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만의 영화 잡설(雜說)_267
CA1331. 연상호, 〈얼굴〉(2025)
임동환(박정민)은 마지막 순간 자기 어머니 정영희(신현빈)의 얼굴 사진을 보고 왜 오열했을까. 그녀는 괴물도 아니고, 못생기지도 않았고, 다만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당했을 뿐이다. 그의 아버지 임영규(권해효, 박정민) 또한 시각장애인으로서 뭇사람에게 평생토록 당했던 것처럼. 거의 아무것도 바로잡거나 정리하지 않은 채로 그 아들의 마지막 오열을 향해서 줄기차게 달려가는 서사의 무지막지한 힘과 기세―.
CA1332. 시드니 루멧, 〈(폴 뉴먼의) 심판(The Verdict)〉(1982)
전락하던 변호사 프랭크 갤빈(폴 뉴먼)이 본래의 자기를 되찾는 것은 “Do the right thing!”이라는 한마디를 들은 탓이다. 그는 옳은 일을 해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 얼마나 다행인가.
CA1333. 리들리 스콧, 〈1492 콜럼버스〉(1992)
아메리카에 대한 반성적 고찰을 감행하는 이 영화의 화두는 두 가지다. 하나는 “신대륙은 엉망이지요”라는 이사벨라 여왕(시고니 위버)의 말에 대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제라르 드파르디외)의 “구대륙은 완전합니까?”라는, 반문을 겸한 대답. 또 하나는 유럽의 문명을 이룩한 것은 자기처럼 꿈을 실현코자 하는 사람들 덕분이라는 콜럼버스의 외침.
CA1334. 웨스 크레이븐, 〈공포의 계단〉(1991)
공포를 즐기기에는 지나치게 퍼즐이 많은 영화. 그 퍼즐을 풀기 위해 관객이 두뇌를 쓰기 시작하면, 곧 이성이 활동을 시작하면 관객의 가슴에서 공포는 사라지게 마련이다. 이 함정을 어떻게 요령껏 피할 수 있느냐에 서사의 성패가 달려 있다.
CA1335. 아벨 페라라, 〈스네이크 아이〉(1998)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다 같이 고통스럽게 만드는 영화, 또는 아벨 페라라의 영화. 이 두 가지 명제가 ‘거의’ 동의어인 매우 드문 경우. 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하여 그들은 마약 대신 불륜에 빠져든다. 물론 그런다고 지워질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