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17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17

by 김정수

CA1081. 앙투안 블로시에, 〈K.O.〉(2025)

실제 격투기 선수를 캐스팅했다는 사실보다는 그가 이야기 속에서 실제 격투기 선수라는 사실이 그 뒤로 벌어지는 액션들의 리얼리티를, 또는 그 액션들의 실체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 주는 가장 중요한 근거다. 이것이 이 영화의 제일 큰 강점이다.


CA1082.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태양은 외로워(일식, L'Eclisse)〉(1962)

무대 공간 자체가 배우의 심리를 설명해 주고, 동시에 거기에서 주제를 느끼게 하는 기묘함. 그래서 이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는 한낱 사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다. 아니, 배우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끊임없이 주변 사물과 교감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배우가 사라진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주인공이 주변 환경 그 자체임을 암시한다.


CA1083. 배리 레빈슨, 〈슬리퍼스〉(1996)

캐스팅이 화려한 영화는 왜 하나같이 이야기 구조가 취약할까. 왜냐하면, 이야기 구조가 중요하지 않으니까. 이야기 구조가 튼실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대차대조표는 엄정하다는 것.


CA1084. 라스 폰 트리에, 〈브레이킹 더 웨이브〉(1996)

착하다 못해 바보스러운 사람에게 사랑은 분별보다는 맹목을 강제하는 묘약이 아닐까. 그래서 베스(에밀리 와트슨)는 죽어가는 남편을 위해 구토와 치욕을 견디며 낯선 남자에게 몸을 던진다. 심지어 어머니조차도 베스를 저주하지만, 신(神)은 남편을 살리는 기적으로 이 맹목적인 사랑의 분출에 보답한다. 작은 시골 마을의 보수적이고 완고한 도덕률의 늪지대를 오직 사랑 하나만으로 돌파해 나가는 한 순박한 여인의 삶은 그 앳된 얼굴에 피어오르는 천진한 미소만큼이나 강렬한 광채를 발한다. 여기에, 그림 같은 자연 풍광의 미묘한 빛의 변화를 절묘하게 포착해 낸 마법 같은 로비 뮐러의 촬영―.


CA1085. 리차드 론크레인, 〈리차드 3세〉(1995)

비틀린 욕망을 구현하려는 한 편집광의 성공과 실패담. 권력의 속성을 나치즘의 광기라는 렌즈로 들여다보려는 감독의 시도는 어쩌면 셰익스피어와의 정면 대결을 피해 가는 지혜로운 요령이 아닐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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