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매거진
오늘도 걷는다
실행
신고
라이킷
60
댓글
24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헤비스톤
Oct 01. 2023
한가위 기념 산행에서 떠 오른 건
보름달… 이 아니고
한가위 연휴 첫날, 아내와 가지산을 올랐다.
‘한가위 기념 등산’이라 이름 붙였고 상금까지 내건 산행이었다.
울주군에서 산악인을 위한 이벤트로 열고 있는 ‘영남알프스 9봉 완등’ 행사에 아내와 함께 3년째 참석하고 있는데(올해는 8봉으로 변경), 나는 이미 5월 중순에 완등해서 지난달에 기념 메달을 받았다.
아내는 2봉을 남겨두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산행을 미루다가 더위가 한풀 꺾이자 완등 포상금(?)을 노리고 7봉째를 오르게 된 것이다.
98년부터 시작한 나의 주말산행은 26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아내와 함께한 산행은 20년쯤 되었다. ( 가기 싫다는 걸 어르고 달래고 선물까지 사주면서…)
음악을 좋아하는 한 가지 공통점 외엔 취미가 달랐던 김여사와 ‘같은 취미 가지기‘ 프로젝트 10년을 노력한 끝에 산행, 사진 찍기, 전시회 다니기, 지방투어,
악기 배우기, 영화 보기 등을 함께 하게 되었는데 그중 제일 힘들게 이룬 것이 산행이다.
힘들다고 안 가려고 할 때마다 상금을 걸어야 가곤 했으니.
가지산은 26년간 오른 산중 두 번째로 자주 오른 산이다.
오늘도 김여사를 위해 늘 하던 대로 최단코스인 석남터널에서 출발했다.
푸르런 가을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우릴 반겼고 연휴를 즐기는 꽤 많은 사람들이 가지산을 오르고 있었다.
발걸음이 가벼웠다. 며칠 전 서울에서 김여사 생일 행사 때 즐거웠던 모습들, 첫 손자와 나들이 다녔던 얘기를 하면서 천천히 올랐다. 지나치는 사람들 표정이나 목소리도 밝았다.
이쁜 강아지가 주인과 함께 꼬리를 흔들며 오르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중봉까지 오르는 동안 김여사가 힘들다는 얘기를 안 하는 걸 보니 생일 때 받았던 봉투와 손자와 놀았던 시간을 계속 떠 올리는 것 같았다.
중봉 바위에 걸터앉아 커피를 마시며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지난날 기억 하나가 떠 올랐다.
H자동차 팀장 시절, 주중에 쌓인 스트레스 해소 특효약은 주말등산이었다.
토요일 오전 근무를 마치면 (휴무일인데도 팀장 이상은 출근했다) 바로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영남알프스로 향하곤 했다.
어느 토요일 오후, 한참 땀 흘리며 산을 오르고 있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실장님이었다.
오전에 보고했던 내용에 대한 추가 질문이었다.
산행을 잠시 멈추고 답변을 해야 했고 확인이 필요한 내용은 (휴일인데) 팀원들에게 전화해서 확인 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 후에도 산행 중에 전화를 몇 차례 더 받았다. 궁리 끝에 (팀원들에게 전화 안 하려고) 예상 질문 자료를 결재판에 모아 배낭에 넣고 산을 올랐다.
어느 날, 가지산 중봉에 도착했을 즈음 실장님 전화가 왔고 바위에 걸터앉아 가지고 온 자료를 보면서 20여 분간 설명하는 영화 같은 장면을 구름과 바람에게 보여줬던 웃픈 기억이 생각났다.
지나고 나니 모두 추억이 되었다고 김여사께 얘기했더니 “수고 많았네요”하며 웃으셨다.
(아무렴 수고 많았지, 가끔 업고 다니셔도 됩니다!)
(퇴직하면서 기념으로 가져온 결재판)
정상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김여사도 자랑스럽게 7봉째 인증사진을 찍었다. 이제 하나 남았다. 휴~~
(정상에서 바라본 중봉)
오늘은 흑염소가 우릴 반겨줬다. 고헌산에는 흰 염소가 방목되어 있는데 가지산은 흑염소가 정상을 지키고 있었다.
김여사가 딸 둘을 낳고 흑염소로 산후조리 후 강건체력을 가지게 된 걸 아는지 흑염소가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째려보지 마셔, 다 지난 일이야)
바람을 막아주는 바위틈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가지고 온 김밥과 과일을 먹었고 커피를 마시며 다음 달 예정인 지방투어 일정을 그려보았다.
하산할 때는 각자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내려왔다. (주위에 방해 안되게 블루투스
에어
팟 사용)
하산할 때는 올라갈 때보다 더 조심을 한다. 꼭 스틱을 사용하고 발 밑을 잘 살핀다. 우리네 삶처럼 한번 잘못 삐끗하면 회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우린 남은 인생산의 하산을 아름다운 노을처럼 멋있고 우아하게 만들고 싶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해서 ‘부산갈매기’ 식당 주 메뉴인 파전과 도토리 묵을 포장으로 샀다. 평상에 걸터앉아서 막걸리 한잔하고 싶었지만 김여사 지시대로 집에 가서 마시기로 했다.
요즘 김여사께 종종 사전 결재를 받아야 한다. 1박 2일 여행 갈 때나 일정금액 이상 카드 사용 시 등이다.
김여사께 결재를 잘 받으려면 지시를 잘 따라야 한다는 게 퇴직 후 배운 첫 번째 ‘삶의 지혜’이다.
깜빡 잊고 사
용
후 결재받을 땐
결재판 대신
등짝 스매싱이 날아온다.
며칠 후에 영남알프스 8봉째인 영축산을 등산하면 김여사의 3년째 완등이 완성된다.
3년 완등하면 포상금(거금) 주겠다고 연초에 약속을 했는데…
숨겨둔 비상금이 거의 바닥이라서 두 딸에게 살짝 SOS 쳐야겠다.
(완등 후
받은 기념 메달)
덧) 결재판 에
피
소드는 구독 중인 소디짱 작가의 ‘결재를 바랍니다’를 읽고 생각이 나서 추가해봤습니다.
keyword
한가위
산행
상금
헤비스톤
소속
직업
작가지망생
아름다운 푸른 별 위에서 보고 느꼈던 소박한 이야기를 펼쳐봅니다
구독자
193
제안하기
구독
매거진의 이전글
오감놀이 함께 하실래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매거진의 다음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