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15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15

by 김정수

CA1071. 이창동, 〈초록 물고기〉(1997)

장현수의 〈게임의 법칙〉(1994)과 마찬가지로 이 영화는 조직화된 폭력을 통하여 우리 사회의 불온성, 그 파멸의 메커니즘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 명백히 ‘사회에의 위협’이다. 그래서 리얼리즘이 아닐까.

CA1072. 대니 보일, 〈트레인스포팅〉(1996)

누구의 것이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모자이크 한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은 무수히 나열되는 그 일상의 물결 속에서 어느덧 전망을 제시할 여유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도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라는 기본값의 물음을 피해 갈 도리는 없겠지만.


CA1073. 알란 파커, 〈에비타〉(1996)

뮤지컬을 영화로 옮길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그림을 어떻게 음악(소리)의 ‘위력’과 조화롭게 얽어놓을 것인가가 아닐까. 이 점에서 알란 파커는 상당히 승산 있는 게임을 해낸 셈이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마돈나!―. 역대 최고 수준의 에바 페론이 나왔다.


CA1074. 스코트 힉스, 〈샤인〉(1996)

데이비드 헬프갓(제프리 러쉬)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3번 D단조를 완주해 낸 뒤 고사한 거목처럼 무대 위에 쓰러진 것은 그가 자의에서든 타의에서든 예술을 물신화한 데 대한 형벌인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그를 왕립음악학교에 입학시키지 않으려 한 아버지의 태도는, 설사 독일 나치에 가족 해체를 경험한 유대인의 강박관념 탓을 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지 않을까. 정말 아버지에게 소중했던 것은 대중적 스포트라이트에 물들지 않은 예술의 순수성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니까. 이런 의미에서 데이비드 헬프갓의 아버지야말로 진정한 예술가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CA1075. 프랑수아 트뤼포, 〈쥘과 짐〉(1962)

영화 만들기를 즐긴다는 것이 어떤 성격의 행위인가를 보여주는 서사. 그들은 등장인물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배우다. 자신이 배우임을 관객에게 끊임없이 인지시켜 주는 연기. 그러니 그들을 쫓아다니는 카메라의 뒤에는 ‘어쨌거나’ 감독이 버티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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