니까.
예,
기다림은 하나의
지표일 것입니다.
기다릴 수 있는,
기다릴 줄 아는,
기꺼이 기다리기로 하는
사람의 지표―.
그렇게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기에 시인은
기다렸던 노을이
찾아왔을 때
이런다는군요.
‘노을에 술 한 잔 타 먹는다’라고요.
듣기만 해도 기다림의
아름다움이, 기다림의
따스함이
밀물처럼 몰려옵니다.
예,
시인이 말이
맞습니다.
‘기다리는 마음은 똑같다’라는 말이요.
그런 똑같은 마음을
품고 있는 누군가가
몹시도 그리운
시간입니다.
그런 누군가를
기다리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