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199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199

by 김정수

CA991. 민규동, 〈파과〉(2025)

그래, 자기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정말 좋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이지. 좋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쨌거나 좋은 세상일 거야. 왜냐하면, 좋은 사람은 은혜를 갚을 줄 알거든. 은혜가 은혜인 줄 알거든. 반드시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걸 알거든. 이건 원수를 갚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 일이거든. ‘손톱’으로서든 ‘조각’으로서든, 그녀(이혜영)의 킬링이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또는 있는 것은 그것이 결국은 은혜를 갚는 일이었기 때문일 거야. 복수나 처단이 아니라―.


CA992. 강이관, 〈바이러스〉(2025)

자기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은 정말 나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 아닐까. 이걸 아는 사람은 그렇다면 아마도 좋은 사람일 것이다. 좋은 사람의 필수 조건 하나가 바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가릴 줄 아는 눈의 소유 여부일 테니까. 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가릴 줄 아는 눈의 소유 여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의 감정 상태가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라는 것도 뇌 속에서 벌어지는 화학작용에 지나지 않는다는 설명일까. 하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그 화학작용을 유발하는 원인에 대한 것이다. 호감이 기본값이 아니라면 바이러스도 무용하다는 것이 그의 전언이니까. 그렇다면 이건 아마 바이러스보다 훨씬 더 강한 기본값, 곧 DNA인 걸까.


CA993. 김상만, 〈전,란〉(2024)

전쟁과 반란. 의병이 역적이 되는 순간. 나라가 든든한 보호자가 아니라, 철천지원수가 되는 계기. 실은 나라가 원수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군주가 원수를 자처하는 것이다. 나라는 군주만큼 선명한 실체가 아니다.


CA994. 허명행, 〈황야〉(2024)

〈콘크리트 유토피아〉(2023, 엄태화)의 생체 실험 버전? 온 세상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대지진과 그 아비규환 속에서 단 하나의 아파트 건물만 무사하다는 설정. 하지만 이 영화에서 생체 실험은 마동석의 액션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목적에 주로 복무하는 느낌이다. 생체 실험 자체의 존재감을 구현하는 것에는 주안점을 두지 않은 듯. 이런 걸 바둑에서는 보통 ‘패착(敗着)’이라고 하지 않나?


CA995. 리 톨랜드 크리거,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2015)

원제는 ‘The Age of Adaline’일 뿐인데. 여기서 시간은 멈춰진 것이 아니다. 시간은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다. 심지어 아델라인의 신진대사가 멈춘 것도 아니다. 한데도 그녀는 늙지 않고, 거꾸로 더 젊어지지도 않는다. 젊어졌다면 이 이야기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8, 데이비드 핀처) 류의 스토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어느 시점부터 더는 나이 들지 않는 현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또는 시작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이런 계열의 스토리들이 대개 그렇듯 그 과학적인 원리에 대한 설명 따위에 이 영화는 큰 관심이 없다. 남는 의문은 이 현상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것과 이 현상이 빚어낸 결과의 의미에 대한 것이다. 아델라인이 다시 나이 들기 시작한 것은 그 두 가지 의미에 대한 고찰이 끝났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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