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 향기와 함께 나비들의 춤을 보면서 점심을 마쳤다.
찬란한 풍경 속에서 커피까지 곁들이니 이보다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다음 목적지인 쿠로다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오오카마 분화구 테두리를 따라 이어진 등산로는 마치 하늘과 땅 사이를 걷는 듯했다.
“앗, 또 설원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고, 눈으로 덮인 길이 다시 펼쳐졌다.
이번에는 경사가 더 가팔랐다.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눈은 여전히 미끄러웠고, 우리는 엉금엉금 내려갔다.
“에쿠!”
한 분이 넘어지자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다행히 다친 곳 없이 다시 일어섰고, 우리는 더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웃음과 긴장 속에서 눈 위를 걷는 인간의 몸짓이 자연과 어우러졌다.
조금 뒤, 오하치다이라 전망대에 도착했다.
분화구가 한눈에 펼쳐지는 장관 앞에서 서로 핸드폰을 눌렀고,
사진 속 표정에는 즐거움과 경이로움이 고스란히 담겼다.
조금 후, 비교적 짧은 설원을 건너며 하얀 세계와 작별을 고했다.
이십여 분쯤 걸었을까. 앞선 동료들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와—!
순간, 야생화가 눈앞에 화폭처럼 펼쳐졌다.
노란 들꽃들이 초록 사이사이에서 피어있었고, 그 색들이 동료들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들꽃 향기에 취해 걸음을 멈추었다.
"이대로 퍼질러 앉아 막걸리 몇 사발 마시고 싶다…"
혼자 중얼거리며 웃었다.
들꽃 화폭을 건너가자 쿠로다케 대피소가 눈앞에 나타났다.
걷는 동안 기온이 점점 올라 더위를 느꼈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 앞에 마지막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쿠로다케 정상까지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인 깔딱고개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산의 정기를 가득 받은 우리는 더 이상 지치지 않았다.
마지막 힘을 쏟으며 정상에 도착한 순간, 모든 고생이 보상으로 돌아왔다.
정상에서 우리는 잠시 휴식을 취하며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았다.
길 위에는 발자국이, 마음속에는 잊지 못할 하루가 남았다.
야호~~ 하며 크게 외쳤다. 마음속으로.
아... 그런데... 진짜 마지막 복병이 남아 있었다.
리프트역까지 한 시간가량 이어지는 돌계단 경사로.
이미 여덟 시간을 걸어온 우리에게는 가혹한 마지막 시험이었다.
다행히 길목마다 피어 있는 들꽃들이 "힘내요" 하고 웃어주었고,
우리는 그 미소를 벗 삼아 천천히 내려갔다.
리프트역에 먼저 도착해 동료들을 기다리던 중,
영남알프스학교 실장 혜○님이 도착하자마자 풀썩 쓰러지며 말했다.
"아이고, 나 좀 업고 가유~"
모두 웃었다. 고된 하루를 유쾌하게 마무리하셨다.
리프트에 오르기 전에 모두 몸 상태를 확인하고 배낭을 정리했다.
“오늘 저녁은 맥주 무한대 제공입니다!”
실장님의 외침에 와아~~ 소리가 사방으로 퍼졌다.
리프트에 몸을 실었다.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가볍게.
오늘 걸어온 발자국마다 마음속 응어리는 조금씩 빠져나갔고
그 비워진 가슴속으로 산의 숨결이 들어와 앉았다.
내년에도 꼭 다시 오고 싶은,
오래도록 기억될,
내 생의 멋진 하루였다.
<2025.7 13, 대설산 트레킹 산행기>
한 지인의 말을 듣고 덧붙입니다.
저는 등산 마니아로서 국내 100대 명산을 다녔고, 아이거 북벽 앞에 갔고, 대설산을 올랐습니다.
향후에 북알프스와 돌로미터에도 도전 예정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