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24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24

by 김정수

CA1116. 시드니 폴락, 〈사브리나〉(1954)

세상에 어떤 재벌 2세가 10억 달러짜리 합병 건을 망치면서까지 사랑을 택하겠으며, 세상에 10억 달러짜리 합병 건을 주무를 만한 능력을 지닌 재벌이 어째서 사랑을 놓치겠는가. 이 ‘가진 자’는 결국 두 가지 모두를 성취한다. 실은 이런 게 리얼리티가 아닐까. 인정하기는 싫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CA1117. 프랑수아 트뤼포, 〈신나는 일요일〉(1983)

히치콕의 영화가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사이를 오간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 영화의 경우는 심리학 쪽에 조금 더 기울어 있다는 느낌. 한데, 프랑스 배우들의 액션과 대사는 왜 할리우드 배우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느껴지는 걸까. 그들은 모든 국면에서 몹시 성미 급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영화 속에 그려지는 그들의 잔인함이 더 끔찍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은 것을 그래서일까. 하긴, 신이 유럽에서 가장 비옥한 땅을 프랑스에 허락한 대가로 그들의 민족성을 잔인하게 만들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니까.


CA1118. 마이클 만, 〈히트〉(1995)

로버트 드 니로와 알 파치노는 갱과 경찰이라는 신분상의 차이를 넘어서 기묘한 우정, 또는 연대의 관계를 이룬다. 가족과 결혼생활의 평안함으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외면을 당한 사나이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친구가 될 수 있다? 또는, 동지애를 기반으로 어울릴 수 있다? 〈첩혈쌍웅〉(1989)의 오우삼이라면 이 영화를 어떻게 찍었을까.


CA1119. 스탠리 크레이머, 〈뉘른베르크의 재판〉(1961)

죄의 정체를 명확히 규정하지 않으면 그에 걸맞은 형량을 결정할 수 없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들을 재판하는 자리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주 골치 아픈 문제였다. 그래서인가, 영화의 후반부로 갈수록 초점은 형량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정말 죄인인가 하는 문제에 맞추어진다. 마지막 평결에서 판사가 그들을 죄인으로 규정하고 종신형을 선고하는 것은 그래서 어쩐지 석연찮은 뒷맛을 남긴다. 그들이 명백한 죄인이라면 그에 걸맞은 형량을 선고하는 자의 마음도 떳떳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판사의 표정에는 짙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정신박약의 증인을 연기하는 몽고메리 클리프트의 잊을 수 없는 아우라―.


CA1120. 롤랜드 에머리히, 〈인디펜던스 데이〉(1996)

〈스타워즈〉와 〈탑건〉의 공중전, 〈인디아나 존스〉의 부자 관계, 〈에일리언〉의 외계인(또는 외계 괴물) 콘셉트, 그리고 구식 SFX―. 모든 것이 사기지만, 국방장관이 국가안보에 관련하여 중대한 사기를 쳤는데도 대통령은 하등 무관하다는 설정이야말로 관객을 향한 가장 큰 사기가 아닐까. 하기야, 영화야말로 그 기본값이 시청각적인 ‘사기’ 아니던가. 그 사기를 우리 모두가 좋아한다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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