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18
CA1086. 웨스 크레이븐, 〈뉴 나이트메어〉(1995)
악몽의 명세서에 끝이 있던가. 현실과 꿈의 경계를 지우는 작업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이 악몽 같은 현실과 꿈의 혼합체를 다시 현실 속으로 끌어낸다면? 그리고 그 끌어냄의 과정 자체를 영화로 옮겨 놓는다면 그 결과는? 그러나 이 영화는 현실과 꿈을 구분하는 행위 자체를 명상한다. 한데, 이 악몽의 끝에 헨젤과 그레텔이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악몽 퇴치 → 프레디 축출 → 마녀 죽이기 → 꿈에서 깨어나기 → 마지막으로 깨어난 곳에서 그 꿈을 성찰하기. 악몽의 명세서를 마감하려는 감독의 의도와는 달리 이 사이클은 아직도 완전히 끝나기에는 이르다는 선언.
CA1087. 세르지오 레오네, 〈석양의 갱들(A Fistfull Of Dinamite)〉(1971)
서부영화의 코드로 자본주의 비판하기. 혁명가가 숫제 다이너마이트 덩어리라면? 그게 그의 정체성이라면? 아, 설마!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이 영화의 유머다.
CA1088. 자코 반 도르마엘, 〈제8요일〉(1996)
그와, 또는 그렇듯 ‘무구한’ 사람과 함께가 아니라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없다는, 어쩌면 매우 냉정하고도 비극적인 경고. 그렇다면 행복은 인간을 위한, 또는 인생을 위한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CA1089. 안토니아 버드, 〈프리스트〉(1994)
애초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게 생겨 먹은 연결 부위들을 ‘패기로’ 이음새가 보이지 않게 절묘히 봉합해 낸 서사. 하면, 신인 감독에게는 언제나 재능보다는 패기가 더 필요하다는 뜻일까.
CA1090. 토니 스코트, 〈더 팬〉(1996)
어떤 분야에서든 ‘스타’가 ‘팬’의 존재와 가치에 대하여 온전히 인식하기도 전에 스타가 되어버린 경우, 그 스타에게 팬이란 무엇일까. 스타에게 무시를 당한, 또는 자기 존재가치를 부정당하거나, 오해를 받은 팬은 자칫 섭섭함과 아집과 광기가 뒤범벅이 된 편집광이 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팬이 편집광이 되는 사태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물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국면도 이미 지금(2026년)으로부터 한 세대(30년) 전의 것이다. 지금의 자리에서 보면, 스타보다는 팬의 성격이 조금 더 많이 변하지 않았나 싶은 느낌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