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19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19

by 김정수

CA1091. 이충현, 〈발레리나〉(2023)

이건 복수라기보다는 응징이요 단죄요 심판이다. 이 영화의 제목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친구의 꿈인 ‘발레리나’인 까닭은? 이 제목은 이 영화 속 복수자요 응징자요 심판자인 전종서의 그 모든 합목적적인 행위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꿈이란 그렇게 중요한 것이다. 결코 모독해서는 안 될 만큼. 꿈을 모독하는 자, 응징을 당할지어다―.


CA1092. 김창훈, 〈화란〉(2023)

〈똥파리〉(2009, 양익준)의 기시감. 상훈(양익준)과 연규(홍사빈), 이 둘 사이의 차이라면 한쪽이 적극적인 위악(僞惡)의 성인(成人) 주체인 반면, 다른 한쪽은 차마 위악을 체현하지 못하는 미성년(未成年) 주체라는 점이다. 위악스럽지 못하기에, 또는 위악을 거부하기에 연규는 그 모든 지옥도 속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상훈과 다른 길을 간다. 무엇보다도 연규에게는 치건(송중기)이라는 길잡이가 있다는 점. 그리고 두 영화를 내적으로 잇고 있는 구실을 하는 정만식의 존재. 한데, 어째서 그 아이들은 치건에게 “당신은 아무개가 불쌍하지도 않느냐?”라고 따져 묻는 걸까. 자신이 누군가를 불쌍하게 여긴다면, 다른 사람도 그 누군가를 당연히 불쌍하게 여기리라는 이 당연한 마음의 사태를 정말 모르는 걸까. 역시나, 그 또한 자기 의(義)라는, 철없는 오만에 빠져 있는 탓일까.


CA1093. 토니 빌, 〈5번가의 비명〉(1987)

치솟아 오르는 분수의 줄기가 인물의 심리상태를 시각적으로 설명해 주는 장면의 미장센만으로도―.


CA1094. 끌로드 소떼, 〈어떤 이혼녀〉(1978)

이미 동거녀가 있는 전남편과 관계하여 아이를 갖지만, 그 아이의 장래에 관하여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그저 자유롭게 살아갈 궁리만 하는 여인의 이야기는, 여지없이, 도저한 여성해방론으로 읽히고야 만다.


CA1095. 마이크 리, 〈비밀과 거짓말〉(1996)

중요한 것은 진실 자체가 아니라, 진실과 맞부딪칠 용기다. 그래서 직업적으로 ‘본다’는 행위에 익숙한 검안사 딸과 사진사 남동생만이 백인 엄마에 흑인 딸이라는 언어도단의 상황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마주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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