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다케 정상,
삼십 분 정도 자연의 품에 기대어 가슴속에 고여 있던 무언가를 조금씩 내보냈다.
바람은 잔잔하게 불었고 구름은 말없이 흘러갔다.
“출발합시다.”
산행대장의 목소리에 모두 엉덩이의 흙을 툭툭 털며 일어섰다.
내리막이 시작되었다.
등산로는 자연 그대로의 돌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 사이를 우리는 조심스레 걸었다. 한 시간 반 뒤의 목적지인 마미야다케를 향해.
잠시 후, 길 위로 하얗게 펼쳐진 설원이 나타났다. 7월의 한복판에서 만난 눈.
스키장처럼 길게 뻗은 설선 위에서 아이젠을 착용하자 마치 일본 알프스에 들어선 듯했다.
조심조심, 눈을 디디며 걸었다.
“앗!”
한 분이 살짝 미끄러졌지만 웃음으로 넘길 수 있을 만큼 다행이었다.
우리는 무사히 눈밭을 빠져나왔고, 그 옆으로는 야생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니, 누군교?)
푸른 하늘 아래, 들꽃 향기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고 목덜미를 스치는 바람은 연인의 손길처럼 다정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소리.
이 높은 산 위에도 생명이 노래하고 있었다.
오감의 향연.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땅이 나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천천히 걸어라. 지금 이 순간을 느껴라.'
걷다가 문득 뒤돌아보면, 산길이 아니라 인생길을 돌아보는 듯했다.
들꽃이 가득한 초원이 펼쳐지자
동료들의 입에서 “와~” 하는 탄성이 터졌다.
하얀 설경을 배경으로 펼쳐진 야생화는 마치 겨울과 봄이 동시에 공존하는 신비로운 풍경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음악이 들리는 듯했다.
고개를 돌리자 팬텀이 썼던 가면이 보였고 그가 부르던 노래가 들려왔다, 이어지는 크리스틴의 절규까지.
자연은 때로 음악이 되고 마음은 그 무대가 되었다.
산행대장 겸 리더인 김정태 박사님은 들꽃 하나하나에 이름을 붙여주며 자연의 언어를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 이야기를 들었다.
그 자리는 야외 강의실이자 성찰의 공간이었다.
드디어 마미야다케에 도착했다.
커피 한 잔과 쿠키를 나누어 먹고, 각자의 멋진 포즈로 자연과 하나가 되었다.
(포토제닉)
잠시의 휴식을 마치고 한 시간 반쯤 걸리는 호쿠친다케를 향해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후, 눈앞에 거대한 분화구인 오오카마 칼데라가 모습을 드러냈다.
모두가 발걸음을 멈췄다.
말없이 바라봤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바라봤다.
그래, 이 순간은
말하지 말자.
생각하지 말자.
그저, 이 경이로움을 마음 깊이 담자.
호쿠친다케 분기점에 도착,
들꽃 속에서 펼쳐진 점심시간.
준비해 간 주먹밥과 쑥떡은 그 어떤 요리보다 꿀맛이었다.
그때,
근처에서 여러 마리의 나비들이 들꽃으로 모여들었다.
(3부, 종결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