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는 음식 취향이 다르다. 연애 시작할 때부터 알게 되었다.
그와 내가 두 번째 만난 날이었다. 호숫가를 걷고 나서 점심을 먹으러 찌개가 맛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뭘 먹고 싶냐고 물어보니 된장찌개를 골랐다. 나는 김치찌개를 좋아해서 된장찌개 하나, 김치찌개 하나를 시켰다. 다음 데이트 때는 분식집으로 갔다. “이 집은 라면 맛이 좋습니다” 했으나 그는 칼국수를 시켰다.
취향 차이는 식당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당시 음악다방에 가면 신청곡을 들려주었다. 나는 ‘호텔 캘리포니아’처럼 잘 알려진 팝송을 신청했고 아내는 늘 클래식 곡을 적었다. 영화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고래사냥’ 같은 인간미를 자극하는 영화를 즐겼고, 아내는 ‘터미네이터’ 같은 액션물을 좋아했다. 영화 보러 갈 때 사다리 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상대방 기분을 위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한 번쯤 양보할 만한데도 서로 좋아하는 것을 고집했다. 그러다 헤어질 뻔한 사건이 발생했다.
만난 지 몇 달이 지난 내 생일날이었다. 선물로 남방을 사주겠다고 해서 남포동 미화당 백화점 근처 옷가게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 옷 저 옷을 내 가슴에 갖다 대보곤 했다.
“딴 데 가봐요.”
마음에 드는 게 없는지 옆에 있는 가게로 나를 끌고 갔다. 이것저것을 들었다 놨다 하더니 내 손을 잡고 또 다른 가게로 갔다. 이렇게 골목 옷가게를 열두 군데나 뒤지고 나서 말했다.
“마음에 드는 게 안 보이네요. 서면으로 가 볼래요?”
순간, 내 머리 꼭대기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아니, 그냥 처음 갔던 가게에서 사면 좋겠는데...”
잠시, 생각하더니 "그렇게 해요. " 하며 생글거렸다. 결국, 동네를 한 바퀴 다 돌고 처음 들어갔던 가게에서 남방을 샀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다시 만나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혼 후에도 취향의 차이는 변하지 않았다. 서로 불편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했다.
뷔페에 가면 아내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가득 담아 온다. 그리고는 다 먹지 못한 것을 음식 쓰레기로 남겨두고 또 가지러 간다. 분리수거 방법도 다르다. 아내는 조금만 모여도 갖다 버리라고 한다. 나는 효율적으로 많이 모아서 버리자고 한다.
샤워하는 방법도 다르다. 아내는 아침저녁 두 번 하는데 나는 아침에만 한다. "하루 종일 먼지 때 묻혀왔으니 자기 전에 꼭 씻으세요. "라고 저녁마다 고등학생 아들 대하듯 말한다. 나는 ”물 부족 국가에서 샤워 두 번은 많다. " 라며 거부한다.
아내와 제일 안 맞는 부분이 백화점 쇼핑이다. 매장을 여기저기 따라다니면 산행할 때 보다 더 지친다. 어느 날부터는 아내가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카페에서 책을 읽으며 기다린다.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백화점에서 겨울 외투를 사서 집에 와 살펴보니 안쪽에 이물질이 묻어 있었다. 세탁 한번 하면 없어진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내 팔을 끌고 백화점으로 가서 새 옷으로 바꾸었다. 기분이 좋았다. 내가 우물쭈물할 때 아내는 과감하게 행동했다. 서로 다른 점이 좋을 때도 있었다.
아내 덕분에 된장찌개 맛도 알게 되었다. 예전엔 먹고 나면 개운하지 않아서 잘 손대지 않던 음식이었는데, 조금씩 먹다 보니 국물의 깊은 맛을 좋아하게 되었다. 이제는 내가 먼저 “된장찌개 어때?”라고 묻기도 한다.
셀프바가 없는 식당에서 반찬을 다 먹으면 나는 더 달라고 말을 못 한다. 아내는 아주 잘해서 속으로 박수를 치기도 한다.
아내와 취향이 다르다는 사실이 종종 충돌을 만들었지만 피하지 않고 조금씩 조율해 나가다 보니 서로에게 없던 부분을 채워 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팝송만 듣던 나는 클래식의 세게로 영역을 넓혔고, 아내는 하지 않던 등산과 사진 찍기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 다름 '은 다툼의 이유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가는 초대장이었다.
지인 부부들을 보면 취향 차이 때문에 다투는 경우를 종종 본다. 다름을 단점으로만 생각하면 갈등이 되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관계는 훨씬 풍성해진다. 나는 아내의 취향을 이해하면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했고, 아내도 나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얻었다. ' 다름 '은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드는 벽이 아니라 서로를 확장시키는 다리가 되어준다.
삽화: 제미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