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39. 나는 슬프려고 여기 와 있다

- 김언, 《한 문장》

by 김정수

P39. 나는 슬프려고 여기 와 있다 – 김언 시집, 《한 문장》(문학과지성 시인선 504, 문학과지성사)

슬픔이

운명인 사람도

있을까요.

슬픔이

사명인 사람도

있을까요.

슬픔이

임무인 사람도

있을까요.

슬픔이

소망인 사람도

있을까요.

슬픔이

본성인 사람도

있을까요.

아,

시인은

그렇다는군요.

나는 슬프려고 여기 와 있다’라고 고백하는 걸 보면요.

가슴을 저미는

고백입니다.

게다가

이 고백을

뒷받침하려는 듯

시인은

이렇게 덧붙이는군요.

나는 중지할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요.

나아가

나는 중지하다가 미치는 사람이다.’라고

숫제

쐐기를 박는군요.

슬픔을,

또는 슬프기를

중지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자칫

중지하려다가는

스스로

미쳐버린다는 것

아닙니까.

아아,

어쩌면 시인은

슬퍼야 살 수 있는

사람인 걸까요.

슬퍼야 살 수 있는

사람만이

시인이라는 걸까요.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에 대한 슬픔인지

궁금해집니다.

생각해 보면,

그런 사람들

정말

있지 않나요?

희생과 헌신의 인생을

살다 간 사람들

말입니다.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고난받는

사람들에 대한

무한한 긍휼의 마음을

지닌 사람들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기꺼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도

우리 연약한 인간들에 대한

그런 긍휼의 마음,

슬퍼하는 마음이

있으셨기 때문

아닐까요.

그런 시인이기에

그런 마음을 이젠

대놓고 이렇게

표명하는군요.

당신이 얼어죽지 않기를 바란다.’라고요.

이 말을

상징적으로 어렵게

풀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얼어죽을 처지에 놓인

불쌍한 사람에 대한

시인의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뿐만이 아니라,

시인은

이렇게 권합니다.

지금 말하라. 나중에 말하면 달라진다.’라고요.

정말 그런지도

몰라요.

슬퍼하는 마음은

지금

말해야 합니다.

이래저래 생각하면서

따지다 보면

슬퍼할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렇게 반문합니다.

내가 없다면 누가 있겠는가.’라고요.

암요.

남이 나 대신

슬퍼해 주길

기다리는 사람은

시인이랄 수 없을 겁니다.

내가 슬퍼하지 않으면

아무도 슬퍼하지 않으리라는 마음,

이게 중요하다는 걸

시인은 아는 겁니다.

왜냐하면

여유로울 시간 따위

없거든요.

바야흐로 점점 더

어두워지고 늙어가고 눈이 내리고 있’으니까요.

기다릴 여유란

없습니다.

아무도

우리가 슬퍼하기를

기다려주진

않을 테니까요.

슬퍼할 수 있을 때

열심히

슬퍼해야 합니다.

예,

시인처럼 우리는

모두

슬프려고’ 이 세상에

왔는지도 모릅니다.

슬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세상을

얼마나 각박하고

삭막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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