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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yaya May 31. 2016

제스처와 코스몰로지

<무카이 슈타로, 세계 프로세스로서의 제스처 展 관람기>

세계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인류가 답해야 했던, 그리고 답해야 하는 최후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종교, 예술, 철학, 그리고 자연과학은 이 질문에 각자의 답을 제출했고, 우리는 자연과학의 손을 들어준 세계 인식 속에서 살고 있다. 덕분에 종교와 철학, 그리고 예술은 19세기 이후 자연과학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그 역이 성립한 역사는 전무하다.


물리학의 표준모델과 양자역학은 코스몰로지, 즉 우주의 기원과 구조를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모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 영역은 수학의 영역으로, 철학은 프레게의 개념기호법과 화이트헤드,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을 거쳐 논리학으로의 전환을 모색했다. 고대 그리스의 사색과는 거리가 꽤 멀어진 셈이다. 혹은, 진리의 영역으로 다가간다는 점에서는 플라톤으로 회귀한다고 말해야 할지도. 비트겐슈타인은 예언자적 말투의 문장으로 자신의 책 <논리철학 논고>를 마무리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예술은 그 나름대로 과학의 성취와 이념에 발맞춰 협조하기도 하고, 다소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개념을 제시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발생한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은 "형식은 언제나 기능을 따른다."라는 모더니즘의 슬로건을 탄생시켰다. 반면 1913년 아모리 쇼에서는 구세계의 가장 급진적인 그림들이 전시되었고, 현대 미술의 도화선을 당겼다.




무카이 슈타로의 세계인식

'앞前'- 과거와 미래의 이항대립

무카이 슈타로는 디자인학을 연구한 교수로서, 세계를 디자인의 관점으로 설명하고자 노력한다. 그의 세계인식은 신화적이면서도 분석적인 요소가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슈타로는 전람회 전체 테마를 '오늘은 내일'에 대한 해석으로 규정한다. 그는 '앞(前)'이라는 단어의 이중성'을 언급한다.

'앞前'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앞'에 펼쳐지는 미래를 나타내기도 한다.
'앞前'은 또한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과거를 의미하기도 한다.


어릴 적 영어단어를 외울 때가 문득 기억났다. 'Leave'라는 단어는 잠시간 나를 괴롭혔다. 떠나는 행위와 남기는 행위가 한 단어 속에서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하지만 떠난다는 행위는 무엇인가를 남겨두고 가는 것이 아니던가. 그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내면의 투쟁은 잦아들었다.

vt. Leave
1. 떠나다.
2. 남기다.


작가 Pascal Mercier는 '과거-미래', '떠남-남김'의 이중성을 진작에 포착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아주 우아한 문체로 이러한 대립을 묘사했다.


It had been early afternoon on a rainy day, with a light in which time seemed to stand still and yet had no present, or only a dead present.
<Permann's Silence>
우리는 시간상으로만 광범위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공간적으로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훨씬 넘어서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장소를 떠나면서 우리의 일부분을 남긴다. 떠나더라도 우리는 그곳에 남는 것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이러한 이항대립은 슈타로의 세계인식에서 반복된다. 그는 '과거와 미래'로 대표되는 앞前의 관점으로, 신체의 '안과 밖'에서 드러나는 세계를 이해한다. 세계는 다시 거시-미시로 대표되는 'Macro Cosmology와 Micro Cosmology'로 구분되며, 이 세계는 '질서와 무질서'가 혼재한다. 그는 자신의 인식을 개념화하기 위해 연속적이고 강박적인 이항대립을 설정한 것이다.

과거 - 미래
안 - 밖
주체 - 객체
미시 - 거시
질서 - 무질서


전시장 내부. 덧신을 착용하고 관람. / © 두성종이




세계 프로세스로서의 제스처

Gesture-miburi-as World Process

이러한 대립적 세계를 생성하는 것은 무엇인가? 슈타로는 그것이 바로 gesture라고 생각하며, 세계를 생성하는 gesture를 인식하는 것이 그의 디자인 철학이자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는 miburi(gesture의 일본어)라는 단어를 해체하여 의미를 부여한다.

miburi(gesture)의 다층적 의미
-  furi : 돌아보다
- 자기 언급적 반성 프로세스가 내재
- 자기성찰을 통해 끊임없이 거듭남
- 재생의 생명과정을 포용

따라서 무카이 슈타로는, 제스처가 인간과 동물의 행동뿐 아니라 자연과 세계의 생성 리듬을 포괄하며 조화, 순환, 율동의 개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여기까지 와서야 나는 전시회의 작품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그가 열광적으로 수집한 제스처들을 분류한 것에 다름없다.




제스처를 이용한 세계인식의 방법론

전시회는 두 가지 테마로 구성되어 있다.

a. 세계를 생성하는 원상으로서의 제스처
b. 미크로코스모스 - '손'의 세계를 생성하는 제스처

작품들은 각 주제를 다양한 제스처의 양상으로 보여준다. 수직적으로는 과거-미래를 가로지르고, 수평적으로는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을 모두 관통하려는 노력이 있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읽은 것일까. 그는 하나의 주제 안에서 신화와 과학, 문학과 논리학, 기호학을 주물럭거린다. 일관된 주제는 질서를 부여하지만, 그 안의 구성물은 무질서의 향연이다. 이항대립과 순환은 끊임없이 그의 수집물에서 나타난다. 데리다의 차연(différance)이 연상된다. 그러한 순환과 반복이야말로 슈타로가 말하고자 하는 gesture가 아닐까.





관람기간: 2016.5.16~6.30

관람시간: 평일 10:00~18:00, 토요일 11:00~17:00

*일요일, 공휴일(6.6) 휴관

장소: 인더페이퍼 갤러리 (서울시 서초구 사임당로23길 41)

https://www.facebook.com/doosungpaper/posts/1110680722327600


* 콘크리트 포에트리도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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