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01
CA1001. 조셉 코신스키, 〈오블리비언〉(2013)
어째서 제목이 Oblivion, 곧 ‘망각’일까. 기억이 복제되지 않으면 진정한 복제가 아니라는 것. 몸의 복제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결국 그를, 그녀를, 그들을 구원한 것은 몸이 아니라, 기억이다. 잊지만 않으면 희망은 있다―.
CA1002. 유하, 〈말죽거리 잔혹사〉(2004)
무게는 ‘말죽거리’가 아니라, ‘잔혹사’에 얹힌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교육이 이루어지는 곳이 아니라, 청춘에 대한 정서적이면서 동시에 육체적인 파괴, 그 잔혹한 ‘폭력의 역사’가 펼쳐지는 장소였다. 지금도 그렇지 않은가. 어쩌면 앞으로도? 이 끔찍함을 어찌 달랠까. 한데도 청춘에는 그걸 이겨낼 힘 또한 있다는 게 기적 같다.
CA1003. 양윤호, 〈바람의 파이터〉(2004)
방학기의 최배달과 고우영의 최배달. 개인적으로 나한테 최배달은 역시 고우영의 최배달이지만, ‘파이터’의 느낌은 아무래도 방학기 쪽이다. 동시대 역도산과 최배달의 다름과 같음. 그 사내들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방법. 투쟁과 적응과 저항과 타협의 용광로.
CA1004. 조던 필, 〈겟 아웃〉(2017)
육체와 정신 또는 두뇌의 부조화가 빚어내는 기괴한 생경함. 생존을 넘어서는 영생에 대한 탐욕이 빚어내는 가족 이기주의의 잔인한 냉혹함. 하지만 그런데도 끝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본디의 자아. 그 자아의 가공할 만한 자기 몸에 대한 소유권 주장의 외침, 절규. Get out!! 이만큼 강렬한 대사를 언제 또 들어봤지?
CA1005. 대런 애러노프스키, 〈더 웨일〉(2022)
허먼 멜빌. 모비 딕. 고래. 백경. 고래한테는 감정이 없다, 어쩌면? 하지만 에이해브 선장은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차라리 노예 상태라고 해야 할 만큼 도저하게. 그래서 그는 고래와 맞서려는 의지를 스스로 꺾지 못한다. 바로 그 고래에 대한 소설의 묘사가 몇 페이지에 걸쳐 계속되는 동안 그걸 읽으면서 슬픈 감정에 사로잡히는 딸과 그 딸의 죽어가는―He is dying―게이 아버지. 그 아버지는 딸의 생각과는 달리 그 딸을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아니, 못한다. 이 마음, 이 진심이 딸한테 마침내 감전되듯 전달되는 마지막 장면의 기립과 공중 부양의 초현실적인 감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