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45
CA1221. 나현, 〈야차〉(2022)
옳은, 또는 정의로운 일을 하기 위해서 법과 절차와 규칙과 규범과 관행을 어기는 일이 정당화되는 식의 서사가 영화 속에서 만연한 까닭은? 야차(설경구)가 활약하고 있는 곳(중국)에 ‘대한민국 검사’(박해수)를 파견한 서사적인 까닭은 바로 이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CA1222. 장성호, 〈킹 오브 킹스〉(2025)
어쩐지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떻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줄 것인가를 고민하는 내용이라는 느낌이 앞선다. 동화라고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어른이 좋아하는 동화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가 따로 있는 법이듯이. 흔히 어른이 좋아하는, 그러니까 어른의 생각에 아이들이 읽으면 좋으리라고, 또는 유익하리라고 생각하는 동화를 아이들이 좋아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으니까.
CA1223. 프랑수아 트뤼포, 〈피아니스트를 쏴라〉(1960)
기존 영화의 관습을 배반함으로써 관객에게 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 이 경우 이 쾌감조차도 비관습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것.
CA1224. 프랭크 카프라, 〈멋진 인생〉(1946)
이것이 동화이며 허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바로 그 까닭으로 감동하는 것은 위선인가 위악인가. 아니면, 자기기만인가.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들은 관객이 바로 이 감동의 정체에 대하여 스스로 질문하게 만든다.
CA1225. 알란 파커, 〈커미트먼트〉(1991)
이 대사. “아일랜드인은 영국의 흑인, 더블린 사람은 아일랜드의 흑인, 북더블린 사람은 더블린의 흑인이야.” 음악으로 성공하려는 북더블린 젊은이들의 실패담은 전혀 비극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에누리 없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일상이 된 비극은, 그것이 설사 본디 비극의 정체성을 지닌 것이라 할지라도, 결코 비극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 기이함. 감독이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 일상, 또는 그 일상성의 무서움이 아닐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