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안사변

by sj

오늘은 12.12 사태 45주년 되는 날인데, 중국 현대사에서도 (한국의 12.12 이상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날이다.


1938년 당시 중국 국민당 정권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보다 공산당 토벌이 더 시급한 과제라고 보고 여기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바로 1938년 오늘 동북 군벌이었던 장학량(張學良)이 국민당 정권의 장개석을 서안 화청지(양귀비가 목욕했다는 그 온천)에서 감금을 하고 공산당과의 내전 중지 및 대일 항전을 요구하였고 장개석이 이를 받아 들여 제2차 국공합작이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모택동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은 한 숨을 돌릴 수 있었고 힘을 비축하여 결국 국공내전에서 승리하여 중국대륙의 패자(覇者)가 될 수 있었던 계기가 바로 서안사건이었다. 반면 장개석의 국민당은 대만으로 쫒겨가 (대만식 표현으로 國府遷臺=국부천대=나라의 수도가 대만으로 옮겨갔다는 뜻. 중국에서는 쓰면 안 되는 표현) 타이베이를 임시수도로 하는 중화민국 정권이 대만에 세워져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국 공산화, 양안 분단 및 대만내 본성인/외성인 문제 등이 모두 1938년 12월 12일의 서안사건에서 시작되었으니 그 의미가 실로 크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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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으로 서안사건의 주역인 장학량은, 동북(만주) 군벌이었던 아버지 장작림이 만주에 주둔 중이던 일본 관동군에 의해 폭사하여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동북 군벌이 된 훈남(?)이었는데 (장개석의 세번째이자 마지막 부인이면서, 중국 국부 손문(孫文)의 부인, 송경령(宋慶齡)의 동생 되는) 송미령(宋美齡)이 장개석과 결혼하기 전, 미혼의 연상녀 송미령과 썸을 타기도 했고, 서안사건의 뒤끝이 남아 있던 장개석이 대만으로 쫒겨 올 때 장학량도 같이 끌고 와서 가택연금을 시켰다. 1949년에 대만으로 끌려와서 가택연금을 시작했는데 1975년 장개석이 죽을 때까지도 풀어주지 않았고 40년이 넘는 가택연금 끝에 1993년에야 풀려나 1995년 미국으로 이주, 그곳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2001년에 하와이에서 103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한편 미혼 시절 장학량의 썸녀(대만 이주 후에도 가택연금 중이던 장학량을 지속적으로 보살펴 줌)이자 장개석의 부인이자 손문의 처제였던 송미령은 장학량의 죽음 소식을 전해 듣고도 몇 년을 더 살다가 2003년 향년 107세의 나이로 뉴욕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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