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97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97

by 김정수

CA981. 제이크 슈레이어, 〈썬더볼츠〉(2025)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말일까.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좋은 사람일까. 하긴 세상에는 자식을 사랑하지 않고 학대하며 못살게 구는 부모도 있으니까 어쩌면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가 적어도 ‘나쁜 사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또, 부모가 나쁘더라도 그 자식이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니, 어쩌면 좋은 부모 밑에서 좋은 사람이 태어나고 길러진다는 것이 꼭 절대 명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부모가 꼭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슈퍼 히어로는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꼭 슈퍼 히어로가 아닐지라도 압도적인 힘이 있는 사람, 다른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막강한 힘을 지닌 사람, 또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사람은 반드시 ‘좋은’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이 영화가 하는 진정한 발언이다.


CA982. 샤모, 〈청춘적니〉(2021)

그의 그 무모한 눈보라 속 무한 전진이 꼭 필요했을까. 무엇보다도 그녀의 사랑을 확인하는 데에? 아니면, 자신의 사랑을 그녀에게 확인시키는 데에? 간절히 소망하면 그 소망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마도 거짓말인 모양이다. 적어도 이 영화의 전언을 따른다면. 아니면, 그의, 그리고 그녀의 소망이 끝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중국이라는 광활한 대륙의 그 물리적인 크기와 기후의 사나움 또는 가혹함 탓일까. 한데, 어째서 꼭 10년이어야만 했던 걸까.


CA983. 히구치 신지, 〈신칸센 대폭파〉(2025)

1975년 판 〈신칸센 대폭파〉(사토 준야)와 이 영화 사이의 차이는 전성기 홍콩영화와 지금의 홍콩영화(또는 중국영화) 사이의 차이만큼이나 현저하다. 물론, 유감스럽게도 이는 1975년 판의 다카쿠라 켄과 2025년 판의 쿠사나기 츠요시(초난강) 사이의 ‘속절없는’ 차이로 ‘속절없이’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것은 ‘기개(氣槪)’의 부족이다. 여기서 기술력의 차이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을까. 적어도 이 두 영화 사이에서는.


CA984. 김성제, 〈보고타: 마지막 기회의 땅〉(2024)

보고타가 어째서 마지막 기회의 땅인 걸까. 그들은 기회가 있는 땅을 찾아간 것이 아니라, 어쩌면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그곳으로 간 것이 아닐까. 기회란 있는 것도 아니고,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대개는 기회란 오는 것이고, 그것이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잡아야 한다는 식으로 알고, 또 그렇게 말들을 하지만, 실은 기회란 내가 만드는 것이다. 이걸 잊거나 오해하면 기회 자체를 원망하게 된다. 또는, 기회라는 것과 인연이 없는 땅을 의심하게 된다. 송중기가 마지막 순간 일종의 ‘되치기’로 최후의 승자가 되어 살아남는 것은 희망의 편린(片鱗)일까. 아니면, 아직도 마지막 실패의 종장이 남아 있다는 의미일까. 이런 의문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그 땅에서 송중기가 혹 거둘지도 모르는 성공이 진짜 성공인지에 대한 의심이 들기 때문이다.


CA985. 존 맥티어넌, 〈다이 하드〉(1988)

촬영 얀 드 봉. 일본에서도 크리스마스가 명절인 줄 몰랐다는 브루스 윌리스의 빈정거림에 일본인인 타카키 회장은 진주만에서는 졌지만, 워크맨으로는 이겼다고 응수한다. 남편은 기혼녀인 아내가 미혼 때의 성(姓)을 그대로 쓰고 있다고 비아냥거리고, 아내는 가정에 소홀한 경찰 신분의 남편을 여전히 불평한다. 그리고 때는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시즌이다. 어째서 하필이면 크리스마스냐고 이제 더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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