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34
CA1166. 시드니 루멧, 〈에쿠우스〉(1977)
리처드 버튼의 다이사트 의사. 피터 쉐퍼의 원작 희곡. 연극의 영화화가 실패하기 십상인 이유는 공간의 제한성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는 탓이다. 최소한 ‘연극적인’ 영화라는 불명예스러운 명칭을 원죄처럼 짊어져야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감독이 처음부터 그런 한계를 인정하고 착수함으로써 성공한 드문 경우다. 무엇보다도 공간의 협소함과 소품들이 등장인물 각각의 심리를 설명해 주는 아주 실용적인 수단의 구실을 한다. 이 계열의 앞자리에 당당히 놓이는 최근의 사례가 바로 저 초고도 비만의 브렌든 프레이저에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사무엘 D. 헌터 원작 희곡의 〈더 웨일〉(2022, 대런 애러노프스키)이다.
CA1167. 보 비더베르그, 〈엘비라 마디간〉(1967)
일하지 않는 자는 먹을 수 없다는, 마땅하면서도 잔혹한, 아니, 마땅하기에 더욱 잔혹한 윤리가 지배하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란 어쩌면 가짜인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전언. 마지막 장면이 정지화면이고, 잠시 뒤 그 위로 총성이 울리는 까닭은 그들의 삶은 총성이 울리기 전에 이미 끝난 것이기 때문이다.
CA1168. 끌로드 를루슈, 〈20세기 레미제라블〉(1995)
모든 인간의 파란만장한 삶은 ‘레미제라블’이다. 이것이 원작 자체에 대한 재해석이든, 원작 속 시공간적 배경에 대한 재해석이든,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곧, 장발장에 대한 재해석이든, 당시 프랑스 파리에 대한 재해석이든. 이 ‘불변’이 놀랍다. 명실상부, 원작의 힘이다.
CA1169. 미클로쉬 얀초, 〈붉은 시편〉(1972)
카메라로 시(詩)를 쓰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실험해 본 영화. 이 경우 롱테이크는 분명 훌륭한 시적 기교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니까 얀초는 이 기교로 영상시를 써낸 셈이다.
CA1170. 샘 페킨파, 〈킬러(The Killer Elite)〉(1975)
〈대부〉(1972,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직후의 제임스 칸과 로버트 듀발―. 폭력 장면을 느린 화면으로 보여주기, 거의 현기증을 불러일으키는 교차편집, 황량하고 살벌한 화면의 색조, 절제 없이 내뱉어지는 짧은 허드레 대사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현란한 기교들은 무게 있는 주제의 뒷받침을 넉넉히 받지는 못하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