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요즘은 고양이, 달팽이뿐만 아니라 개미, 기린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거미하고도 친해지고 싶은데, 거미와 너무 가깝게 지내는 시인들이 주변에 많아 선뜻 엄두가 나지 않네요. 그래서 거미를 피해 다니는 대신, 기린과 거미가 맺는 그 기괴한 관계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시 쓰는 건 이렇게 내가 만든 지옥에 화분 하나 들여놓고 낯선 생물들과 마주 앉는 일 아닐까 하는. 대단한 구원을 바라는 건 아니고, 그냥 내가 내뱉은 말들이 썩어가는 그 냄새 속에서 나만 아는 꽃 한 송이 피워보고 싶은 거죠.
남들은 거기서 얼른 도망치라고 하는데, 저는 굳이 거기 주저앉아 흙을 만져요. 사랑이 짓물러 터지고 믿었던 것들이 톱니바퀴에 씹혀 나가는 걸 보면 사실 좀 아프거든요. 그런데 그걸 문장으로 옮기다 보면 묘하게 차분해져요. 아, 내가 지금 아프구나, 이 세계가 이만큼 망가져 있구나, 하고 제 방식으로 확인하는 거죠.
제가 바라는 건 딱 하나예요. 누군가 이 비릿하고 서늘한 문장들 사이를 걷다가, 문득 "아, 당신도 이런 냄새를 맡으며 살고 있었군요"라며 제 손을 가만히 잡아주는 것. 그 찰나의 마주침이 제 시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거창한 위로보다, 서로의 구덩이가 비슷하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소통이 될 테니까요.
완벽한 문법이나 정답 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다만 내가 만든 이 지옥이 너무 막막하지 않게, 가끔은 숨 쉴 수 있는 작은 구멍 하나 내는 것. 그게 제가 시를 쓰는 이유이자, 이 지독한 원예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형벌이라고 하면 좀 무겁지만, 그냥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좀 편해져요. 오늘도 지옥 바닥에 물 한 바가지 주고 왔습니다. 거기서 뭐가 피어날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