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트레킹을 다녀왔다. 장소는 일본 홋카이도의 다이세츠 산(대설산). 27년 동안 산을 올랐지만 이번처럼 가슴이 뛰는 산행은 처음이었다.
영남알프스학교에서 기획한 이번 프로그램에는 총 25명이 함께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 대열에 올랐다.
아침 5시, 호텔 앞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고 이슬 머금은 길을 따라 아사히다케 로프웨이 탑승장으로 향했다. 상쾌한 아침 공기, 15도쯤 되는 시원한 기온, 옅은 구름 사이로 드러난 푸른 하늘.
몸을 가볍게 풀며 기다리던 중, 산행대장이 나에게 스트레칭 시범을 부탁했다.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평소 하던 동작을 따라 보여주었고, 모두 함께 몸을 풀었다. 기분 좋은 시작이었다.
곧이어 백 명 탑승이 가능한 대형 케이블카를 타고 십 분 가량 올라 스가타미역에 도착했다.
유황 가스를 뿜어내는 아사히다케가 눈앞에 펼쳐졌고, 땅속 깊은 숨결이 대지로 피어오르는 풍경에 숨이 멎는 듯했다.
우리는 웅장한 광경 앞에서 안전 산행을 기원하며 간단한 행동식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코끝에 스치는 유황 냄새, 발아래 피어 있는 이름 모를 들꽃들.
이전의 어떤 산에서도 보지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연은 자신을 꾸미지 않고 본연의 모습으로 우리를 반겼다.
오른편엔 잔설이 걸쳐진 능선이 펼쳐졌고, 왼편으로는 김을 내뿜는 화산의 숨결이 대지를 울리고 있었다.
함께 걷는 동료들의 얼굴이 밝았다. 그 순간은 걷는 것만으로도 축복이었다.
중간 전망대에 도착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숨을 골랐다. 바로 앞에서는 유황이 하얀 연기로 분출되고 있었고, 바람에 섞여오는 그 냄새는 자연의 향기로 다가왔다.
(중간 전망대)
산길을 걷는 내내 들꽃들이 발길을 멈추게 했다.
6월 말에서 8월 초까지만 핀다는 야생화는 7월 중순인 지금이 절정이었다. 그 작은 생명들이 고요히 제 자리에서 피어 있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코를 갖다 대자 간지럼 타는 애기처럼 방글거렸다. 어떤 일행은 꽃들의 합창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나는 마치 야생화 도감을 만드는 사람처럼 사진을 찍었고, 산행이 끝났을 땐 30종이나 되는 꽃들을 담았다. 이번 트레킹의 가장 큰 보람이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아사히다케 정상으로 향했다. 공기는 투명했고 하늘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푸르렀다.
산을 오르면서 발걸음이 무겁지 않았던 건 자연의 품속에 안겨 있다는 포근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전체 트레킹의 삼분의 일 지점인 아사히다케 정상(2,290m)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잃고 서 있었다. 사방으로 펼쳐진 능선, 천천히 흐르는 구름, 초록의 바다를 흐르고 있는 하얀 눈줄기.
눈앞의 풍경이 아니라 자연의 숨결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사히다케 정상에서 바라본 능선)
지구가 잠시 보여주는
속살 위에 섰다
구름은 깃털 같은 손길로
산등성이를 쓰다듬고
바람은 바다의 옛 소리를
들고 와 귀에 걸어준다
잠자는 용의 등줄기
오래된 흉터는 하얗게 아물었고
품었은 꿈은 초록으로 덮여있다
돌멩이 하나하나에
수천 년의 별빛이 담겨 있고
꽃 송이 송이마다
하늘이 뿌려준 편지를 담고 있다
나는 지금,
수백만 년 지난 책장을 넘기고 있다
글자는 없지만
그 모든 곡선과 고요가
우주보다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2025. 7.13, 아사히다케 정상
(2부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