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00
CA996. 니키 카로, 〈뮬란〉(2020)
뮬란이 어느 순간 잔 다르크가 되는 것은 남장 여성 영웅으로서 피치 못할 운명인 걸까. 하지만 뮬란은 화형을 당하지 않고 사랑을 얻는다. 무명씨(無名氏)가 ‘지은’ 한시 〈목란사(木蘭詞)〉라는 텍스트와 그 콘텍스트인 〈뮬란〉의 같음과 다름. ‘목란(木蘭)’과 ‘무란’ 또는 ‘뮬란’, 그리고 유역비―.
CA997. 더그 라이먼, 〈엣지 오브 투모로우〉(2014)
이 영화의 서사에서 같은 시간대의 같은 경험이 무한히 반복되는 현상에는 뚜렷한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이 달성되기 전에는 이 반복이 멈추지 않는다. 아니, 멈추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톰 크루즈는 에밀리 블런트와 더불어 그렇게 죽기 살기로 애를 쓰는 것이다. 마침내는 이 반복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여겨질 때까지. 문제의 해결은 결국 최후의, 최후의, 최후까지 미루어진다. 그러니까 이 ‘최후까지’는 곧 러닝 타임이 다 소진될 때까지다. 이것이 영화의, 영화라는 것의 한계요 기본값이다.
CA998. 신연식, 〈카시오페아〉(2022)
딸이 아버지의 알츠하이머를 바라보는 심경과 아버지가 딸의 알츠하이머를 바라보는 심경의 상동성과 상이성. 그리고 그 걱정하는 지점의 상이성과 상동성. 아버지가 알츠하이머일 경우 딸이 걱정하는 것과 딸이 알츠하이머일 경우 그 아버지가 걱정하는 것. 아버지는 한 가지 걱정을 더 안는다. 그것은 바로 ‘딸의 딸’에 대한 것. 딸에 대한 걱정과 딸의 딸에 대한 걱정. 딸에 대한 것은 걱정이고, 딸의 딸에 대한 것은 걱정과 동시에 준비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아니, 딸의 딸에 대한 준비까지 해야 한다. 또는 해두어야 한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 바쁘다.
CA999. 드니 빌뇌브,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2015)
그들이 하는 일의 본질은 결국 복수다. 그것도 공적 징벌의 성격을 지닌 복수. 여기에 사적 복수와 사적 징벌이 한데 얽혀 있기에 그런 성격의 징벌과 복수에 대한 욕망은 훨씬 더 은밀하고 집요하며 잔인하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그녀 케이트(에밀리 블런트) 말고는 바로 이 사적 징벌과 복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간직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 그들은 공적이건 사적이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어쨌거나’ 이 구별이 중요하다. 복수의 정당성이 아무리 막강해도 이 구별이 중요하다는 전제가 없다면 그 정당성은 오롯이 존중받기 어렵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CA1000. 스테파노 솔리마,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2018)
테마가 바뀌었다. 복수 또는 징벌에서 구원과 보은(報恩)으로. 그 사내 알레한드로(베네치오 델 토로)가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서로 재회한 그 소년에게 마침내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자고 말하는, 또는 제안하는 마지막 순간의 감동은 그것이 구원받은 자의 보은의 행위이기 때문에 빚어진 것이다. 그 순간 알레한드로는 스승의 자리에 올라선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이미 구원자의 자리에 올라서 있던 소년과 그는 동등해졌다. 이 ‘동등’이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