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07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07

by 김정수

CA1031. 테오 앙겔로풀로스, 〈율리시즈의 시선〉(1995)

‘최초의 시선’을 찾으려는 영화감독의 여행은 전쟁의 포화 속에 신음하고 있는 사라예보의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그곳에는 안개가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들 만큼 빽빽하게 시선을 차단하고, 그 저편에서는 살육이 자행된다. 그러나 시체를 부둥켜안고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감독의 절규는 안개의 두께를 뚫고 나가기에는 역부족이다. 결국 감독은 최초의 시선을 찾는 데 실패한다. 영화가 남기는 것은 그 실패를 통하여 ‘어쩌면’ 최초의 시선이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를 어떤 순수함으로 사라예보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전언이다. 그것이야말로 감독의 몫이자 나아가 영화의 몫이 아닐까. 〈언더그라운드〉(1995, 에밀 쿠스트리차)가 축제였다면 〈율리시즈의 시선〉은 명상이다.


CA1032. 베리 소넨필드, 〈맨 인 블랙〉(1997)

모든 것을 단순한 코미디로, 또는 농담으로 만들려는 줄기찬 노력이 온갖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문자 그대로 ‘우습게’ 만든 서사. 이 영화의 세계관대로 지구가, 또는 인류가 이런 식으로 관리를 받고 있는 곳이라면, 또는 존재라면 우리는 아마도 거대한 환영의 포로나 노예 신세라는 뜻이 되고 만다.


CA1033. 바즈 루어만, 〈로미오와 줄리엣〉(1996)

서로 대립 관계에 있는 집안 대 집안의 갈등과 알력이 그 집안 구성원끼리의 사랑을 규제할 수 있다는 발상의 밑바닥에 놓여 있는 이데올로기의 정체는? 어쩌면 셰익스피어의 모든 희곡들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이 가장 정치적인 텍스트인지도 모른다.


CA1034. 밀로스 포먼, 〈래리 플린트〉(1996)

‘나 같은 속물이 보호받는다면 모두가 보호받는 것’이라는 래리 플린트의 전언은 단순히 수정 헌법 제1조에 대한 환기이기를 넘어서 모든 나라의 모든 양태의 ‘검열’에 대한 지적일 것이다. 바로 그 준엄한 지적을 위해서 래리 플린트라는 ‘문제적’ 인물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였다고 해석해야 하지 않을까.


CA1035. (최윤진), 〈소주전쟁〉(2025)

현실에서 소재를 취하였다는 이유로, 극영화는 어차피 허구일진대, 굳이 현실 상황이라는 한계 안에 서사를 가두어둘 필요가 있을까. 이것이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 턱없이 짧다는 느낌이 드는 까닭이다. 서사가 3분의 2 정도 지점에서 멈춘 느낌. 조금 더 나아갔어야. 적어도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서사의 완결이라고 하기는 어려운 느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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