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Cinema Aphorism_223

-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23

by 김정수

CA1111. 김희진, 〈로기완〉(2024)

이국(異國)에서 난민 정착금을 지원받기 위한 목적으로 탈북민을 가장한 조선족으로 의심받는 사태의 본질은? 2차 인터뷰 때까지 어떻게 지내야 하느냐는 그(송중기)의 질문에 통역은 잘 버텨야 한다고 답한다. 이건 답이 아니다. 알선도, 충고도, 조언도, 격려도, 훈계도 아니다. 그냥 방치다. 피 묻는, 또는 피 묻은 돈. 血(혈), blood. 은유가 아닌 실제의. 은행을 기반으로 하지 못하고, 돈의 촉감, 그 즉물성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처지라는 것. 노숙과 쓰레기통 뒤지기. 여기서 ‘거지’라는 ‘신분’이 생긴다. 하지만 로기완은 마침내 거지가 되지는 않는다. 그는 끝내 빌어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도둑이 되지도 않는다. 그는 빈 병을 모으고, 쓰레기를 줍는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올곧은 의지가 그를 최악의 처지에서도 인간임을 포기하지 못하게 한다. 좋은 땅에서 네 이름 갖고 떳떳하게 살라는 어머니의 유언. 그 어머니의 시신을 병원에 판 돈이 아들인 그에게 갖는 의미. 겨울에 누군가가 죽으면 겨울이 더 춥다―. 그렇다면 여름에 누군가가 죽으면 그 여름은 더 덥나?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는, 그림자도 없는 유령. 새벽에 열리는 ‘줍기’ 장(場). 산 게 아니라, 주운 것. 큰 일 앞두고 덕을 쌓기 위해서 남을 돕는다는 것. 그 행위의 바탕에 깔려 있는 마음의 정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하기 위한 투쟁이라는 것. 그 투쟁의 지난함이라는 것.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증명. 네가 너라는 걸 증명해 봐―. 손목 옷소매에 자살용 면도칼을 숨겨 지니고 사는 사람의 비극적인 결기. 행복 추구권은 기본 인권인데, 행복을 추구할 자격이 없다며 자조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는 것. 옷차림이 소란스럽다는 표현의 소란스러움. 이 영화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 아버지와 그 딸이다. 그 아버지는 어째서 자기 딸의 삶에 대해서 그토록 모르고 있는 걸까. 그 땅에 머무를 권리와 그 땅을 떠날 권리. 이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오로지 기억만이 나만의 온전한 소유라는 것. 그것 말고는 이 세상에 온전한 내 것이란 없다. 로기완, 또는 노기완. 안락사를 찬성한, 또는 동조하거나 방조한 자의 죄책감이라는 것. 이 죄책감과 관련하여, 딸을 위한 그 어머니의 선택. 모래밭에 성을 쌓아 올리는 기분은? 그런 기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땅에 살 권리와 그 땅을 떠날 권리의 사이. 이 권리가 능력으로 바뀌는 순간 진정한 자유가 생기는 것 아닐까. 거기까지 가야 한다. 한데, 그가, 또는 그들이 남한을 고려하지 않은 이유는?


CA1112. 잉그마르 베르히만, 〈페르소나〉(1966)

어쩌면 영화는 현실의 반영이 아닌지도 모른다.


CA1113. 할 셀웬, 〈데니스는 통화 중〉(1995)

전화는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라기보다는 그걸 단절시키는 데 더 유용한 도구임을 보여주는 영화. 알바레즈는 이미 《20세기의 지적 모험》에서 전화가 지닌 이런 성격의 무도함을 지적하지 않았던가.


CA1114. 알리슨 앤더스·쿠엔틴 타란티노·로버트 로드리게즈·알렉산더 록웰, 〈포 룸〉(1995)

관객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철저히 감독을 위한 영화. 그들은 스스로 영화 만들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을 뿐, 관객은 안중에 없다. 어쩌면 이게 가장 솔직한 태도가 아닐까. 하지만 흔히 남의 흥겨움은 곧 내 귀찮음이기도 하듯이, 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마음은 적어도 얼마간의 짜증스러움을 면치 못한다.


CA1115. 유잔 팔시, 〈백색의 계절(A Dry White Season)〉(1989)

이 영화가 충격적인 것은 인종차별에 항거하기 위해서는 때로 가족의 분열조차 감수해야 한다는 전언을 노골적으로 들이대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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