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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스톤 Apr 20. 2024

하늘이 빙글빙글, 픽 쓰러졌다

몸은 마음과 다르더라

119를 불렀다.


울산 모 문화센터 카페에서 강의를 기다리며

예쁜 문장을 필사하고 있는데

갑자기 식은땀이 나고 어지럽기 시작했다.

어? 왜 이러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비틀거리며 카페 밖으로 나와서 복도 소파에 벌렁 누웠다.

눈을 뜰 수도 앉아있을 수도 없었다.

쭉 뻗어있는데 상태가 점점 안 좋아졌다.

어쩔 수 없이 119를 불렀다.

누운 채로 들것에 실려 삐뽀삐뽀 소리를 들으며 근처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이것저것 배운다고 여기저기 너무 많은 곳을 돌아다녔나 보다.

글쓰기, 여행스케치, 통기타, 산행, 걷기, 책 읽기, 영화 보기, 전시회 다니기...


발악하다가 결국 쓰러졌다.


욕심이 과했다.

지구를 떠나기 전에 버킷리스트 다해보겠다고

의욕을 가졌더니 과욕이 부른 참사인가 보다.


CT, MRI 에는 이상 없다고 했다.

이비인후과 검사에도 특이사항 없다고 했다.

청신경 계통에 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된다고 약처방을 해주었다.


입원해서 링거주사 맞고 약 먹고 이틀 푹 쉬었더니 다행히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의사는 무리하지 말라고 한다.

별로 무리한 게 없었는데

기분이 묘했다.


친구가 내게 말했던 게 생각났다.

"아저씨는 매사 뭐에 쫓기듯이 사는 것 같소.

계속 체크하고 걸음도 엄청 빠르고 밥도 후다닥 먹고

누가 잡으러 오는교!"


친구말이 맞다.

퇴직 후에도 직업병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뭘 하나 생각하면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일정을 세우고 체크해 나가는 직업병.

35년 동안 목표에 쫓기며 살았더니 뼛속 깊이 박혀버렸다.


태어나 처음으로 이틀이나 입원 경험을 해보니

건강관리가 더 절실해졌다.

아직 해야  할 버킷리스트가 많이 남아 있어서

다해보려면 백 살까지 건강해야 될 텐데...


이번에 아프면서 느낀 것

- 평온한 일상의 소중함

- 아플 땐 아내밖에 없다

- 조급하게 살지 말자

- 몸은 마음과 다르다


건강에 대한 경고를 받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오늘부터 도달 목표를 반쯤 줄이고 매일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가져야겠다.

회사 다녔을 때보다 더 바쁘게 살고 있으니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닌가 보다.


이틀간 입원을 마치고

병원문을 나서니 푸른 하늘이 두 손 벌려 반갑게

나를 맞이한다.


완연한 봄이다.

좀 천천히 살아야겠다.

공원에 가서 한 바퀴 걸어야겠다.


공원으로 가면서

폰에 기록해 둔

오늘 일과표를 또 본다.


 흑





♡ 총알처럼 달려와 주신

119 대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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