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해석

essay

by 김준완


​사실과 해석 사이에는
거미줄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인간의 기호가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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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인 사실을 기호로 치환하는 삶의 비극으로부터, 존재는 시작된다.
규칙 없는 혼돈 속에 불쑥 던져진 우리는, 사실이라는 거대한 암벽 앞에서 매번 길을 잃는다.

​배고픈 생명은 차가운 사실을 그대로 삼킬 수 없어, 허기를 가릴 '해석'의 실마리를 찾는다.
논리라는 거미줄을 뻗어 간극을 메우려 하지만, 결국 손에 쥐는 것은 기호라는 이름의 얇은 외투뿐이다

우리는 그 빈약한 옷을 입고 자신의 무지몽매를 취향이라 부르며, 알 수 없는 것을 안다고 속이는 가상 질서 속을 걷는다.

​철학은 이 외투가 추위를 막아주지 못함을 폭로하지만, 동시에 '사실을 알 수 없다는 사실'만이 우리가 움켜쥘 수 있는 유일한 진실임을 가르친다.

​완성되지 않을 줄 알면서도 다시 외투의 깃을 여미는 체념적인 긍정.
그 무의미한 반복이야말로 규칙 없는 세상에서 생명이 부르는 가장 정직한 노래이자,
비극을 통과하는 유일한 방식이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