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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타고 욕지도로

by 헤비스톤


따뜻한 바람불었다. 세상의 먼지가 씻겨 하늘이 맑아진 날, 아내와 께 남해안 욕지도로 했다. 20년 전의 추억을 만나고 싶었다. 비물을 챙기며 들뜬 마음은 이미 섬에 도착해 있었다. 아내는 옷장을 열어놓고 고민했다. "이게 나아요, 저게 나아요?" 나는 점수 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당신은 뭘 입어도 봄처녀 같아." 준비 시간은 조금 더 걸렸지만 아내 기분은 두 배 좋아졌다.


통영 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자 바다내음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오전 10시 표를 끊고 유람선 안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 선상에서 심호흡 한번 하고 배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뒤 배경으로 한 장 찍어주세요." 아내의 목소리가 하이톤이었다.

배가 출항하자 우리는 갑판 위로 올라갔다. 바다는 은빛 물결을 일으켰고, 멀리 보이는 섬들이 수채화처럼 다가왔다. 봄 햇살에 반짝이는 물살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바다처럼 잔잔해졌다.

새우깡을 사갔는데 갈매기들이 안보였다. 모두 육지로 수학여행을 떠난 것 같다.

배 후미에 서서 술술 풀려나가는 실타래를 바라보았다. 에 탄 사람들에게도 꼬인 일들이 이렇게 잘 풀어지기를 바랐다.


욕지도에 가까워질수록 섬의 연둣빛은 더 짙어졌고 하늘은 더 푸르렀다. 섬에 도착하자마자 차를 새천년공원 근처 도로변에 주차하고 욕지도 전경을 볼 수 있는 대기봉으로 올라갔다. 물과 스틱을 챙기고 천천히 오르기 시작했다. 조금 오르자 펠리컨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바닷가에 펠리컨 한 마리가 얌전히 누위 있었다.

그때, 리컨이 코앞으로 지나가는 보트를 먹이인 줄 알고 덥석 삼켜 버릴 것 같은 묘한 장면이 펼쳐졌다.


대기봉 정상에 오르자 욕지도 전경이 눈에 확 들어왔다. 발아래에 바다와 섬들이 펼쳐졌고 바람은 목덜미를 시원하게 해 주었다. 크게 심호흡하며 마음속에 있던 근심을 뱉어내었다. 초승달 조형물 옆에서 여러 포즈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눈앞에 흐르는 연두향기 한 움큼 잡아 커피에 타서 아내와 함께 마셨다.


내려와서 제1 출렁다리로 향했다. '욕지고메원' 카페 근처 공터에 주차하고 출렁다리로 내려갔다.

길가에 핀 민들레가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도 인사했다. "잘 지냈지?"

다리를 건너며 왼쪽을 바라보니 경치가 압권이었다. 바닷가 바위 쪽으로 더 나가서 좌측으로 조금 걸어가니 욕지도 최고의 풍경이 나타났다.


제2 출렁다리까지 해안산책로를 걸었다. 봄바람에 살랑이는 들꽃들, 바다 위를 유영하는 작은 배들, 멀리 수평선 위로 흩뿌려진 섬들. 모두가 한 장의 그림이었다.

다리에 도착해서 언덕 위에 있는 '고래강정' 카페로 들어갔다. 음료를 시키고 바닷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화단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7080 팝뮤직이 흘렀다. 잠시 젊은 날의 바다에 풍덩 빠져서 즐겁게 헤엄고 놀았다.


주차 한 곳으로 돌아가서 차를 타고 제3 출렁다리로 갔다. 다리를 건너 해안가 바위 위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 일정은 해안도로 드라이브. 음악을 틀어놓고 저속 운전을 하며 눈과 코와 귀에게 많은 선물을 했다. 이곳저곳에 잠시 주차하고 이쁜 모습을 이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20년 전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섬을 한 바퀴 돌고 나서 선착장 근처에 있는 자부랑개 마을을 둘러보았다. 옛 모습의 건물을 보며 몰랐던 역사를 알 수 있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저녁 먹으러 선착장 근처 횟집으로 갔다. 싱싱한 고등어회와 소주 한 병을 앞에 두고 아내와 마주 앉았다. 소주잔을 부딪치며 우리의 청춘을 자축했다.

해 질 시간이 다가와서 식사를 마치고 일몰 포인트를 찾아 나섰다.

'유동어촌체험 휴양마을'밑 바닷가가 일몰을 보기에 좋은 장소였다. 바닷가에 차를 주차하고 바다에 서서히 몸을 담그는 석양을 바라보았다. 짧은 일몰시간에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태양이

바다 위에

심장을 내려놓고 있다


나는 뛰는 가슴 움켜잡고

바다 위를

달려간다



다음날 오전,

아내와 나는 배낭에 초록향기 가득 담고 육지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2025.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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