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98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98

by 김정수

CA986. 브래들리 쿠퍼, 〈스타 이즈 본〉(2018)

내게 ‘스타 이즈 본’, 곧 ‘스타 탄생’의 ‘스타’는 역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다. 일정한 주기로 거듭 만들어져 온 이 ‘스타 탄생’ 스토리의 ‘스타’였던 재닛 게이너(1937), 주디 갈란드(1954), 바브라 스트라이샌드(1976), 그리고 2018년의 레이디 가가―. 하지만 어째서 스타를 도왔던 남자는 꼭 파멸해야 하는가는 역시 의문이다. 설사 이 파멸이 여성 쪽의 가해가 아니라, 남성 쪽의 자멸이라고 할지라도. 어쩌면 이 똑같은 서사가 그 의미를 아직도 여전히 잃지 않고 있다는 것은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 사이의 젠더 갈등의 구조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닐까. 또는, 팜므파탈 서사의 변형태?


CA987. 아담 멕케이, 〈돈 룩 업〉(2021)

‘룩 업(Look Up)’과 ‘돈 룩 업(Don’t Look Up)’의 사이. 직시(直視)와 회피(回避)의 사이.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가 얼마나 인간의 본성에 굳건히 뿌리박고 있는 리얼한 서사인가에 대한 재확인. 따라서 혜성의 지구 충돌은 홍수의 또 다른 버전에 지나지 않는다. 지극히 종교적인 인류 멸절의 시나리오. 드넓은 우주 공간 어딘가에 지구와 똑같은 환경의 행성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 행성이 어째서 무인(無人)의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가 누구의 허락도 받지 않고 그곳을 우리 뜻대로 쓸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일까. 인간에게 그 행성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면, 그 자격은 누구한테서 받은 것인가. 이 점에 대한 반성의 성찰이 그 ‘이주(移住)’에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노잉〉(2009, 알렉스 프로야스)에서도 이 점에 대한 성찰은 감행되지 않았다. 또는, 충분히 감행되지 않았다.


CA988. M. 나이트 샤말란, 〈해프닝〉(2008)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거나 착취하지만, 자연은 인간을 자멸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어떤’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또는 얻기를 거부한다면 자멸은 곧바로 총체적인 멸절로 이어질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손을 대기 전에 그 자연한테 정중히 허락을 구한 적이 없다. 신께 그 권리를 받았다는 사실을 믿든 믿지 않든.


CA989. 스콧 데릭슨, 〈지구가 멈추는 날〉(2008)

로버트 와이즈의 1951년 판 〈지구가 멈추는 날〉의 리메이크. 인류는 존속할 가치가 있는가? 또는, 자격이 있는가? 지금 인류는 이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들’에게는 인류의 장래를 결정할 자격이 있는가? 이는 신의 자격을 확인하려는 것과 같은 차원의 문제가 아닐까. 과연 인간은 신에게 그 자격을 질문한 적이 있는가? 또는,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있는가?


CA990. 릭 로먼 워, 〈그린랜드〉(2020)

외부에서 전 지구적인 규모의 재난이 닥쳐왔을 때 그 재난과 맞서는 힘, 의지, 용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이 인간을 절망으로 자멸하지 않게 만드는가? 그 ‘어디’와 ‘무엇’이 결국 ‘가족’이라는 사실은 과연 충분한 동인(動因)일 수 있는가? 가족은 진정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런 자문들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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