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우리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했을 뿐 우리를 이루는 것들 말입니다
그것을 타자 (他 者)라고 합니다
심리학자인 카를 융은 남성의 심리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아니마,
여성의 심리에 있는 남성적 요소를 아니무스라고 부릅니다
융은 자신의 내부에 여성적인 요소를 가지지 못한 남성,
남성적인 요소를 가지지 못한 여성은 결코 전적으로 남성적이거나 여성적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촉발하는 것도 아니마, 아니무스입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계기는 남성의 아니마가 상대방 여성에게 투사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좀 더 근원적 사실은 아니마는 의식과 무의식을 연결하는 어떤 고리로 묘사된다는 것입니다
융은 그것을 인간의 심층적 무의식의 인격화라고 합니다
남자인 내 안에 여성적인 인격이 존재하는 것을 나는 타자다라고 말하는 랭보의 말도 같은 말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우리 자신이 사고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라는 선언입니다
좀 더 확장해서 타자를 정리하자면 타자는 꼭 사람일 필요도 없습니다
내가 아닌 모든 것 즉 사물도 타자 일 수 있습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에게 있어서 융의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인정한다면
우리 자신은 사고의 주체가 아니라 객체라는 말도 됩니다
결국 고정된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니까요
좀 더 논리를 밀고 나간다면 이런 말도 성립됩니다
어떤 여성 앞에서 나는 남성이지만
같은 남성 앞에서는 여성이 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의 정체성은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질 뿐이니까요.
남과 여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리자면
기독교에서 야훼 하나님은 자웅동체인 사람 즉 아담을 만들었습니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심심해 보이므로
그의 갈빗대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독자적인 존재로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분화된 것입니다
즉 아담에 내재하는 여성성이 객체화된 것입니다
시적인 표현 하나를 덧붙이자면
아담과 여자의 분화야말로 인간의 모든 비극의 시작이었고
역사의 기원이었다.