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10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10

by 김정수

CA1046. 팀 버튼, 〈에드 우드〉(1994)

‘남의 꿈을 만들기 위해 인생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이 원칙에 충실하다면 영화 만들기는 오로지 즐거움, 그것뿐일 것이다. 그래서 에드 우드는 끊임없이 ‘Perfect!’라고 외친다. 완전한 삶을 위한 완전한 영화에 대한 찬가. 세상의 모든 제작자는 이 무모한 감독 앞에 깊이 머리 숙여야 하지 않을까.


CA1047. 김성수, 〈비트〉(1997)

이 영화의 강점은 등장인물들이 조직 폭력의 세계로 빠져들어 결국 파멸에 이르는 사정의 배경에 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그 기원에 대한 고찰이 허위가 아니라는 것. 하지만 왜 하필이면 조직 폭력일까. 아니, 어째서 하필이면 조직 폭력이어야 하는 걸까.


CA1048. 스티븐 스필버그, 〈쥬라기 공원 2: 잃어버린 세계〉(1997)

테마파크스러운 상상력에 이토록 집요하게 매달리는 뻔뻔스러움이나, 거기에 끊임없이 현혹당하는 관객의 무신경이나, 따지고 보면 피장파장이 아닌지. 그러니까 이는 서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그렇다면 괜찮은 것 아닌가.


CA1049. 제라르 우리, 〈지붕 위의 병사들〉(1995)

도주하는 영국군 트럭을 오토바이로 뒤쫓던 독일군 병사가 도로의 중앙선 표시를 ‘충실히’ 따라가는 데 정신이 팔려 그만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마는 장면은 민족성에 대한 통찰을 기하학적으로 영상화한 대목으로,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지적이다.


CA1050. 제리 브룩하이머, 〈콘 에어〉(1997)

억세게 재수 없는 사나이 니콜라스 케이지가 ‘레미제라블’이 되지 않은 까닭은? 성격파 배우들이 동원되었다는 이유로 감독한테 심각한 주제의 영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처사가 아닐는지. 할리우드에서 영화는 예술이기에 앞서 상품이고, 상품이기에 앞서 담합이기도 하므로. 생산자와 판매자와 구매자, 이 3자의 담합. 아니, 논평자까지 끼어든 4자 담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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